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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Sep 13. 2024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urbanfreesia

학교에서 나는 조용한 아이였다. 특별히 튀지도 않고, 그저 무난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상처를 쉽게 받고, 눈물도 많았지만 누구에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가끔은 친구와 친구의 엄마가 나란히 걷는 모습을 보고, 집에 돌아와 밤새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곤 했지만 그 또한 나 혼자만 아는 이야기라 괜찮았다. 엄마의 빈자리, 사랑의 결핍, 그 모든 것이 내 안에서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걸 지금에서야 느낀다. 나는 묵묵히 받아들이며, 잘 살아왔다고 스스로 믿었다.

이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꺼내는 이유는, 내가 잊으려 했던 그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어느 날 갑자기 문을 열고 나와 마주한 날이 있었기 때문이다. 20대 중반이었다. 어느 날 내 안에 쌓여 있던 우울이 마치 장맛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매일이 우울함으로 가득 찼고, 혼자 있는 시간은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가슴은 찢어질 듯 아프고, 머리는 터질 것 같았다. 나는 확신했다. 이건 마음의 병이다.

밤마다 나는 울었다.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왜 나만 이렇게 아픈 걸까. 그러면서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몇 년 동안 그 상태는 계속되었다. 평범한 하루를 보내다가도, 갑자기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계모의 얼굴, 명절의 냄새, 그 모든 것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아빠 집에 가면 그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눈물부터 흘렀다. 두렵고,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우울한지, 나도 알 수 없었다. 여태 잘 살아왔는데, 왜 이제야 이런 감정들이 나를 덮치는 걸까? 내 인생을 이렇게 망치고 싶지 않았고, 이대로 살고 싶지도 않았다.



어린 시절의 내가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나의 운명일 리가 없었다.  나는 이 인생을 어떻게든 구해내야 했다. 그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고, 나를 구해줄 사람도 없었다. 그 순간 문득, 나는 이대로 나를 내버려 두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를 구하고 싶었다. 누구라도 나에게 손길을 내밀었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하지만 기다림의 끝에서 깨달았다. 스스로 나를 구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구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 깨달음은 조용했지만 분명했다. 나는 나 자신을 끌어올려야 했다.


사실, 우울이 시작된 건 그보다 훨씬 이전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갑작스럽게 나를 덮쳐서, 나도 뭐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꼬여버렸다. 24살, 다제내성결핵에 걸렸고, 병원에서는 나에게 신약을 추천했다. 그때는 그 신약이 나를 구해줄 거라고 믿었었다. 하지만 신약이 나에게 가져온 건 치유가 아니라, 더 깊은 고통이었다.

신약의 부작용으로 말초신경증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발끝이 살짝 저린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것은 점점 마비로 이어졌고, 발에 개미들이 기어 다니는 듯한 감각이 하루 종일 나를 잠식했다. 부종과 체력 저하, 그리고 걸을 때마다 마치 수억 개의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그 고통은 내 일상을 집어삼켰고, 평범하게 걷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그 고통은 24시간 내내 이어졌다. 진통제 없이는 살 수 없다. 현대의학으로는 치료방법은 없다고 한다. 평생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때 난 24살이었다.

절망이란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끝없는 우울 속으로 빠져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상을 살아가고, 나 발걸음은 그들과 나란히 걷지 못했다. 평범한 일조차 내게는 사치처럼 느껴졌다. 하루하루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무능함이란 고통으로 물들었고, 나는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잠식했다. 24시간 내내 발을 뒤덮는 통증이 내 마음속까지 스며들었고, 나는 그 통증과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잠을 자다 통증에 잠을 깼을 때.. 난 그때 비극을 직감했고 마음이 저며왔다. 고작 피어가려는 꽃송이 었을 뿐인데 가을이 넘어가는 계절 그렇게 삶의 궤도를 벗어났다.


'마음아...'그렇게 연민 담긴 울림으로 너를 부르고서...



우울은 그저 슬픔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삶을 잠식하는 거대한 그림자였다. 하루가 지나도, 그다음 날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육체의 고통이 정신과 마음을 갉아먹었다. 나는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게 정말 내 인생일까? 불치병이라는 진단이 나를 이토록 무겁게 짓누르는 것이 내 운명일까? 나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린 시절의 상처들이 다시 나를 휘감고, 엄마의 빈자리, 계모의 차가운 눈빛, 사랑받지 못했던 시간이 떠오르며 나를 더욱 짓눌렀다. 나는 끝없이 무너져 내렸다.

3년이 흘렀다.


그리고 그 끝에서, 나는 생각했다. 이건 내 인생이다. 누구도 나 대신 이 고통을 짊어질 수는 없다. 나는 그 사실을 가만히 받아들였다. 3년이 걸렸다.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 저림과 마비, 개미들이 기어 다니는 듯한 감각.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밀려오는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것을 견디는 가운데 나에게 남은 건 한 가지였다. 나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살아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발이 저리고,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나는 숨을 쉬고 있다. 병이 더 심각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느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조차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그저 고통은 내게 존재했고, 나는 그 안에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여기에 있다. 그것만은 변하지 않았다.


삶이 어디로 이어질지 알 수 없었다.  그 불확실성 속에서도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계속 걸어야만 했다. 아직 답을 찾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한다고 느꼈다.


고통스럽고 불확실한 길이지만, 나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 뿐이었다. 내가 멈추면 내 세계도 끝난다. 우울이 나를 집어삼킬 때에도, 나는 나 자신을 떠올리며 감사하려 했다. 이 바늘 위를 걷는 듯한 고통 속에서도, 살아있음을 느끼려 노력했다. 나아가야 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 길 끝에서야 비로소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제, 나는 미래의 나에게 묻고 싶다.


그 고통 속에서 살아남은 너는, 지금 어떤 길 위에 서 있을까?
이제는 스스로에게 조금 더 다정해질 수 있니?
아니면 여전히 그때의 나처럼, 묵묵히 견디고만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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