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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궁서체
by 해람님 Oct 14. 2016

국뽕이 정말 위험한 이유

국뽕은 어떻게 문화를 죽이는가


 지난 8월 공개된 U-20 월드컵의 마스코트 '차오르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조소'였다. 한복에 호랑이라는 식상한 컨셉에 아스트랄한 미적 센스까지 더해져 최악의 캐릭터가 탄생했다는 것이 주된 여론이다. 사람들이 차오르미를 싫어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그 망측한 디자인에 있겠지만, 나는 그 이면에 '국뽕 코드'에 대한 피로감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 국뽕을 하루빨리 문화계에서 뽑아버려야만 우리 문화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꼭... 그래야만 했... 냐!!!

 '국뽕'은 국가+히로뽕(마약)의 합성어로, 마약에 취한 것처럼 국가나 민족에 경도된 상태를 뜻하는 신조어다. 국뽕의 소재로는 주로 좋은 성적을 낸 운동선수(박지성, 김연아 등)나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문화(김치, 한복 등)가 이용된다. 가만히 놔두면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는 것들을 국가/민족의 우수성으로 포장하여 애국심이나 민족적 자존감을 높이는 데 사용하는 것이 국뽕의 방법론이다.

 즉, 국뽕의 목적은 퀄리티에 있지 않다는 말이다. 우리가 그동안 봐온 수많은 국뽕 콘텐츠들이 심미적으로 '구렸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이는 전통문화적 요소를 수용할 때 더욱 그렇다. 문화콘텐츠 사이의 융합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는 곳에 아리랑을 넣고 모든 음식에 김치를 얹으니까 당연히 퀄리티는 바닥을 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강제로라도 외국인으로부터 문화적 우수성을 인정받아내고야 말겠다는 한심한 사고방식은 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국뽕 콘텐츠들을 단순히 배척하고 자연도태시킴으로써 이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을까? 아쉽지만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국뽕 콘텐츠는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취객과도 같아서, 무시한다고 사라지거나 피해가 줄어들거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랩퍼의 '귀에 때려박는 랩'처럼, 국뽕 콘텐츠는 매번 우리의 눈과 귀에 때려박힌다. 애초부터 그러려고 만들어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국뽕의 가장 큰 해악이 발생한다. 그것은 국뽕이 소재로 삼은 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피로감'이다. 국뽕 콘텐츠들은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특정한 감상과 취향, 정서를 강요한다. '한국인이라면 마땅히 이것들을 즐기고 감명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한국인이란(또는 한국인이었단) 사실을 바꿀 수 없기에 이런 메시지는 더 피곤하다. '청춘이라면~', '대학생이라면~', '우리 반이라면~'하는 말들이 얼마나 피곤을 자아내는지 생각해보자.

전설의 '제한맨'

 게다가 국뽕 콘텐츠들은 사람들이 문화를 향유하는 방식과 완전히 다른 형태로 소비된다. 문화예술의 향유는 '공적인 행위'에서 '사적인 행위'로 점점 변화해 왔다. 콘텐츠에 담긴 메시지 역시 공공의 가치를 주입하는 쪽에서 점차 사적인 감정과 경험을 중요시하는 쪽으로 변해왔음은 물론이다. 고대의 서사시와 현대의 서정시, 고대의 제례음악과 현대의 팝을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국뽕 콘텐츠는 '공적 향유'를 추구한다. 대부분의 국뽕 콘텐츠는 홍보(행사든 가치관이든)를 위해 만들어지고, 홍보는 최대한의 노출을 지망한다. 즉, 우리는 보기 싫어도 국뽕 콘텐츠를 보게 되는 것이다. U-20 월드컵 경기를 볼 때마다 반드시 차오르미를 봐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 국뽕 콘텐츠의 메시지인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과 우월감'이 맞물리면 보는 사람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이 피곤해진다. 국가적/민족적 소속감의 영향력이 점점 줄어드는 요즘엔 더욱 그럴 것이다.

 진짜 문제는 이런 피로감이 국뽕 콘텐츠를 넘어 그 원재료에까지 확장된다는 데 있다. 한복을 입고 김치를 즐겨 먹는 이세돌 닮은 호랑이 캐릭터가 향후 10년 동안 다섯 번 정도, 그것도 공적 영역에서 등장한다고 상상해 보자. 10년 뒤의 사람들은 한복과 김치와 호랑이와 이세돌 모두에 반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반감은 문화적 노이로제에서 비롯된 방어기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복과 김치와 호랑이와 이세돌은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말이다. 전통을 살리려 할수록 전통을 죽이게 되는 아이러니다.


국뽕계의 역작, 애니매이션 '김치 워리어'


 콘텐츠는 반드시 '즐거워야' 한다. 문화예술의 이 '즐거움'은 감정의 고양과 해소를 돕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웃겨서 깔깔 웃든 슬퍼서 엉엉 울든 결국은 즐거운 것이다. 그리고 즐거운 것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바꿔 말하면, 지루한 것으로부터 즐거움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국뽕은 멀쩡한 것도 지루하게 만드는 마력을 갖고 있다. 국뽕 콘텐츠가 우리 문화의 다른 영역에 입힐 어마어마한 민폐를 상상하면 머리가 막 아찔해질 지경이다.

 솔직한 심정은 국뽕방지법 같은 법안이라도 만들어서 다 금지시켜버리고 싶지만 국회의원이 아니라서 그럴 순 없고, 오늘도 국뽕에 열을 올리고 있는 높으신 분들께 딱 한마디만 전하고 싶다. 진짜 작작 좀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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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직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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