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괜찮은 하루

by 초록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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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음)

네, 코레일 상담원 ㅇㅇㅇ입니다.

방금 열차에서 내린 승객인데요.. 유실물 관련해서 신고하려고 합니다.

09시 14분 용산역을 출발한 새마을호 열차 1051호 4호차 54번 선반 위에 놓고 내린 물건이 있어서요.

투명비닐백에 노란색 롤케이크 상자 2개가 담겨있어요;;




ITX 평택역 대합실을 빠져나오며 철도고객센터 상담원과 교과서 같은 유실물 신고 상담을 하는 중이다.

열차 선반 위에 놓고 내린 물건에 대해서 정확한 좌표를 찍는 군더더기 없는 설명이 내심 뿌듯했다.

코레일톡으로 예매한 승차권은 모든 정보조회가 가능하다 보니 유실물 신고와 같은 돌발상황에도 빛을 발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토요일 아침, 용산역 대합실이었다.

먼저 도착한 막내시누이와 함께 큰 시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롤케이크를 손에 들고 걸어오던 큰 시누이와 만난 건 열차출발 시각 15분 전이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평택역이었다.

미국에서 영구귀국하신 작은아버님 내외분이 평택 구도심에 아파트를 마련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누이 두 명과 집들이 겸 축하방문을 가기로 한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우린 탑승 트랙을 확인하고 곧장 열차에 올랐다.

뒷 좌석에 앉은 나는 시누이들이 롤케이크 상자를 좌석선반 위에 올리는 걸 의심 없이 바라보았다.

그것이 나와 롤케이크의 마지막 눈 맞춤 순간이었다.

평택역에 도착해서는 셋다 홀라당 가방만 챙겨서 대합실로 나오고 만 것이었다.


큰 시누이가 뒤늦게 알아차리고 걸음을 멈췄다.

앗! 우리 롤케이크를 놓고 내렸어!

아~~~(동시에 깊은 탄식)

큰 시누가 맛있다며 집들이 선물로 준비한 소문난 롤케이크와의 생이별이었다.




순간, 역마다 유실물센터가 마련되어 있다는 생각이 나서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수시로 열차 내를 돌아다니며 순찰 점검하시던 역무원의 모습도 떠올라서 안심이 되기도 했었다.

빠르게 신고한 유실물에 대한 정보를 기초로 해서 순조롭게 철도시스템이 작동된 것 같았다.

다행히 유실물은 발견되었고 용산역에서 인계받을 수 있다는 문자 연락을 받으면서 당황은 종료되는 듯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미군부대 인근에 거주하는 작은아버님의 둘째 아들집에 먼저 도착을 했다.

평택의 미군부대 학교의 교직원으로 발령받은 며느리 덕분에 작은아버님도 인근에 아파트를 마련하셨던 모양이다.

한결 편안해진 작은아버님 내외분을 뵙고 느낀 점은 삶이란 ‘시절인연’ 대로 흐른다는 것이었다.

가족 간의 여건이 맞고 운이 닿아서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는 좋은 때를 만난 분들 같았다.


처음 낯선 미국의 이민생활부터 현재까지의 인생 스토리에 몰입하느라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예매했던 왕복승차권을 1시간 뒤로 미룰 정도로 작은아버님댁에서 즐겁게 머물다 서울행 열차를 탔다.



어느덧 열차가 영등포역을 지날 때쯤이었다.

승차권을 예매한 큰 시누에게 당연한 듯 물었다

“아가씨! 막내아가씨랑 저는 용산역에 내리고 큰아가씨는 서울역에 내리면 되는 거죠?


일산에 거주하는 큰아가씨는 얼마 전 개통한 GTX를 서울역에서 갈아타면 훨씬 편했다.

그리고 막내아가씨와 나는 용산역 유실물센터에 들러 롤케이크를 찾아서 하나씩 챙겨가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영등포역을 지난 ITX열차는 곧바로 서울역 도착을 알렸다.

용산역에는 정차하지 않았던 것이다.

승차권을 반환하고 재구매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오류가 있었던 모양이다.

결국 막내시누이 혼자 용산역으로 가서 롤케이크를 구출하기로 하면서 한바탕 웃고 철도여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집에 도착할 무렵 미션을 완수한 막내시누이가 바로 사진 1장을 단톡방에 올렸다.

어렵게 구출당한 롤케이크상자 사진을 보니 사연 많았던 하루의 애잔함과 피곤함전해졌다.

나중엔 막내시누로 빙의한 이모티콘이 나타나서 롤케이크가 꿀맛이었다며 춤을 추길래 다시 미소가 번졌다.




우연히 열차에 두고 내린 물건 하나로 허탈했다가 웃었다가 어리둥절까지 하는 그야말로 여러 감정이 공존했던 여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높은 신뢰감을 바탕으로 효율적인 시스템이 잘 작동되는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감동까지 느꼈던 꽤 괜찮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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