Sardegna 첫 번째 이야기
이탈리아의 여름 휴가철이 끝나고, 나는 CPIA에서 하는 이민자를 위한 이탈리아어 수업에 등록했다. 나중에 체류허가증 연장을 위해 필요한 일이었고, 늦가을부터 다음 해 초까지는 어차피 캠핑카 여행을 못 할 테니 그 시간을 활용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리고 코로나 백신 1차 접종을 했고, 그러고 나니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탈리아어 수업 레벨테스트가 9월 27일, 백신 2차 접종이 24일. 한 달 조금 안 되는 시간이 있었다. 날씨도 아직 더워서 우리는 캠핑카를 타고 사르데냐 섬으로 떠났다.
휴가철이 완전히 끝난 9월 1일, 제노바로 가서 예약한 배를 탔다. 12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인데, 차를 싣고 가는 비용 때문에 돈을 아끼느라 방을 예약하지 않은 것은 크나큰 실수였지만, 그걸 알지 못한 그때는 이탈리아에서 처음 타 보는 배가 마냥 설렜다.
차를 실어 놓고, 갑판으로 나갔다. 배가 워낙 크고 파도도 없어 배는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는 6층 난간에 몸을 기대고 제노바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멀리 언덕에 촘촘하게 자리잡은 불빛들과, 바닷물에 비쳐 색색깔로 늘어진 가로등 불빛들과, 항구에 정박한 거대한 유람선과 영화에서나 보았던 크고 호화로운 요트들을. 항구에서 멀어지자 여러 가지 색의 작은 불빛들이 가득 모여 파들파들 반짝이는 도시가 나타났다. 너무 아름다워 추위를 참으면서 오래 바라보았다.
주변 사람들이 분위기 있게 칵테일을 마시기에, 우리도 마셔 볼까 싶어 남편을 보냈는데, 겨우 콜라 두 캔을 사 왔다. 내가 마시고 싶어 했던 아페롤스프리츠는 8.5유로나 하더란다. 그러면 못 마시지 암. 그런데 콜라도 한 캔에 3.5유로, 두 캔에 만 원 돈이었다. 먹을 것은 오는 길에 마트에서 피자빵 같은 걸 사 왔는데, 음료를 사오지 않은 것이 뼈아픈 불찰이다.
들어가 자야 할 시간이 됐다. 안 그래도 배에 탈 때 접이식 매트나 에어매트를 가지고 타는 사람이 유난히 많다 싶었는데, 곧 이유를 알게 됐다. 우등버스 좌석처럼 생겨 얼핏 편해 보였던 의자는 푹신함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땡땡한 소재였고 등받이의 곡선과 젖혀지는 각도가 애매해서 도저히 잘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덜 불편한 자세를 찾아 잠이 들어도 한 시간도 채 안 되어 목과 허리 통증에 눈이 떠졌다.
겨우 잠들었다가 깼을 때가 2시 반이었는데 4시가 넘어서도 다시 잠들지 못했다. 온몸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고통에 잠들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게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 호흡도 불편하고 주변에 코를 고는 사람도 있고 조명도 켜져 있었다. 남편은 나보다 일찍 깨서 내내 괴로워하다가 3시 반쯤 겨우 잠들었지만 30분 만에 다시 깨서 시간을 물어보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또 30분 만에 눈을 떴는데 자려고 필사적으로 노력 중인 듯해 말을 걸지 않았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리게 흐르는 시간이 5시를 향해 갈 때쯤에는 차에 있는 요가매트라도 가져와 구석에 깔고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남편에게 슬쩍, “차에 요가매트 있는데” 라고 하자 “나도 그거 생각하고 있었어” 란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씁쓸하게 웃으며 다시 억지로 잠을 청했다.
그렇게 힘들게 도착한 사르데냐 섬.
항구에서 멀지 않은, 예쁘다는 해변으로 달려가 봤지만, 죽은 해초가 가득 밀려와 있어 하나도 예쁘지 않았다. 거의 역한 지경이었다. 크게 실망을 하고 그곳의 무료주차장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두 시간 정도 기절한 것처럼 잤다.
남편이 다음으로 고른 곳은 사사리의 작은 만 포르토 팔마스(Porto Palma). 고백하건대 우리는 인터넷에 사르데냐를 검색하면 나오는 천국처럼 아름다운 곳들에는 거의 가지 못했다. 우리 여행은 유명하고 예쁜 것보다 캠핑카로 갈 수 있는지, 캠핑카를 세울 수 있는 무료주차장이 있는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해변에서 가까운 주차장에 도착해서 캠핑카를 세우고 해변으로 걸어갔다. 너무 가까워 1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하얀 모래사장이 있는 그 작은 만의 바다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투명한 하늘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그런 물색이었다. 아, 이게 사르데냐의 바다구나 싶었다. 지금도 사르데냐 하면 떠오르는 것은 이곳의 바다다.
우리는 그곳에 최대한 오래 있었다. 캠핑카의 물과 화장실이 허락하는 만큼. 해변에 있는 바 외에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 우리는 매일 통조림캔을 먹었다. 인스턴트 리조토나 파스타 재료도 있었지만 물을 너무 많이 쓰고, 설거짓거리도 많이 생기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해 먹을 수 없다. 참치샐러드캔, 레몬이 들어간 생선 캔 등 종류별로 통조림을 먹다가 너무 질릴 때는 특식으로 컵라면을 먹었다. 도저히 안 될 때는 바에서 사 온 차가운 맥주에 감자칩을 먹거나 하며 버텼다.
그래도 그런 건 괜찮았다. 아직 떠나온 지 며칠 되지 않았고 그 외에 모든 것이 좋았으니까. 아늑한 느낌의 작은 해변에 비수기라 사람도 별로 없고, 우리가 있는 동안 날씨도 대체로 좋고 파도도 잔잔했다. 우리가 사르데냐 섬에 있다는 사실을 천천히 기쁘게 실감하는 나날들이었다.
그곳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느긋하게 물에 떠서 바닷속을 들여다 보는 거였다. 물고기는 별로 없었지만, 물안경을 쓰고 투명한 하늘빛 물속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밭고랑 같은 하얀 모래바닥에 물결 무늬 빛이 어지럽게 지나는 걸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사람들의 재잘거림과 물을 차는 소리조차 시각에 압도되어 고요하게 느껴진다. 그 순간의 완벽한 평화로움.
사실 나는 수영을 할 줄 모른다. 항상 수영을 배우고 싶었지만 미루고 미루다가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배워야지 하고 수영장을 알아보고 막 등록하려던 때에 코로나가 터져 버렸다. 그래서 결국 수영도 못 하는 채로 이탈리아에 오게 됐다.
그랬던, 튜브 없이는 물에 떠 있지도 못했던 내가 이번 여름에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점차 물에 뜨는 법을 익히게 됐다. 풀리아에서부터, 특히 사르데냐에서 정말 많이 늘었다. 완만한 수심의 바다와 바닥이 훤히 보이는 투명한 물이 두려움을 많이 지워 준 덕분이다. 아직 깊은 물은 무섭고, 사실 수영이라고 할 만한 건 아니지만 발이 닿지 않는 곳으로 조금 더 들어가서 제법 여유롭게 허우적거리며 앞으로 나아가거나 떠 있거나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곳의 투명한 하늘빛 바다에 떠 있으면서, 나는 두려움과 자유로움을 동시에 느꼈다. 한국을 떠나온 후 늘 느껴왔던, 익숙한 감정이었다.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 두려움과 그로 인한 충만한 자유. 불안함과 두려움에 압도당해 괴로웠던 마음에 묘하게 위안이 되었다. 내가 그토록 두려웠던 것은 그만큼 자유롭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자유로움을 즐기면서 나는 그저 내 방식대로 물에 떠 있으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