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 윙>과 <하우스 오브 카드>는 어떤 드라마인가
브런치에 올린 <미드보다 재밌는 미국 대선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 두 개의 드라마가 있다. <웨스트 윙>과 <하우스 오브 카드>다. 이들 드라마는 미국과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에서 많은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다. 심지어 러시아의 댓글부대(troll factory) 요원들이 미국 정치를 배우기 위해 <하우스 오브 카드>를 교재처럼 의무적으로 시청했을 정도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오바마 대통령, 시진핑 주석, 힐러리 국무장관 등 유력 정치인들이 열광적 팬임을 자처하고 나서기도 했다. 반면 <웨스트 윙>은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즐겨보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웨스트 윙> 속의 대통령이 비서의 책상에 걸터앉아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 백악관의 역동적인 분위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라고 말하며, 참모들에게 이 드라마를 볼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웨스트 윙>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웨스트 윙>을 보면 (대통령이) 국정 현안에 대한 국민의 반응을 그때그때 비서들과 의논하고 소통하는 모습이 지금 미국 민주주의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을 듣는 이유입니다."
<웨스트 윙>과 <하우스 오브 카드>는 미국의 현실 정치를 생생하게 묘사한 극사실주의 드라마라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미국의 대선 과정을 매우 실감 나게 다루면서 대중의 사랑과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받았다. 현실 정치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데서 더 나아가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은 통찰과 철학이 묵직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1999년에 처음 전파를 탄 <웨스트 윙>은 2000년부터 4년 연속 에미상 최우수 TV 시리즈상을 수상했고, 주연급 배우들이 연이어 주연상과 조연상을 독차지했다. 2013년 처음 방영된 <하우스 오브 카드> 역시 52차례나 에미상 후보에 선정되었고 6개의 에미상과 2개의 골든 글로브를 차지했다. 흥행 면에서도 2013년 Netflix의 순이익은 이 드라마 덕분에 37억 5000만 달러로 1997년 설립 후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한때 실적 부진으로 나스닥 퇴출을 걱정했던 Netflix가 이때부터 미디어 공룡으로 급부상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두 드라마는 상반된 특징을 갖고 있다. <웨스트 윙>이 백악관의 빛을 다뤘다면, <하우스 오브 카드>는 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다뤘다는 차이점이 있다.
시즌 7까지 방영된 <웨스트 윙>은 대통령과 참모진,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이들이 선한 의지로 정치를 이끌어간다. 정책적으로 아무리 첨예하게 대립해도 협상과 토론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웨스트 윙>의 주인공인 바틀렛 대통령은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는 약점이 있지만, 이 약점을 참모진과 함께 슬기롭게 극복해 나간다. 여소야대 정국, 총기 규제와 의료보험 개혁과 같은 숱한 난제에도 불구하고, 권력분립, 대의민주주의,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 안에서 난제들을 풀어나간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선 대체로 “대통령은 국민과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영웅”으로 묘사해야 한다는 일종의 암묵적 합의가 있는데 <웨스트 윙>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웨스트 윙>의 매력은 딱딱하고 단조로울 수 있는 백악관의 이야기를 일반 대중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번뜩이는 재미와 잔잔한 감동으로 잘 풀어냈다는 데 있다. 실제로 <웨스트 윙>에 출연했던 배우들은 현실 정치에 뛰어들기도 했다. 바틀렛 대통령 역을 맡은 배우 마틴 쉰은 대선과 총선에서 오바마의 선거자금 모금에 참여했고, 조쉬 라이먼 역을 맡은 브래들리 윗포드는 2004년 대선 당시 부시 대통령을 비난하는 광고를 찍은 바 있다. C.J 크렉 역을 맡은 앨리슨 제니 역시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유세를 지원하기도 했다. 민주당이 차지한 백악관을 그린 탓에 ‘웨스트 윙이 아니라 레프트 윙’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권력에 대한 진보들의 판타지라는 비판도 있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비정한 권력의 속살을 과장해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웨스트 윙>과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이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욕망의 화신들이 권력의 꼭짓점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가는 느낌을 갖는다. 한 줌의 인간미도 없는 정치인들의 극한 대결과 사악한 음모, 지저분한 스캔들은 상당히 자극적이다. “정치인이 법을 만드는 과정과 소시지를 만드는 과정은 모르는 게 낫다”라는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촌철살인이 마치 이 드라마를 설명하는 듯하다. “민주주의는 과대평가되어 있다”는 주인공 프랭크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 분)의 비정한 독백처럼 말이다. 백악관을 차지하기 위해 거짓말, 성추문, 뒷거래, 살인은 물론 무고한 전쟁까지도 불사하는 현실 속의 미국 정치의 어두운 면을 이 드라마를 통해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미국 대선 제도를 어느 드라마가 더 충실하게 표현했는지를 묻는다면 <웨스트 윙>을 꼽고 싶다. 반면 <하우스 오브 카드>는 대선 과정의 역동성을 상대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평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