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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나눔 Dec 17. 2022

겨울 산

어제도, 오늘 아침에도 날씨를 확인했다.

엊그제 문이 많이 내렸는데, 간밤에도 또 눈이 왔다.

‘언제 출발해야 하나?’

‘낮에도 영하 4도네.’

D-시간을 12~13시로 정했다. ‘영하 5도면 할만하겠네.’

그 시간까지 뭔가 해야 하는데, 딱히 할 만한 것이 없다.

새벽에 일어나 책도 읽었고.

‘에라 모르겠다.’ 11시를 넘기기 전에 옷을 갈아입었다.

그런데, 1급 겨울 등산복이 안보인다.

“두꺼운 등산복 어디있어?”

아내는 “오늘은 실내 운동하지?”하며 권한다.

1급 등산복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을 예감하고 아쉬운 대로 약간 덜 두꺼운 2급으로 갈아입었다.

귤 하나를 챙기고 물가에 내어논 엄마의 눈길을 주는 아내를 외면하며 한 마디 잔소리라도 덜 들으려고 이내 대문을 열어 제쳤다.     


주말에는 단속을 하지 않는 산 밑의 길가에 차를 세우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빵모자를 뒤집어 쓰고 산길을 올랐다.

‘1급 입었으면 더웠을 뻔했네.’ 

중턱에 오르자 장갑을 벗고 겉옷의 자크를 내렸다.     

“뽀드득, 뽀드득.” 눈이 밝히는 소리가 청명하다.

해가 ‘짱’ 하고 뜨고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아서 등산하기에는 좋은 날씨다.

간간히 부는 바람에 나무에서 떨어지는 눈을 맞으며 화이트 등산을 즐겨본다.

등산화에 아이젠을 장착하고 스틱을 들며 내려오는 중년 여성들의 무리를 청각에서 먼저 발견한다.

세 명만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데, 반가움에 기쁨의 눈길을 보낸다.

성큼 성큼 씩씩하게 내려가는 모습에 마음으로 엄지 척도 보낸다.     

2/3 쯤 당도하여 매 번 쉬었다 가는 벤치에 좌정.

눈을 누군가 엉덩이를 걸칠 만큼만 치워서 나도 같은 사이즈만 살짝 얹엇다.     


정상에는 크지 않은 공간에 운동하는 사람,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 먼 발치를 감상하는 사람들이 듬성듬성 있다.

비어 있는 벤치에 앉아 10배가 넘는 가치를 주는 귤을 일부러 야금야금 먹고 껍질을 주머니에 넣었다.

평행봉에 매달려 스트레칭을 하고 허리 운동을 도와주는 기구에 올라 이리 저리 회전을 했다.

갑자기 바람이 쎄게 불어서 다시 빵모자를 쓰고 하산.

내려오는 길에는 바람이 조금 거세다.


겨울 산에도 아이젠과 스틱 없이 가는 습관이 들어 선지 그렇게 미끄럽지 않게 느껴졌다.

장비보다 주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조심 조심 내려 온다.

주의하지 않으면, 평지에서도 넘어질 수 있다.

발을 옮기는 곳을 제대로 집기만 하면, 위험하지 않다.

그러나, 주의력이 떨어져서 딴 생각하다가 ‘꽈당’ 하는 것이다.     


하산 막바지에는 언제나 기분이 최고조다.

일주일 스트레스가 싹 가시는 느낌이다.

건강을 얻은 것은 보너스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다.     


등산은 가장 가성비있는 운동이다.

돈이 안든다.

걷기도 가성비 짱이다. 하지만, 등산은 같은 시간에 훨씬 운동 효과가 크다.

하지만, 하산시 관절을 고려해서 천천히 내려와야 한다.

전에는 뛰듯이 빨리 내려왔지만, 관절에 무리를 느낀 후에는 올라갈 때와 스피드가 비슷해졌다.

나무와 잎, 꽃을 주의 깊게 관찰하며 천천히 내려오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리나라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녔다.

산이 멀어서 가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스위스, 일본 등 몇 개 국가 정도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산이 많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놀라는 것이 있다.

대도시 안에 큰 산이 있는 것이다.

전철을 타고 산에 간다.     


예전에 파리 에펠탑 관광을 간 한국인들의 등산복 패션에 대해 외국 기자가 비판을 하는 기사를 봤다.

정확히 누가 그런 기사를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등산복을 파리에서 입으면 안되는가?

노출이 심해서 외설적인가? 

산이 많은 우리는 등산이 일상이고 등산복은 일상복이다.

디자인도 좋아지고 활동하기에 좋은 등산복은 좋은 여행복이다.

우리가 파리의 패션을 따를 이유는 없다.      


산은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고 심신을 달래 준다.

비록 경작을 할 면적이 적어지지만, 그 이상의 역할을 해준다.

산이 어우러진 우리나라의 자연은 세계 어느 나라에 견주어도 빠지지 않는다.

예전에 모스크바에서 유명하다는 산을 갔는데, 우리나라의 동네 산보다 작고 낮았다.

수십 개 국을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나라의 관광 자원은 세계 최고라는 것이다.     

이렇게 차로 15분이면 갈 수 있는 도심의 동네 산 하나도 타국의 어딘가에서는 국립공원 지정을 할 것이다.     



겨울 산이 새하얗게 반짝이는 작은 보석들을 덮고 심신을 녹여 준다.

집에 와서 밀크티 한 잔을 음미하며 좋은 하루를 또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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