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의 일기』 2부

소란하고 다정한 어느 주부의 하루

by Itz토퍼

가정이라는 이름의 작은 우주에서 나에게 보내는 위로



오늘도 나는 ‘나’와 싸웠다.

"오늘 또 왜 그래?"


어제도 그랬다. 이른 아침, 알람보다 먼저 눈이 떠진다. 아침마다 국을 찾는 남편과 아이들 아침 밥상, 오늘 저녁 반찬 재료가 있나 없나. 눈을 뜨자마자 머릿속에서 할 일 목록이 자동으로 재생된다. 누가 틀어준 것도 아닌데.


남편을 배웅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설거지를 끝내고, 거실을 한 번 쭉 훑는다. 어질러진 쿠션, 소파 위에 허물처럼 널브러진 남편의 양말, 그리고 바닥엔 먹다 만 치킨 잔해, 탁자 옆에 방치된 컵들. 아무도 치우지 않는다. 아무에게도 치워달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냥 내가 치운다. 언제나 그렇듯 다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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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와 청소를 마치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는데, 언제나처럼 마음속에서 두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온다.


"그냥 티비나 봐. 새벽부터 가족들 치다꺼리하느라 고생했는데."

"아니야, 어제 못 한 요가 매트라도 펴 봐. 운동 좀 해야지."


귀찮다. 결국 나는 티비를 틀었다. 그리고 또 스스로에게 미안해졌다.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할까.'


그런데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이 있다.

어쩌면 이게 의지의 문제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자신을 하나의 단단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라는 한 사람이 모든 걸 판단하고 결정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분명 이렇게 하고 싶은데, 마음 한구석에서는 저렇게 하는 게 옳다고 누군가 말하는 것 같은 그 느낌. 그래서 내 안에 여러 명의 내가 투닥거리며 살고 있는 것 같다.


마트에서 세일이라는 말에 과자를 집어 드는 나, 며칠째 전화 못 한 친정어머니 생각에 발걸음을 멈추는 나, 남편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괜히 서운해서 온종일 마음이 가라앉는 나, 그러다가도 저녁 반찬은 또 정성껏 차리는 나.


이게 다 같은 나인가? 부정할 수도 없다. 어찌 되었든 모두가 나다.


누군가 나의 하루를 겉에서 보면 단순해 보일 거다. 청소하고, 밥 짓고, 빨래 개고. 하지만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나'들이 동시에 움직이는지, 막상 살아보기 전엔 아무도 모른다.


오전 내내 '살림하는 나'로 집 안을 정리하다가, 아이 담임 선생님한테 연락이 오면 순식간에 '엄마인 나'로 전환된다.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걱정이 밀려오는 동시에, "내가 뭘 놓쳤나"라고 자책하는 나와 "별일 아닐 거야" 다독이는 내가 동시에 나타난다. 괜한 일에도 왜 심장이 방정맞게 두근대는지.


점심은 혼자 먹는다. 남은 밥에 김치 한 조각. 그냥 대충 먹는다. 가족들 밥상엔 국도 찌개도 올리면서, 정작 나는 냉장고 앞에 서서 먹을 게 없나 뒤지다가 남은 국과 반찬으로 그냥 그렇게 때운다. '나를 위해 한 끼 제대로 차려볼까' 하는 마음이 스치지만, 어차피 저녁에 또다시 차려야 하는데 싶어서 그냥 접는다. 이런 것도 결국 선택이다. 내 안의 어떤 목소리가 그날 더 지쳐 있었을 뿐. 가족을 위해서는 지쳐도, 나를 위해서는 지치고 싶지 않다.


오후에는 마트에 간다. 장 볼 목록은 머릿속에 있다. 남편이 요즘 소화가 안 된다고 했으니 자극적인 건 빼야 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것도 한 가지쯤은 넣어야 한다. 내가 먹고 싶은 건? 잠깐 생각하다가 그냥 카트를 민다. 어느 순간부터 마트에서도 가족 먼저였다. 그게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가끔은 기쁘고, 가끔은 서글프다.


머리가 복잡해져 AI에게 물어봤더니, 뇌과학자들은 우리 뇌가 사실 여러 팀이 함께 일하는 조직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어느 한 사람이 모든 걸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욕구와 감정을 가진 여러 시스템이 동시에 의견을 내고, 그날그날 힘겨루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한쪽이 이기면, 뇌는 재빨리 이야기를 정리한다.

"응, 이건 내가 선택한 거야."

마치 처음부터 하나의 의지로 결정한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 보면 딱 우리 집이다. 큰 결정을 내릴 때 식구들 의견이 제각각이다.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아들은 은근히 꽁무니만 빼고, 딸은 무조건 아빠 편만 든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는 것처럼, 내 안에서도 날마다 작은 투닥거리 회의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러 목소리의 합창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날은 게으른 내가 조금 더 힘이 세고, 어떤 날은 책임감 있는 내가 목소리가 좀 더 크다. 어떤 날은 상처받기 쉬운 내가 전면에 나서고, 어떤 날은 이해하려는 내가 뒤늦게 나타난다.


그래서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실망한다.

"왜 나는 이렇게 모순투성이일까."


남편이 별 뜻 없이 던진 말에 온종일 상처받고 있는 나를 보면서, '이렇게 예민해서 어떡하나' 자책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가 "엄마는 맨날 집에만 있잖아"라고 무심코 내뱉은 말에, 부엌에 서서 혼자 눈물을 훔친 날도 있었다.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더 아팠다. 집에 있는 게 사실이니까. 그런데 그 '집에 있음'이 얼마나 많은 것을 담고 있는지를,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서 나도 잊어버릴 때가 있다.


하루에 밥을 세 끼 차린다. 아니다, 대충 먹는 내 건 빼야 하니 두 끼다. 모두 제각각 다른 입맛에 맞춰야 한다. 남편은 얼큰하게, 아이들은 안 맵게, 나는 상관없다. 청소는 혼자 한다. 빨래는 돌리고 개고 정리해서 넣는 것까지 세 단계인데, 어느 단계도 누가 도와줬다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프면? 아파도 밥은 차려야 해서, 해열제 먹고 부엌에 서 있는 날이 있다. 그게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고, 억울한 날이 있고,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날도 있다.


그 감정들이 다 맞다.

요즘 말로 '팩트'다.

그런데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모순이 없는 사람이란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서로 다른 욕구와 감정이 동시에 들어 있는 작은 공동체 같은 것이니까. 차라리 스스로에게 조금 너그러워지자.


가끔 과자를 집어 들어도, 운동을 미뤄도, 남편 말에 괜히 삐쳐도, 그게 내 전부가 못나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너무 자신에게 빡빡하게 굴지 말자. 그냥 그날 그 순간, 내 안의 어떤 목소리가 조금 더 피곤했고, 어떤 목소리가 조금 더 간절했을 뿐이라는 것을.



만일 이 글을 남편과 아이들이 읽을 수 있다면, 한마디만 하고 싶다.


“엄마가 예민한 게 아니야. 하루에 수십 번씩 다른 역할을 해내면서, 그 사이사이에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란다. 아침에 밥 차리는 엄마와, 혼자 점심을 대충 때우는 엄마와, 마트에서 가족 먹을 것 고르는 엄마와, 저녁에 설거지하다가 잠깐 멍해지는 엄마가 다 같은 사람이란다. 다 같은 나야.


"집에서 맨날 뭐 해?"라는 말 한마디가 왜 그렇게 서운한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지 않나. 집에서 모든 걸 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다만 그게 보이지 않았을 뿐이지.”


중요한 건 내 안의 여러 목소리 중 하나를 영영 없애버리는 게 아닌 것 같다. 과자를 집는 나도, 요가 매트를 펴고 싶은 나도, 친정어머니가 보고 싶은 나도, 가끔은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나도, 모두 나이기 때문이다.


살림이 그렇듯, 삶도 그렇다. 오늘도 내 안에서는 작은 회의가 열릴 것이다. 게으른 내가 손을 들고, 성실한 내가 반박하고, 감정 많은 내가 한마디 보태고, 이성적인 내가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중 누군가가 오늘 하루의 결정을 내릴 것이다.


오늘 저녁에는 어떤 내가 이길까.

뭐, 내일이 되어봐야 알겠지.


그래도 괜찮다.

어찌 되었든 오늘도 하루를 살아냈으니까.

그것만으로 이미 족하다.


이 일기가 가족 중 누군가의 손에 닿아, 오늘 저녁 밥상 앞에서 눈이 마주쳤을 때 "오늘도 수고 많았어"라는 말 한마디를 건네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족하다. 많은 걸 바라지는 않아.


그런데 왜 한숨이 나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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