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처리반
그를 봄
주차장을 알게 된 것은 중국 출장을 갔을 때였다.
회사의 명을 받들어 이직한 지 정확히 5일째 되는 날 중국법인 TF에 합류하게 되었다.
입사 첫날부터 회의에 참석해 TF의 취지, 방향성, 역할 등에 대해 체할 정도로 정보를 꾸역꾸역
집어넣기 시작했고 몇 번의 회의 중 그가 참석해 옆자리에 앉았다.
그 또한 나와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새로 나온 스마트폰 설명서를 읽으며 기능을 숙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처음 그를 보았을 때 모범생 같은 이미지에 성실함이 느껴졌고 맡은 바 업무를 착실하게 수행하고 있음을 육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출장 전까지 수차례의 회의를 통해 각자의 역할이 정해지고 회의를 주도한 임원들과 부장들은 성심성의껏 알고 있는 상황들에 대해 최대한 디테일하게 전달하려고 얼굴에 핏기를 세우고 있었다.
마치 수류탄의 안전핀을 암묵적 동의하에 제거하고 나서 자리를 성급히 뜨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면서......
출장 당일 인천공항
월요일 오전 출국을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리무진 버스에 올랐다.
입사한 지 5일째......
이직 후 환경에 대한 적응이 시작되기도 전에 중요한 TF에 참여하게 되어 그 긴장감은 두려움을 불러내 몸은 파킨슨씨 병처럼 경직되어 가고 있었다.
약속한 시간에 여유 있게 도착하는 것만으로도 경직성을 줄여줄 수 있다는 주문을 되뇌면서 그렇게 리무진 버스는 김포공항을 지나 인천공항대교를 막 통과하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진행되어 가고 있는지?
나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는지?
"삶은 때때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기에"
리무진 버스 속도 계기판처럼 내 머릿속 생각은 시시때때로 질문의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해 10일간 함께해줄 수하물을 부치고 나의 발걸음은 서둘러 은행 환전소로 향했다.
그렇게 비상자금을 위안화로 환전하고 나니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습관처럼 캔 커피를 사서 집결지인 4번 게이트 앞 좌석에 착석해 내가 지금 있는 세계에 대해 차분히 생각하고 있을 때 회의에서 본 그가 서서히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좌석에 짐을 내려놓고 출력해온 A4용지 몇 장을 스캔하고 있었다.
잠시 후 삼삼오오 도착 한 TF팀에서 주차장과 함께 막내의 역할을 감당해야만 했던 것이었다.
도착
1시간 30분의 비행 끝에 TF팀은 상해공항에 도착해 마중 나온 법인 주재원과 인사하고 법인으로 가는 차량에 올라탔다. 오랜만의 해후인 듯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는 사이 나와 주차장은 창밖의 풍경들만 소리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2시간 정도 흘렀을 때 법인차량은 산업단지로 진입하고 있었고 의식적으로 옷 매무새를 점검하고 있을 때 순간 스쳐 지나가는 딸과 아들의 해맑은 미소가 섬광처럼 눈을 흘기고 지나갔다.
법인에 도착 후 경기 시작을 알리는 행위인 Kick-off Meeting을 습관처럼 시작하고 경직된 몸은 이미 배터리 절약 모드 알람과 동시에 작동하고 있을 무렵 예상했듯이 "저녁식사"대접이라는 캐캐 묵은 스케줄은 피로를 감추어야만 하는 미덕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된 직장문화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 자리에 긴장감을 풀고 서로의 정보를 강탈하기 위해 "술"은 필수 불가결한 전략무기 중 하나이지만 매번 빠지고 싶지만 빠질 수 없고 숙소에서 쉬고 싶지만 쉴 수 없는 동아줄에 묶인 운명 이해집단 이기에 나와 주차장의 막내 포지션으로 40초 중반 줄의 나이에 감수해야만 벅찬 덕목이다.
매번 토시 하나 바뀌지 않는 해외출장 스케줄은 법에서 규정해도 될 듯하다.
숙소
취기가 올라 얼굴이 불그스레해졌을 때쯤 도착한 숙소엔 적막감과 극도의 피로감이 반겨줄 뿐 위로 감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이제야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나면 귀찮았던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먼 타지에서 일찍 일어나 업무 준비를 하려면 생각은 되도록 의도적으로 짧게 해야 만한다.
그때까지 주차장의 삶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업무 시작
다음날 눈을 떠보니 전혀 생소한 곳에 누워있는 나 자신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치 한겨울에 수도관이 동파되어 찬물로 세안할 때처럼......
우리의 업무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렇게 끌려다니기 시작했다.
보고서를 정리하는 역할과 자료 정리 분석 역할도 죽마고우처럼 따라다녔다.
발마사지에서 구토하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술자리에 실무를 쳐내야만 하는 나와 주차장의 피로는 갈수록 눈가에 다크서클로 드리워졌고 또 다른 술자리를 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놓이자 숙소행을 선택했다.
숙소에 도착해 엘리베이터 안에서 주차장에게 커피 한잔을 제안했고 동병상련을 아는지 흔쾌히 수락했다. 쌓인 피로를 녹일 겸 숙소 앞 빌 마사지로 향해가면서 우리는 40대의 공감대를 정의했다.
옆자리에 누워 신상명세를 나누면서 그 역시 이직한지 3개월 정도 된 상태에서 TF팀에 급작스레 착출 되었다는 것도.
주말부부가 질려 이직한 곳에서 다시 주말부부생활을 3개월째 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배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상황과 그들이 논리라 명명하는 논리에 수 없이 바뀌는 조직규정들......
주차장은 또다시 이직을 고민하고 있었다. 이전의 경력을 무시한 업무지시와 역할......
너무나 힘들어하고 있는 모습에 연민의 정(情)이 서서히 가슴을 적시고 있었다.
집과 가까운 곳에 이직을 했지만 약속과는 다른 지방업무 배분 등
이해할 수 없는 일련의 조직 논리는 개인의 상황과 경력이 아닌 수시로 변할 수밖에 없는 눈치보기와 부려먹기로 포장된 이해라는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생명력을 지속하려 하는 자들의 소꿉장난 같다.
더 비참한 악순환은 "노예가 노예를 부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 빌붙을 수밖에 없는
그 보다 더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을 알기에 더 비열하게 이러한 상황 자체를 이용하는 者 들이다.
그렇게 바닥 노예는 우두머리 노예의 "어쩔 수 없다는 비논리적인 통제"하에 멍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짧은 시간에 느껴왔던 주차장과는 다른 또 다른 40대 가장의 모습이 보였다.
서로의 신앙이 같다는 이유로 좀 더 버텨보기로 이직한지 7일째 인 내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엔 혼란스럽기에 적극적으로 이직한 채 3개월 된 주차장을 그렇게 신앙의 힘으로 묶어버렸던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공통분모를 찾아가면서 버티기로 했던 것이다. 우리의 대화 속에는 회사생활을 희석할 수 있는 다른 세계에 대해 이야기했고 접점을 찾아야만 했다.
주말 내내 숙소와 현지법인에서 보고서와 자료 정리를 하면서 그렇게 주말을 새벽까지 할애하고 있었다.
긴장감에 몸살이 찾아왔지만 개인적인 하소연은 통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몸속에서 숙성시켜가며 출장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귀국
드디어 귀국하는 날이 다가왔다. 얼굴엔 몸살을 뛰어넘어 생기가 덜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일 오전에 귀국 날짜를 잡아버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기보단 대단한 것을 빨리 보여주고 싶은 윗선의 전략적인 판단이었음에 틀림없다.
쉬지도 못한 채 짐을 꾸역꾸역 싸들고 회사로 향했다. 어렸을 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시청했던
"철인 28호"가 떠오른다.
이미나는 철인 42호 인걸......
하지만 그래도 인천공항에 "Arrive at"이라는 기장의 멘트가 기쁜 소식임에는 틀림없다.
또 다른 일정
귀국 후 출장 보고서를 작성한 지 80 page 가량의 PPT를 제본하고 안도의 쉼을 느끼려는 순간도 잠시.
다음 주 베트남 출장이 잡혀버렸다.
주차장과 함께......
또 막내의 역할로......
이직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이런 중요한 업무의 PM을 주는 것일까?
폭탄 처리반.
발 마사지에서 주차장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이직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들어주고 위로했던 그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르기 시작한다. 짜증과 함께......
그날 저녁 퇴근 후 주(酒)차장과의 약속을 위해 회사 앞 꼬치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조직은 개인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기에
개인의 목소리와 감정은 묻어야만 하고
노예 수장의 목소리에는 이유 없는 찬성을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암묵적 동의가 지속될수록 생각 없이 결국 영혼까지 요구하는 자체가
당연시되어버리고 회복될 수 없는 정의가 내려지게 된다.
"나 스스로 정의하지 못하면 누군가의 정의에 따라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