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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경계의 반대편

by 초연이

AI에 대한 소식들이 매일매일 쏟아집니다. 사람이 하는 일을 능가하는 인공 지능을 벗으로 삼을 것인지, 인간을 위협하는 경계의 상대로 삼아야 할지 다들 고민이 참 많습니다. 인공 지능 시대를 이미 어른이 되어 맞이한 저의 미래와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상상하려 해요. 하지만 그 상상의 전개는 기대나 희망보다는 갈수록 우려와 걱정이 더 많아진 이 쪼잔한 마음 때문에 줄곧 막혀버리곤 합니다.


울타리 안쪽에 반쯤 갇혀 있지만, 벽 너머로 시원하게 가지를 뻗어낸 감나무를 만났습니다. 어른들이 지켜주고자 세워놓은 벽을 뒤로하고, 자신 있게 뻗어나간 가지는 꼭 아이들 같습니다. 가만히 벽을 넘나드는, 스스로 자라나는 생명력이 참 좋아 보였습니다. 이 생명력을 한 번 더 소중하게 여겨볼 수 있었던 그림책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송희진 작가님의 '황금 사과'입니다. 황금 빛깔을 띄는 사과 주변으로 사람들이 둘러 있습니다. 특정한 누군가의 소유물은 아닌 듯, 모두가 각각 비슷한 거리로 서로 떨어져 있어요. 하지만 서로 간에 연결되지는 못한 채, 누가 먼저 사과를 가질세라, 사과 근처를 떠나진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은 이 황금 사과의 소유권을 두고 열심히 싸우고 있었어요. 싸우는 순간에도 서로 타협의 의지는 없는 건지, 눈맞춤 하나 없이 그저 사과만 바라보며 투쟁 중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소유를 지키기 위해 울타리를 치고, 담을 쌓고, 경계선을 그으며 점점 더 단단한 물리적, 심리적 벽을 만들어 내요. 한 치의 양보도, 배려도, 이타심도, 상호 존중의 마음도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삭막해지고 말라붙어 가요.



서로를 향한 의심과 적대감은 새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전해집니다. 직접 보지도 않았는데 진실처럼 믿고 있던 것을 아이들에게 주입시켜요. 이성적, 논리적으로 설명할 자신도 없으면서, 그저 불안함을 투영시키는 어른의 나약함이 서늘하게만 느껴졌어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용감한 한 아이가 담 너머를 바라보고, 놀라운 장면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 너머에는, 자신과 너무도 닮은 또래 아이들이 웃으며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무시무시한 괴물이 산다던 어른들의 말과는 전혀 다르게, 경계의 반대편에는 그저 다른 사람이 아닌, '또 다른 나'가 있었던 거예요. 성큼 담 너머로 넘어간 아이는 말합니다.


안녕, 내 이름은 사과야. 너희 이름은 뭐야?






최근 한 방송에서 들은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앞으로는 다양한 인간관계 안에서 부딪히고 좌절하고 타협하며 성장할 수 있는 아이가 더 큰 힘을 갖게 될 것" 이라고요. 열심히 경쟁해서 앞서가는 아이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기술을 배우는 아이,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갈등을 피해 도망가는 대신 천천히 풀어보려는 아이, 인공 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관계의 감각"을 가진 아이.


자라나는 많은 아이들이 감나무처럼 그저 바깥을 향해, 빛을 향해 자라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른들이 만든 욕심과 두려움의 벽 때문에 멈추지 않기를, 경쟁 속에서 서로를 질투하는 대신, 관계 속에서 마음을 배우기를. 자신만을 지켜내기 위한 이기심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도'와 '거리'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마음을 키워가기를 바라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어른들이 조금만 더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세상이 우릴 향해 벽을 세우더라도 그 벽 너머에 있는 사람이 어떤 얼굴인지 '먼저' 바라보고, 그곳으로 건너가는 길은 "안녕"이라는 작은 인사에서 시작됨을 '먼저' 알고 실천하기를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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