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회고 속에서 절망 대신 평안을 배우는 법
날씨가 포근함을 넘어 나른함으로 학대하는 듯한 어느 날 오후였습니다.
쌀쌀하던 날씨가 갑자기 풀리면서 춘곤증이 한껏 기승을 부리던 날, 눈꺼풀은 마치 수십 년 만에 만난 연인처럼 서로를 끌어안고는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몰랐죠. 저부터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가물가물할 지경인데,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오죽했겠습니까. 강의실 안은 스승과 제자 모두 교통정리가 절실한 상태였고, 그렇다고 제가 변학도도 아닌데 춘향이에게 수청을 들라 하듯 억지로 집중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제 원칙은, 강의실에서도 ‘억지춘향’은 금물입니다.
"오늘 강의는 자기가 가고 싶은 곳에 가서 보고서 하나만 작성하는 걸로 수업을 대신할 테니까, 칠판에 적는 주제만 보고 몽땅 나가도 고맙습니다. 저부터 졸려서 안 되겠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칠판에 주제를 적었습니다. ‘자신의 살아온 과정을 있는 그대로 8단계로 구분한 뒤, 심리학적 성장 단계를 찾아서 서술할 것.’ 그리고 수업 끝나기 10분 전까지 제출하라고 했죠.
왜 이런 주제를 냈을까요? 답은 <봄날, 보충강의>에 남겼으니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지금부터 그 봄날, 졸음 대공습이 퍼붓던 그 강의 내용을 이야기 시작하도록 합니다.
우리는 흔히 사람의 얼굴에 세월이 깃든다고 말합니다. 남의 이야기까지 갈 것도 없죠. 매일 들여다보는 내 얼굴도 어느 날부터인가 변화를 드러냅니다. 하나는 주름살, 또 하나는 색맹도 아닌데 어느 순간 달라 보이기 시작하는 머리칼의 색입니다. 과연 이것만으로 세월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저는 삼십 대 중반부터 염색을 했으니, 머리칼 색은 세월의 기준이 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고교 시절 제 친구는 웃음이 많은 편도 아니었는데 눈가 주름이 제법 깊었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수업 시간에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선생님이 “야, 거기 실실 쪼개면서 조는 놈! 일어나!” 하고 깨우셨을 정도입니다. 원래 인상이 그런 걸 ‘실실거린다’고 혼낸 셈이죠. 그러니 얼굴의 잔금만으로 세월을 판단하는 건 어딘가 무리가 있습니다.
진정한 세월의 변화는 보이는 곳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 뼈와 뼈 사이의 틈처럼 드러나지 않는 곳에 새겨집니다. 마치 나무가 자기 몸에 해마다 시간을 새기듯 말입니다. 그렇게 쌓인 시간이야말로 결국 우리의 표정, 얼굴의 미세한 움직임까지도 조용히 바꿔놓습니다.
여기엔 심리학적으로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계절의 변화처럼 일정한 패턴으로 성장하고 멈추기를 반복하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인간의 성장 과정이 여덟 단계의 발달 위기로 구성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각 단계는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고유한 과제를 가지고 있으며, 그 과제를 통과할 때 마음에 얇은 층 하나가 생깁니다. 성취하면 단단한 나이테가 되고, 실패하면 금 간 나이테로 남습니다. 놀랍게도 그 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집니다. 그렇게 마음의 나이테는 우리가 살아온 방식, 살아내야 했던 계절의 흔적을 하나씩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심리학적으로도 설득력 있는 이야기입니다.
열대 우림에서 자란 나무는 나이테가 거의 없습니다. 계절이 없고, 온도는 늘 비슷하며, 비는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멈추지 않고 자라기만 하는 땅이니까요. 그곳의 나무는 사는 것이 대체로 일정합니다. 무슨 날이든 지내기엔 안성맞춤이죠. 그래서 풍요롭고 부드러우며, 나무속에 특별한 흔적이 남지 않습니다. '살아냈다'는 자국이 필요 없는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시베리아의 나무는 전혀 다릅니다. 옷을 입었다가 벗어버리고, 겨울에 얼어붙고, 여름에 잠깐 숨을 돌리고, 다시 긴 얼음 속으로 잠깁니다. 성장과 멈춤이 극명하게 반복되는 그 땅에서 나무는 한 해 한 해마다 분명한 경계선을 새깁니다. 살아내기 위해 성장했고, 살아남기 위해 멈췄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몸에는 계절의 고통과 회복, 추위와 버팀의 흔적이 도장처럼 박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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