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네 기분은 어떤 색깔이니'(최숙희)
요 몇 년, 한동안 잊고 있었던, 혹은 새롭게 알게 된 다채로운 색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원색, 형광색, 무채색, 이 세상의 색깔들을 모두 끌어모은 세상. 마치 전생과 현생이 구분되는 것처럼, 어떤 기점으로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책으로 넘어갔다기보다는 그냥 다른 행성에 불현듯 떨어졌어요. 셀 수 없는 무지개들이 가득 펼쳐진 행성들에서 정처 없이 헤매오. 그렇다 할 목표나, 뭔가를 찾는다거나, 어디에 도달해야겠다는 지점이 뚜렷한 것도 아니지만 그냥 헤매고 있어요. 그래도 이 행성에서 살아내기 위한, 조금은 괜찮은 방법이 있을까 열심히 찾아봅니다.
'엄마'로 살고 있는 제 모습입니다. 엄마가 되고 나니, 잠시 머무르는 감정의 공간이 수시로 변합니다. 기쁘고 슬프고 좋고 재미있는, 평이한 단어들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그 공간들. 머무르는 속도나 깊이도 가늠할 수 없습니다. 예측 불가한 공간을 살아내다 보니,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깊어지고 있습니다. '무르익는다'고나 할까요. 진국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찾기 위해 종종 매만져보게 되는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최숙희 작가님의 그림책, '네 기분은 어떤 색깔이니'입니다. 한 아이의 입김에 다양한 색깔의 물방울이 입김처럼 뿜어져 나옵니다. 그 색깔들 안에도 각기 다른 색의 점들이 있어 명확하게 그 색을 정의하긴 어렵지만, 여러 가지 빛깔들의 출발지만큼은 뚜렷해 보입니다. '나'로부터 출발된 이 색깔들. 그것들은 모두 곧 '나'입니다.
이제 막 눈을 뜬 상태입니다. 아침에 일어난 상황인가,라고 단편적으로 생각해 보았지만, 그냥 문득, 엄마가 되던 날이 떠올랐습니다. 임신테스트기를 확인하던 날이라고 해야 할지, 출산 직후라고 해야 할지, 조리원에서 신생아를 집에 데리고 오던 날이라 해야 할지, 처음으로 아이를 야단치던 날이라고 해야 할지, 처음으로 아이에게 '엄마'라는 말을 들었던 날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어느 출발선에 선 순간들에 느꼈던 마음들은 모두 '눈부신 하양'이라는 단어로 가장 잘 설명되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왜 그랬을까?'
그렇게 시작한 눈부신 하양이었는데, 어느 날인가부터 이 문장이 저에게 메아리쳐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책 속의 아이처럼, 깊고 깊은 바닷물 속에 혼자서 풍덩 빠져버린 듯 귀가 먹먹해졌습니다. 아이들을 재우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질문으로 휘황합니다. 아이들 앞에서 짓고 있었을 저의 표정들, 애써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표현하던 말투들, 눌러 담다 못해 삐져나오고 터져 나와버린 감정의 찌꺼기들. 반성의 체에 걸러지는 그 짙푸른 것들만 무수히 떠오릅니다.
아이에게 화를 내고, 마음 둘 곳 없이 허공을 향해 우는 아이에게 손을 뻗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상처가 난 줄도 모르고, 그냥 엄마한테 다시 와락 안겨요. 그저 엄마면 돼, 무조건의 위안에 한없이 미안해졌습니다. 조건에 조건을 붙여 입발린 사랑을 주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들여다보았습니다. 엄마의 사랑보다 아이가 엄마를 향해 내어놓는 사랑의 크기가 너무나도 따스한 갈색 같아 마음이 쓰라렸어요.
자고 난 후 땀에 젖은 아이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밀려오는 저의 부족함도 쓸어 넘겼습니다. 내일은 더 잘하겠노라고, 빈 깡통 같은 다짐도 쓸어 넘겼습니다. 자꾸자꾸 달라지는 이 기분들을 질타하지 말고, 알록달록 다채로운 엄마의 모습으로 아이에게 보이길 희망해 보았습니다.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보다는, 단단해지기로 했습니다. 어디 있는지,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행복만을 갈구하던 방황자가 아닌, 단단한 색깔 덩어리들을 차곡차곡 쌓아야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그 덩어리들이 아이에게 오롯이 전해져, 이 세상을 살아가는 현명한 기둥이 될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습니다.
불현듯, 불시에 사로잡던 감정들. 분명 내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으로부터 괴리감이 시작되었고, 괴리감은 회의감을 낳고, 회의감은 무기력을 낳고, 무기력은 눈물을 낳았습니다. 가슴을 댕강 도려내는 듯 후벼 파기도 했다가, 넘칠 듯이 충만한 무언가로 채워지기도 하던 시간들. 오롯이 모두 나의 색깔들로 인정하고 품어내는 연습이 꾸준히 필요했습니다.
아이의 휘황찬란한 발레치마에 갇혀있는 듯하면서도 동실동실 날아다니던 하늘하늘한 빛깔들이 참 예뻤습니다. 엄마와 함께 있어서 그저 좋은 아이의 마음에 화답하는 마음으로, 그 빛깔들을 즐겼습니다. 이제 조금씩 자신만의 세상을 짓고, 엄마의 노크가 부담스러운 나이가 오는 그 순간에도 담담하게 있어줄 수 있도록, 차근히 아이의 속도로 나란히 걸어보려고요. 엄마의 발걸음을 벗 삼아, 세상을 사랑하고 찬란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단단하게 커 가길, 가만가만 토닥여 보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