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를 누가 준들.. 뭣이 중 헌디? - 스페인 여인과의 대립
어느 날 오전 딸아이와 함께 길냥이 먹이를 주러 바닷가로 나갔다.
딸아이가 함께 있었으니 아마도 주말이었나 보다.
길냥이들이 사는 곳으로 가서 냥이들을 부르니 냥이들이 우루르 뛰어나왔다.
그런데 냥이들이 사는 철망 안 보트 정박장 구석에 40대 정도로 보이는 스페니쉬 여인이 커다란 고양이 비스킷 봉지를 고양이 급식소에 쏟아 넣고 있다.
반으로 잘라진 생수통이 고양이들 서식지 한구석에 놓여있는데 가끔씩 사람들이 냥이들 비스킷을 담아놓는다.
아마도 그 여인도 그들 중 하나인가 보다 싶어서 반갑게 웃어주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우리가 전혀 반갑지 않은 눈치다.
이유는 자기가 냥이들 밥 주는데 방해한다는 것이다.
우선 그녀에게 먼저 먹이를 주라고 하고 딸램과 바닷가로 나갔다.
우리가 자리를 뜨자 어리둥절한 냥이들이 잠시 우리를 따라오다 먹이를 향해 돌아섰다.
30분 후.. 바닷가 산책을 끝내고 돌아갔는데 그녀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고, 우리가 다시 나타난 것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냥이들은 그녀와는 다르게 격하게 반기며 우리들 다리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먹이를 달라고 울어댔다.
조심스레 우리가 가져간 먹이를 꺼내려하자 그녀가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좀 전에 내가 먹이 줬잖아. 줄 필요 없어"
"알아. 그런데 얘들이 먹이 달라고 몰려나오는데 안 주면 불쌍하니까 우리 것 조금만 주고 갈게. 얘들은 우리가 먹이 안 주면 멀리까지 쫓아와"
그러자 그녀는 상당히 불쾌하다는 듯 우리를 쳐다봤다.
당신들 때문에 냥이들 급식소 주변이 엉망이야. 먹이를 주고 나면 청소를 하고 갈 것이지 왜 바닥에 뿌려놓고 가는 거야?"
이건 뭔 소린가 싶었지만 "우리는 그 철망 안에 들어가지 않아. 그리고 보다시피 접시에 주고 나서 깨끗하게 치우고 가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라고 단호하게 되물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곳이고, 개들도 뛰어들어가 난장판을 만들고는 하는데 깨끗하기가 쉽지 않지..."
그녀가 내 대답에 잠시 머뭇거리며 딸아이와 내가 꺼내는 냥이들의 먹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아... 그런 걸 주니까 냥이들이 달려 나가는구나"
그녀는 우리가 꺼내놓는 각종 깡통을 보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몇 마리는.. 특히 저 녀석 텅은 이가 없어서 비스킷은 못 먹으니 부드러운 생선이나 파테를 줘야 한다"는 나의 대답에 잠시 냥이들을 물끄러미 보더니 목소리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뭐... 음식을 주고 싶으면 주던가?"
분명 그녀가 주는 비스킷을 먹었을 텐데.. 냥이들은 마치 온종일 굶은 것처럼 우리가 내놓은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댄다.
"고양이들이 정말 잘 따르네. 얼마나 자주와?" 그녀가 물었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얼굴에 고양이들에 대한 서운함이 묻어있다.
거의 매일이라는 우리의 대답에 그녀는 뭔가 포기한 표정을 지으며 한층 부드러워졌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번 고양이 먹이를 주러온다고 했다. 우리가 매일 온다니, 그리고 길냥이들이 우리를 온몸으로 반기니 할말이 없어진 듯 하다.
"아.. 그렇군. 혹시 이 안에 들어와서 먹이 주고 싶으면 줘도 돼."
"괜찮아. 우리는 이 바깥에서 주는 게 훨씬 편해."
조금씩 고양이들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가 나중에는 어디에 사느냐, 어디서 왔느냐 등의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고,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를 나눈 뒤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떠난 뒤 몇 개의 작은 깡통을 비운 녀석들은 딸램과 놀이를 하면서 뒹군다.
길냥이들을 빼앗기는 느낌이었나?
"누가 먹이를 주든 무슨 상관이야. 누구든지 먹이를 주면 고마운 거지. 그렇지?"
내 중얼거림에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냐옹" 거리며 머리를 들이민다.
아마도 녀석은 그렇게 얘기하는 듯했다.
"그러게.. 누가 먹이를 주던.. 뭐가 그리 중 헌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