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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tine Feb 28. 2023

미국에서 임신을 했다.

나 산부인과 갈 수 있는 걸까?



  남편의 유학기간 동안 우리는 미국이라는 타지에서 아기를 가질 계획이었다. 그 전에 잠시 장거리 부부생활을 했던 터라, 미국에서 짧은 신혼생활을 다시 보낸 후, 임신을 준비했다. 둘 다 건강에 큰 문제는 없었고, 특히 일을 쉬고 있던 내가 컨디션이 좋았던 덕이였는지 노력한지 얼마 안되어 금방 임신이 되었다.


 알아보니 한국에선 테스트기로 임신을 확인하고 난 후엔, 큰 어려움 없이 산부인과에 내원하여 피검사 혹은 초음파 검사를 통해 극 초기라도 임신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있는 곳은 미국. 당장 임신을 확인한 오늘 산부인과를 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가장 첫 스텝인 “내가 갈 수 있는” 산부인과를 찾는 것 부터 난관이다. 미국의 의료시스템은 한국과 매우 다르다. 나라에서 관리하는 건강보험이 아닌, 개개인이 각기 다른 회사의 사보험을 가입하여 의료 서비스를 이용한다. 그리고 피보험자인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병원들(과 의사들) 또한 각각 보험 네트워크에 의료서비스 제공자로 가입되어있다. 간단히 얘기하면, 내 집 앞에 있는 병원이 = 내가 가진 보험 네트워크에 속한 병원이 아닐 수도 있다. 이 말은 또 뭐다? 바로 나는 그 병원에선 진료를 못받는 다는 말이다. (받을 순 있지, 단지 보험적용이 안되는 어마무시한 진료비를 내야할 뿐) 눈 앞에 병원이 있는데 못간다니, 한국에선 상상도 못했던 일이 아닌가.


 ’내가 가입한 보험‘ 의 ’네트워크’ 에 속해있으면서, ’내가 사는 곳‘에서 차로 ’20분 내‘로 이동할 수 있는 곳에 ’환자들의 평이 나쁘지 않은‘ 산부인과를 찾는 일은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래 과정을 며칠동안 한 10번 정도 반복한 후에 겨우 내가 다닐 산부인과를 찾아 예약 할 수 있었다.

 

1) 구글지도로 10마일 이내 산부인과 찾기

2) 내 보험을 accept 하는 산부인과 추리기

3) new patient 를 받는지 확인하기

4) 산부인과 환자평 찾아보기


 두통과 함께 겨우 내가 다닐 산부인과를 정하고, 마치 개선장군 마냥(?) 당당하게 초진 예약을 잡는 일만 남았다. 고 생각했다. 갈고 닦은 서칭 능력으로, 그 산부인과에서 환자들 평이 좋고 왠지 모르게 인상도 좋아보이는 담당 의사도 마음 속으로 정했다. 문제는 없었다. 고 생각했다


 S: “안녕(하세요) 나는 이 보험을 가지고 있고 며칠 전 임신테스트기로 임신을 확인했어. 그래서 너희 산부인과에 ㅇㅇ닥터에게 초진을 가고 싶은데, 다음주에 예약할 수 있을까?“


Desk: “우선 축하해! 근데 너가 원하는 ㅇㅇ 닥터는 다음달까지 full 예약인데, 다른 의사도 괜찮니”


1차 쇼크였다. 다음 달까지 full 예약이라고? 난 이 의사를 만나고 싶어서 이 산부인과로 정한건데..? 그치만 하루빨리 초진을 받고 싶은 나는, 다시 또 산부인과 서칭에 나서는 것 보단 다른 의사와 약속을 잡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

S: “응 어쩔 수 없지 뭐, 다 괜찮아, 다음주에 해줘”


Desk: “너 마지막 생리가 언제야?”


S: “나 정확하진 않은데 이 날이고, 지금 한 4-5주 정도 됐을꺼 같아”


Desk: “그래 그럼, 4주 뒤로 이 날로 예약을 잡아줄께”


2차 쇼크였다. 이번엔 1차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그만큼 황당했다.

4주라니, ‘4주 후에 뵙겠습니다’ 는 유튜브 쇼츠를 1시간 넘게 보게 하는 일등공신 ‘사랑과 전쟁’의 명대사가 아닌가.

이 문장이 왜 여기서 나오는 걸까


S: “4주라고??”


Desk: “응, 니가 지금 와봤자 확인할 수 있는 건 없거든, 4주 뒤가 너 마지막 생리일 기준으로 8-9주 정도이니 그때와야 제대로 된 임신을 확인할 수 있을꺼야”


S: “아..그래.. 알겠어 그럼 그 날로 해줘”



 긴 연구 끝에(?) 다다른 당혹과 황당과 쇼크의 예약을 마친 후, 나는 태어나서 가장 길게 느껴졌던 4주의 시간을 보냈다


. 첫 임신일 뿐더러, 몇백만원 짜리 와인잔을 새끼손가락으로 들고 있다 곧 깨뜨릴 것 처럼 불안한 마음이 커서 양가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도 소식을 알린다거나 별 다른 조언을 구하지 못했다. 그저 내 몸에서 겪고 있는 이상한 변화들은 맘스홀릭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 더더욱 미궁 속에 빠지는 것 같았던 4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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