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연말정산&잡설결산

생존보고

by 빙산HZ

요즘 왜 이렇게 뜸하세요?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았지만, 이 질문을 받은 척 하고 답장을 쓰려구요. .

이미 양력으로의 새해는 시작되었지만, 아직 음력 새해가 기다리고 있으니 연말결산의 의미가 될 지도 모르는 글이 되겠네요.



오랜만에 놀이터에서 쓰는 편지를 쓰고 싶어졌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진작에 쓰고 싶었고, 늘 쓰고 싶었지만 기회가 여의치 않았어요.


2024년은 1년 내내 참 바쁘게 뭔가를 만들어가며 살아왔습니다.

2025년 상반기도 그 기세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2025년 하반기를 돌아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출장, 일본출장 준비를 계기로 글쓰기를 향한 에너지가 어느 정도 업무 상에서 해소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좀 더 근원적으로 작용한 다른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ep1. 가족친화적 작가의 삶 = ?


내가 쓰는 글의 영향력이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느 한 명에게만 닿으면 의미가 있다” 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글을 쓰는데 할애하는 시간은 다른 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자는 시간을 줄이면 저녁에 더 피곤해지니

아이들 재울 시간이 되면 더 쉽게 인내심이 바닥나고,

더 쉽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게 되는 거죠.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되기 쉬운 조건을 자초하고 있었던 건데,

제가 너무 이기적으로 ‘글쓰기’라는 취미생활에 매달렸던 것 같다는 반성도 하겠습니다.


또 제가 아니더라도

브런치에는 많은 작가분들이 글을 열심히 쓰고 있고,

또 구독자들과의 소통에 힘을 싣고 계신 분들도 많죠.


그런데 제가 충분한 교정교열도 없이 올린 글들은

누군가에는 ‘읽어야 하는 숙제’처럼 다가올 수도 있고,

또 어떤 분들에겐 ‘댓글 숙제’를 드리는 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있었구요.


심지어 자기검열을 하기 시작하니깐 제가 쓰는 글들이 그렇게 무의미하게 느껴지더라구요.

예를 들어 육아에 관해 '아이와의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지요' 라는 취지의 글을 보니 이런 반론이 들리는 거죠.

'니가 먹고 살만하니깐
그런 선택지가 있는 거지.
먹고 사느라
바쁜 맞벌이 부부한테는
그런 사치가 없다'

저도 10월에 전세집 연장계약이 있었는데 5%인상 카드를 내미셔서….단축근무해서 줄어든 소득을 다시 돌아보게 되더라구요.



한편 ‘읽지 않고 눌리는 하트’ 라는 부분은 참 집요하게 제 진심력, 제 진정성 잔고를 바닥내고 있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뭐 그럴 수 있지-’ 생각하면서도 정서적으로는 계속 피곤함을 느껴왔던 것 같아요.


아무튼 그렇게


글을 쓰는 대신

아내를 안아주는 밤을 늘리고


댓글 소통 대신 아이들과의 소통 시간을 늘렸습니다.

주변사람들에게도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하게 되었구요.


물론 브런치에서만 드러낼 수 있었던 속내와 이야기들 때문에 ‘글벗’들과의 교류가 제게 주던 따뜻함이 있었고, 그게 너무 좋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걸 위해 제가 가족과의 삶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그건 제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아이들은 어리고, 아이들이 어린만큼 아내는 더 쉽게 지쳐있고

또 지친 아내에게는 가족에 최선을 다하는 남편이 힘이 될 수 있는데

그런 남편에게 ‘가정’ 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면

그건 남편의 불찰이니깐요.


“글 쓰는 게 더 중요해?”

이런 질문을 받지 않게 되는 삶이 더 ‘옳은 삶’이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렇게 글쓰기의 동기부여를 꺽는 또다른 ‘합리적인’ 이유가 늘었죠.


ep2. 일본어


하반기 일본 출장을 준비한다며 뇌에 잠들어 있던 일본어를 깨운다며 일본어 콘텐츠를 다시 뇌에 주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음악이었습니다.


거의 10여년 만에 새로운 아티스트들을 “발굴”하여 듣게 된 건데요.


그 시작은 V라는 20대 초반 아티스트. 그게 또 계기가 되어서 Y라는 아티스트를 알게 되고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곡은 또 이런 저런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에서 많이 쓰였더라구요. 그게 또 궁금해져서 드라마도 두 편 보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지브리 스튜디오 영화도 이 사람곡을 테마곡으로 써서 그 애니메이션 영화도 보구요. 일본 출장 갔을 때는 BOOK-OFF 라는 중고서점에서 이 아티스트의 CD앨범을 3개나 사왔답니다.



그렇게 CD가 들어가는 2015년 식 제 차로도 음악을 듣고, PC로 음원을 고음질로 추출해서 유선 모니터링 헤드폰으로 음악을 감상하기도 하구요. 심지어 고등학교 때 봤던 만화책 <바람의 검심>의 실사판 영화가 여러 줄줄이 나온 것도 넷플릭스 있는 걸 보고 다보고 말았네요. (네이버 멤버십으로 하면 구독료 부담이 없어서 안 끊게 되더라구요...)


시간이 어디서 났냐구요?

애들 재우고 이불 뒤집어 쓰고 숨어서 봤죠.


주로 잠 안 오는 밤, 글을 썼는데, 잠을 안 오게 ‘일드’를 본 거죠.


그런 시간을 보냈더니 갑자기 제가 일본어로 소설을 한 권 뚝딱 쓰게 되었다- !

......그걸로 나오키상을 수상..!! ...이런 이변은 없었구요.


그렇게 저퀄 콘텐츠(글쓰기) 생산자에서 고퀄 콘텐츠 소비자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일본어 콘텐츠를 대량 감상에 시간을 소비한 것이 너무 아까워서 오랜만에 JPT시험을 봤습니다.

어학시험 성적은 유효기간이 2년이라 유효기간이 살아있는게 없더라구요.

2020년에 시험봤을 때는 895점.

다른 공부 없이, 심지어 한 번은 봐줘야 하는 모의고사도 없이 그냥 시험 보러 갔습니다.
2025년에 일본어 콘텐츠를 잔뜩 시청한 것만으로 유효성적 갱신 하나 받아두겠다고 본 건데...

920점이 나왔습니다.


…그래, 외국어 공부한 셈 치자.

그렇게 자기합리화에 성공했습니다.



Ep.3 잠은 중요해요


물론 건강의 이슈도 있었어요.

누워서 잔다는 것은 그저 뇌에 축적된 ATP 사용 후의 잔여물 아데노신을 청소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하루종일 앉아서 서서 일하느라 눌려있던 척추의 디스크들 쉴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이었던 거죠.

누워서 자지 않고 앉아서 글을 쓴다는 건 업무+육아+기존 취미생활(기타, 드럼) 외에도 또 다른 부하를 주는 거였어요.


아이들이 아픈 날들, 자다가 깬 아이들을 많이 안아주고 생기는 통증도 있었고,

그게 심한 날은 허리가 좌우로 S모양으로 휘는 날도 있었느니,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정선근 교수님 유튜브, 책에서 배운 것들을 잘 지키는 삶을 살면서 회복되고 크게 아프지 않고 보낼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모르시는 분들은 꼭 보세요.

육아도 육아지만 제가 이걸 잘못 알고 있어서 허리를 아프게 하고 있었더라구요. (링크)



아무튼 그렇게 허접하게나마 매주 (소위) 글쓰기 근육을 단련하던 제가 글쓰는데 시간을 할애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만큼 허리가 아프지 않게 되었어요.


글쓰기근육도 중요하지만

허리 주변근육이 더 중요하더라구요.


“누워서 핸드폰으로 쓰면 되지 않나요?”
(그 천재작가, 류귀복 작가님 처럼 말이죠.)


아, 전 사실 작은 화면으로 글 쓰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위 아래 길게 다 보이는 상태에서 쓰고 읽고 편집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리고 말이죠.


누워서 핸드폰으로 글을 쓰는 건 ‘몸도 쉬고 글도 쓰고’ 일거양득처럼 생각하기 쉬운데요.

여러 차례, 오랜 기간 물리치료 받고 온찜질팩하고 적외선 쬐는 거 할 때 체감이 확 다가옵니다.

누워서 핸드폰 들고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손가락, 손목, 팔꿈치, 어깨 관절에 다 힘을 쓰게 됩니다.

거기에다 손가락으로 텍스트를 입력한다고 하면 더 긴장이 되겠죠.

허리 아프신 분들은 누워서 핸드폰으로 글쓰기 하시면 허리 회복에 방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심야에 어두운 환경에서 그렇게 글 쓰다가 잠이라도 들면 말이죠…


허리를 삐뚤게 하고 자는 게 되고, 아침에 일어나면 허리가 더 아플수도 있어요 ㅠ



Ep4. 점심시간 활용의 변화


브런치를 열심히 할 때,

점심 시간은 글쓰기와 관련된 시간이었습니다.


직장동료와의 소통하는 것 대신 (어제 초고를 쓴) 나와 소통, 저자와의 소통(책 읽으면 밥을 먹는거죠), 다른 브런치작가님들과의 소통의 시간이었습니다.


한 달에 한 두 번, 그 중에 한 번은 월 1회 있는 팀 점심이었고요.


글 쓰는 게 밥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날에는

밥을 안 먹고 글을 쓰고 구운 계란 2개, 버터 한 조각으로 연명(?) 한 날도 있었죠.


그런데 2025년 하반기는 이 패턴을 벗어났습니다.


두 가지 이벤트, 아니,

어쩌면 두 사람이 있어서였다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7월에는 저희 팀에 신입 사내변호사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팀에서 제일 어린 제가 본의 아니게 업무에 없었던 미션을 받게 된 거죠.


변호사님이 회사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울 것.


변호사님은 저보다 9살 어린 분이 오셨으니,

제가 더 어른이기도, 선배이기도 했으니…

그렇게 전 태생적으로 뛰어나지 않은 사교력과

코로나 시절 재택근무, 육아기를 거쳐 최소화된 ‘사회성’을

다시 급속히 끌어올려야 했습니다.


이런 저런 팀장님, 선배님들과 변호사님과 함께 식사하는 점심 약속을 만들고,

또 변호사님 또래의 어린 후배들과의 식사도 만들어서

위 아래에 여러분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2개월을 보냈어요.

덕분에 저도 오랜만에 한동안 안 뵀던 여러 사람들과 만나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네, 그렇게 2개월 동안 점심시간 글쓰기도 없어졌던 거죠.

인공지능 부분에 대해서는 계속 신경이 쓰여서 목소리를 내고 싶었고,
너무 인공지능을 두려워하는 분들에게 좀 현실감 섞인 비평과 분석을 전해보려 하는 사명감…..비스무리한 것의 잔향이 남아있긴 했는데… 그 불씨 역시 오래 가지 못했네요.



또 다른 사건도 있었어요.


무허가 상담사


출장 전후로 근처에서 근무하시는 업계 타사분과 점심을 함께 먹고 이야기 할 일이 있었습니다.

연초에 결혼한 신혼생활 중인데, 결혼생활에 대한 고민 등을 들어주게 되었어요.’


그 분은 성급하게 이혼이라는 선택을 마주하려고 하셨고, 전 후회없는 선택이 되려면 신중하게 결정해야 된다는 입장에서 제가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무허가 상담가가 되었어요.


그게 정기적 상담처럼 되어서 주 1,2회 점심에 같이 식사를 하고, 이야기 들어주고 의견을 드리고 관련된 책을 빌려드리고 하면서요.


우울증 처방 받고 약을 먹으려 하시는 것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부작용도 알려드리고, (2024년 <동전의 옆면> 프로젝트 할 때 알게 된 것들)을 바탕으로 일차적 대응이 약물이 될 경우 생기는 문제, 혹은 운동이나 음식이 미치는 영향 등을 설명해 드리구요.


그래서 그 분은 퇴근 후, 약 먹는 대신 저와의 점심식사, '신디'라는 줌으로 하는 상담, 퇴근 후 러닝동호회, 귀가 후 독서 등을 하면서 약에 의존하는 일 없이 위태로운 시간을 잘 건너오셨습니다.


이혼 위기도 일단락 되어 별거를 종료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구요.


아마 브런치를 우선으로 했으면 이런 식으로 그 분에게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겠죠.



작곡&작사: 無성과


사실 이게 2025년 목표 중 하나였어요.

가사 없는 곡에게 멜로디와 가사 입혀주기.

새 곡 만들기.

그런데 가사는 미완성. 멜로디는 부분 완성.

좀 더 본격적으로 해볼까- 하고 거금 아닌 거금을 들여 맥북용 DAW 프로그램 ‘로직’을 구매했지만, 아직까지는 창작은 이뤄지지 못했네요.



2025년 하반기 결산


이렇게 기존 목표 대신 ‘인생이 제 앞에 던져준 사람들’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우선으로 했네요.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이제는 수면시간 줄여서 건강을 담보로 하루를 길~~게 쓰는 것도 하지 않으니 미뤄질 수 밖에 없는 거죠.


네, 그렇게 저는 글을 쓰고 있지 않은 브런치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지 않고 아내를 덜 외롭게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는 존재로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들 글도 더 읽고 싶고, 댓글로 소통도 하고 싶은데, 텍스트로 하는 그 소통에도 제 진심은 담겨 있고 소중하지만…. 그 쪽 세상엔 제가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아니니깐요. 하지만 이 쪽 세상에선 전 없으면 안 되는 어마어마한 존재구요. 남편, 아빠라는 건 그런 거겠죠.


글을 더 잘 쓰고 싶다.

멋진 음악을 만들고 싶다.

기타를 더 잘치게 되고 싶다.

노래를 더 잘 부르고 싶다.


이런 목표들도 분명 시의성이 있을 거에요.


하지만 점점 빨리 자라나고 있는 저희 아이들에 비해서는 ‘기다려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10대, 20대, 30대에 어느 창작 분야에서 뭔가 수상하고 데뷔하고 하는 게 당연히 멋지지만,

전 지금 제가 선택한 평범한 삶에서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반짝이는 일상 속의 보물들을 더 소중하게 다루며 보내겠습니다.


그럼 은퇴 선언인가요?


글을 써도 되는 분야-에 대해서 생각해봤어요.


일단 아이들과의 시간 속에 느끼는 것 역시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져버리니, 아이들과의 이야기는 기록차원에서 두면 좋을 것 같으니, 이건 가능하겠네요.


아내와의 갈등, 다툼, 화해를 통해 배워가는 결혼생활 이야기도 기록의 가치가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시간이 있을 때 겠지만요.


아무튼,

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의 새해는 지혜가 늘어가는 한 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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