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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땃쥐쓰 Feb 13. 2020

[1장] 인트로_꿈에서 목표로

중요한 것은 여행 메이트!





나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언제부터였는 지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정처 없이 떠돌며 일정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 멋진 장기 여행을 하리라고 믿었다.


그 사전 여행인지 역마살인지의 영향으로 홀로 여행과 친구들과의 여행을 종종 계획해 다녀왔고 마침내 여행을 다닌 경험치들이 좀 차올랐다고 느끼던 그 시점, 소위 짬밥이 좀 찼다고 느끼자 이제는 그 원대한 꿈이 보다 가깝게 느껴졌다.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니고 보다 손에 잡힐 듯한 목표가 되어 있었다.


첫 번째 계획은 내가 나 스스로에게 놀랍게도 여행 메이트를 신중하게 고르는 일이었다.


평생을 홀로 살아도 외롭지 않을 것 같던 내가. 연애에 대한 조금의 관심도 없던 내가. 장기여행에 대해 구체적이고 진지하게 고려하자 가장 필요한 첫 번째 것은? 에 대한 대답으로


'사람을 한 명'.


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어떤 마음이냐고 하면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러나 장기여행의 메이트는 마치 '무인도에 낙오되었을 때 단 하나 필요한 것은'에 부합하는 좋은 대답으로 느껴졌고 결국 나는 한 동안은 외면해왔던 소개팅을 시작했다. 그런 걸 소개팅으로 얻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마치 포*몬 트레이너처럼 수풀을 헤치고 물살을 가르며 조건부합하는 친구들을 찾아 헤매었다.


그리고 소개팅 첫 만남에 항상 물었다.

"ㅎㅎ여행을 좋아하세요?ㅎㅎㅎㅎㅎ"라고.

그 말 안에는 '우리가 최소 몇 달을 혹은 몇 년을 낯선 곳을 함께 누벼도 싸우지 않고 때로는 서로의 침묵이 편안하고 음식에 까탈스럽지 않으며 도중에 연을 끊을만한 사건이 없을 만한 그런 사이가 될 수 있을까요?'라는 의미가 다소 들어있었지만 아마 상대방 분들은 잘 몰랐겠지..ㅎㅎ


그런 무척 찾기 힘든 전설의 포*몬, 아니 여행 메이트는 좀 더 현실적으로  


 - 인생의 어떤 시기에 긴 여행에 도전할 만한 배짱과

    (혹은 순응과)

 - 본인의 커리어 또는 일상에 대한 포기(세뇌로 인한 체념),

 - 그리고 지나치게 오지랖 넓은 지인이 없을 것 (가족 포함)


과 같은 조건들이 필요했고 나는 마침내 다소 희귀하고 다소 이상한 포*몬, 아니 여행 메이트 후보를 만나게 되었다. 꽤 키가 크고 약간 알파카 닮은 이 여행 메이트 후보는 다소 유순해서 지금부터 잘 꼬드기면 인도로 가는 비행기 편을 끊게 할 가능성이 보였던 것도 같다.


그 뒤로 사귄 지 만기로 일 년 반이 된 무렵 나는 야심 차게 고백했다.

'나... 있지... 말이지... 세계여행에 가고 싶어. 오빠랑.'

수줍게 말했지만 사실상 선전포고였으며 확인사살적 행위이기는 했다. 그전부터 세계 테마여행으로 예습, 복습을 철저히 시키며 장기여행에 대한 로망을 어필해왔고, 은근슬쩍 가고 싶은 나라들을 물어보며 의사도 타진해왔다. 다만 쐐기를 박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싶었던 것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알파카는 오므라이스를 퍼먹으며 여상하게 그래~ 그러고 말았다. 몇 번이나 확인하듯 물었지만 별 다른 말은 없었다. 나는 재차,


'오빠 나에게 장기여행은 인생의 전환점이고 한 챕터고 목표였어. 여기서 오빠가 나랑 이 여행을 가면 우리 사이는 이제 더 이상 나에게 그냥 사귀는 것 이상의 의미가 돼.

그것도 인지하고 있는 거야?'


라고 좀 더 심도 있는 질문을 해봤지만 답변은 허무하게 알아~ 그래~ 가 끝이었다.

나는 좀 더 고민하는 듯 심각하게 반응해야 하는 사안이 아닐까 그의 신변을 조금 걱정했지만 원하는 답변을 얻었으므로 그냥 지나가기로 했다.


이 단순한 답변으로 알파카 씨는 대학원 후 취업과 결혼식과 지금까지 뿌린 수많은 축의금, 그리고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는 하얀 얼굴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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