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밑에 부상당한 고양이가 있어요
지난 10월 초 어느 날부터 어둠이 짙게 깔리면 집 앞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 밑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궁금한 생각에 차 밑을 들여다봐도 잘 보이지 않아서 차 밑에 먹이만 조금씩 넣어주었다. 아침에 나가보면 고양이 먹이가 깔끔하게 사라진 것이 누군가 먹은 것은 확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책에서 돌아오는 나와 길냥이 한 마리가 눈이 마주쳤다.
순하게 생긴 겁먹은 태비 한 마리!!
녀석은 눈이 마주치자 얼른 차 밑으로 들어가 숨더니 애원하듯 울어댔다.
"기다려.." 얼른 집안으로 들어가 고양이 먹이를 가져다 차 밑에 넣어 주었더니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 다시 울기 시작했다. 먹고 또 먹고... 녀석은 허겁지겁 3마리 분량의 먹이를 먹어 치웠다.
그다음 날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그 길냥이는 차 밑에 숨어서 우리 가족이 먹이를 주기를 기다렸다.
저녁 식사 후 바닷가 길냥이들에게 먹이를 주러 가기 전 그 태비 냥이에게도 먹이를 푸짐히 내다 주었다.
"이러다 이 지역 길냥이 다 몰려들겠다.."라는 농담을 해가며 우리는 바닷가 길냥이와 가끔씩 산책로 수풀에서 튀어나오는 길냥이들, 그리고 집 앞에 나타나는 길냥이들에게 먹이를 주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경계하며 차 밑에서만 먹이를 먹더니, 조금씩 차 밖으로 나오고 한 번이지만 대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기도 했다.
그렇게 태비는 경계를 풀며 낮에도 집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내가 근처에 앉아있어도 도망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태비가 경계를 다 풀기 전에 녀석과 꽤 많이 닮아있는 다른 길냥이가 나타났다.
새로운 길냥이는 거칠고 공격적인 반면 태비는 겁도 많고 순둥이라 우리가 주는 먹이를 모두 새로운 냥이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결국 조금 거리를 두고 두 곳에 먹이를 주게 되었다.
이 거칠고 공격적인 새로운 길냥이는 나중에 우리 집 계단 밑에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런데 지난가을 10월 30일 저녁, 녀석이 크게 다쳐서 눈앞에 나타났다.
딸아이의 학교가 그다음 주에 하프 텀 방학을 해서 많은 친구들이 여행을 가는 관계로 할로윈 파티를 하루 당겨서 하고, 파티 마무리로 trick or treat 도 하루 앞당겨 나갔다.
매년 하루 앞당겨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있어서 많은 집들이 미리미리 사탕을 준비해 놓는다.
딸아이의 친구들과 그 동생들까지 7명의 아이들과 동네를 돌고 집 앞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골목이 시작되는 곳에서 녀석이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뒤에서는 커다란 까만 고양이가 녀석을 쫓아 나왔다.
녀석은 왼쪽 뒷발을 질질 끌며 어디로 갈지 몰라 갈팡질팡 하는 녀석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우선 까만 고양이가 더 이상 녀석을 쫓지 못하게 살짝 겁을 주고 녀석에게 다가갔다.
내 옆에서 먹이를 먹던 녀석인데 내가 다가가는 것조차 두려워하더니 결국 누군가의 차 밑으로 기어 들어가 도저히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냥이를 본 아이들은 불쌍하다고 울먹거리더니 뭔가를 돕겠다며 자꾸 냥이 옆으로 다가들어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우선 소란스러운 아이들을 먼저 안정시킨 뒤 멀리 떨어져 있게 했다. 그 사이에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던 이탈리안 친구 카밀라가 동물 보호 센터에 전화를 했다. 하지만 너무 멀어서 쉽게 오지 않을 눈치다.
혹시나 차 주인이 부상당한 고양이가 있는지 모르고 차를 움직이다 냥이를 치면 어쩌나 싶어서 딸아이와 친구들에게 "차 밑에 부상당한 고양이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메모를 쓰게 해서 차 유리창에 끼워놓았다.
그리고 아이들을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낸 뒤 딸아이와 함께 먹이를 조금 가지고 길냥이가 있는 곳으로 나갔다. 먹이를 차 밑에 넣어주고 근처에 조용히 앉아있었지만 녀석은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서도 녀석이 걱정되어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차가 세워진 곳으로 달려가 보았다. 하지만 차도 길냥이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차가 있던 자리를 살펴보니 다행히도 동물이 치인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도 그리고 오늘도 혹시나 녀석이 나타날까 살펴보았지만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이후로 계속 녀석이 나타날까 주위를 살펴보지만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냥이들 먹이를 주면서도 다친 녀석이 여전히 눈에 밟힌다.
누군가 치료를 해주어서 건강히 지내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