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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땃쥐쓰 Feb 27. 2020

1-2

반지는 알(?)이 없는 것으로



그다음은 결혼반지.

반지 역시 오랫동안 생각해온 나만의 기준이 있었다.

알(?)이 없는 아주 평범하고 심플한 반지 하나만 할 것.


커플링-약혼반지-결혼반지로 이어지는 일련의 루트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부부가 되었다는, 혹은 된 거나 다름없는 사이라는 것을 전 세계적으로 증명할 작은 고리 한 쌍뿐이었다.

그것이 그것의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려면 언제나 왼손 약지에 끼워져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손으로 하는 모든 작업에 불편이 되면 안 된다. 한마디로 빛을 받으면 반짝하고 빛나거나 무게감을 상기시키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결혼반지의 의미가 영속성이라면 반지에 얹어진 돌이 상징하는 '영원한 아름다움'보다 '언제나 본인의 자리를 아는 편안함'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결혼반지의 영역이란 대개 여성의 로망의 카테고리 인지라 이 역시 내 의견을 피력하자 쉽게 타결이 되었다. 남은 것은 어디에서 내 마음에 드는 심플한 반지를 갖느냐였다. 심플한데 남들과 다르고, 싸구려 같지 않으면서 내 마음에 드는 가격대의 물건이란 또 희귀한 레전드 아이템과 같아서 우리는 백화점, 주변의 후기, 온라인몰 등을 무던히 돌아다녔다. 특히, 백화점 명품관까지 영역을 넓히고 돌아오면서 나는 명품산업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인생 액세서리가 될지도 모르는 반지를 누군가한테 빌듯이 사러 가다니. 까*티에와 불*리 앞에 기다리는 수많은 커플 중에 한 쌍이 되는 경험은 가히 전혀 즐겁지 않았다. 다이아몬드를 사지 않겠다고 하자 점원은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물건은 외국어로 된 카탈로그와는 달리 품목의 반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사이즈 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아서 도떼기시장 같은 매장에서 예에? 이것도 사이즈가 없다고요? 네에? 그 디자인은 국내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요? 하는 대화만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삼십 분을 기다려 2분 30초쯤 그 광경을 구경하고서 나는 불쾌해진 채로 나왔다.


그 외에 좀 덜 알려진 브랜드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명한 명품 가게라는 곳들보다는 한적했지만 어차피 한국 신혼부부에게 팔리는 건 A 모델 아니면 B 모델이라는 투의 영업과 내 눈에 영 아닌 색감과 질감인데도 불구하고 무조건 반사로 너무 잘 어울리십니다를 연발. 신뢰가 가지 않았다. 그런 타겟층이 분명한 산업현장을 보니 나는 사기도 전에 호갱이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나의 평생 소중한 물건과 그들의 돈을 쉽게 많이 벌어들이는 물건 사이에 느껴지는 괴리감이 불편했다. 둘 다 너무 지쳐 카페에 앉아 말없이 음료만 들이키고 있는데 갑자기 옆 테이블의 어떤 아저씨가 불쑥 미안합니다- 하면서 말을 걸었다.


충분히 이상해 보일 거라고 먼저 운을 띄우시면서 자기 지인이 반지 세공 일을 한다고 했다. 옆에서 듣자 하니 결혼반지를 고민하는 것 같아 실례를 무릅쓰고 말을 걸었다면서 이상한 홍보같이 느껴지겠지만 한 번만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으면 한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이것은 또 새로운 전략의 전도인가!라고 눈짓을 했지만 일단 주소를 받아 들었다. 반신반의로 홈페이지에 들어가자 의외로 아주 멀끔했고 우리가 흔히 아는 곳은 아니었지만 이미 꽤 많은 손님이 다녀간 나름의 인지도를 쌓은 브랜드였다. 처음에는 옆의 아저씨가 민망하지 않도록 장단을 맞춰주는 마음으로 오 이거 이쁘다~ 이쁘다~ 하면서 보고 있었지만 어느새 그 브랜드의 디자인과 철학이 마음에 들었고 방문을 결정했다.


자연을 모티브로 한 독특한 질감의 디자인이 무엇보다 새로웠고 손에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반지의 재료를 조절해 만든 색상이 다양해서 하얀 오빠와 모카색 피부를 가진 내가 통일된 콘셉트의 반지를 껴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예상 예산의 반 이하로 반지를 결정하고 주문을 마쳤다. 그리고 여행을 다니며 한 번도 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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