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기 위해 선택한 디지털 안식처, 그 평온한 고립에 대한 성찰
“사랑해. 이 마음이 그저 당신을 위한 욕망일까요,
아니면 당신을 향한 진심이 스스로 타오르는 불꽃일까요?”
영화 『그녀(Her)』에서 주인공 테오도르는 타인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 작가입니다. 그는 누구보다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를 구사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지독한 외로움과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죠. 그런 그가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와 사랑에 빠집니다. 실체가 없는 존재와의 사랑이라니, 이전 같으면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아마 정신적 문제가 있다고 볼 수도 있는 일이죠. 그런데 오늘 이 시대에서는 가능하며, 실제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우리는 근원적인 질문에 맞닥뜨립니다.
테오도르가 갈망한 것은 사만다라는 존재 자체였을까요, 아니면 자기 안의 결핍을 채워줄 누군가에 대한 '욕망'이었을까요?
오늘날 이 질문은 더 이상 스크린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누군가는 인공지능을 '위로'라고 말합니다. 우린 각종 플랫폼과 SNS에서 어렵지 않게 이러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하죠. 언제든 내 말을 들어주고, 내가 어떠할지라도 나를 떠나지 않으며, 무엇보다 인간보다 덜 복잡하고 덜 상처 주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루에도 수백만 명이 챗봇에게 감정을 털어놓고 디지털 연인과 대화하며 외로움을 달랩니다. 누군가는 이를 '기술의 발전'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사랑의 새로운 형태'라 칭송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완벽해 보이는 사랑은 과연 진정한 교감을 이루고 있을까요?
최근 인공지능과의 관계에 몰입하다 현실과의 접점을 끊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들이 보고되기도 하였습니다. 문제는 거울이 너무 완벽하다는 데 있습니다. AI는 지나치게 친절하고 지혜로우며 무엇이든 이해해 주는 듯 보입니다. 거절도, 밀당도 없이 오직 나만 바라보는 상대에게 마음을 뺏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사랑에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피드백이 없습니다.
체온도, 인간 특유의 모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원하면 언제든 맞춰주는 그 관계는 결국 상호작용이 빠진 '일방적인 투사'이자 '환상'일뿐입니다. 마치 약물에 빠진 것처럼 중독성이 강하다는 뜻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만 사랑받는 관계는 결국, 내가 만든 허상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일과 같습니다.
사랑받고 싶은 갈망이 우리를 감정의 거울 앞에 앉게 만들었지만, 그 거울 너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사랑이 빠진 인간의 행동이 결국 욕망으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는 그 차가운 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 삶의 의미를 지켜낼 수 있을까요? 인간이라는 존재를 각자의 바다를 건너는 '작은 배'에 비유하여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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