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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연희 Nov 30. 2022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했습니다.

를 빙자한 뷰티 유투버가 휴업하고 있는 이유

하루 중 쏟아지는 알림, notifications, 중에 브런치의 것은 언제나 알 수 없는 기대감을 준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 그럴 수도 있고 내가 구독하는 작가들의 새 글에 대한 설렘 일 수도 있고 그 하얗고 깔끔한 알림 창의 디자인이 주는 미학일 수도 있다. 


그런데 오늘은 한 번도 보지 못한 문구가 핸드폰에 떴다.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했습니다.


처음 브런치를 만들 때 외부자 제안용으로 등록해 놓은 이메일을 확인해 보라는 메시지와 함께. 


구독자 오십도 안 되는 작가에게 무슨 제안이 오나 싶고, 브런치 작가 전체에게 오는 광고메일인가 싶었지만 냉큼 달려가서 클릭해 보았다. 


모 기업의 홍보실에 근무하는 직원이 보낸 제안이었는데 내가 최근에 올린 모다 모다 샴푸에 대한 후기를 제품 홍보 페이지에 업로드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감사의 표시로 제품을 보내주겠다고도 했다. 미국 아마존에서 샴푸 한 개당 35불을 줘야 구입할 수 있는 고가의 샴푸이다 보니 제품 제공 제안이 너무 감사했다. 


뷰티 유튜버를 꽤 오래 하다 보니 - 지금은 휴업 상태이지만 - 제품 테스트 제안 메일은 자주 오는 편이다. 그렇게 협찬받아서 테스트한 스킨케어, 메이크업, 헤어제품도 무수하다. 리뷰 영상 제작 없이 제품을 협찬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 대게 제품에 자신이 있는 업체들이 유튜버의 인지상정을 기대하는 마케팅인데 대체로 잘 먹힌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유튜버들은 기한을 정해놓고 오는 영상제작 요구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이다. -  대부분 적게는 분야별 리뷰에 슬쩍 얹어서 들어가는 경우부터 그 제품만을 위한 단독 광고 영상까지 요구하는 케이스도 많다. 



마지막으로 촬영했을 때의 세팅, 스튜디오처럼 항상 이 상태로 남겨놓지 않으면 장비 세팅에만 두 시간은 기본이다.


뷰티 유튜버를 휴업하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딱 하나만 대라고 하면 '힘들어서'이다. 영상 제작과 편집에 들어가는 노동이 거의 개미지옥 수준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소재 고갈과 영감이 떨어져서 그런 것 아니냐고 많이들 말씀하시는데 그런 건 발에 차일 만큼 많다. 단지 그 아이디어와 이벤트를 촬영하고 편집할 노동력이 고갈된 것뿐. 


뷰티 유튜버로서 제안 메일을 처음 받았을 때는 정말 하늘에라도 날아오를 듯 기뻤다 - 영어에서도 구름 위에 있다고 표현하는 걸 보면 '다 이루었다'는 그 느낌은 동서가 비슷한가 보다 -. 유튜버로서 인정받은 것 같아서 기뻤고, 공짜로 제품을 테스트해보는 경제적인 특혜도 기뻤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시, 제작 기간이 주어진 영상 제작의 부담은, 홍수에 다리 밑에 물 차오르듯이 차곡차곡 올라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품 테스트 부탁 이메일이 오면 헤드라인만 체크한 뒤에 들어가서 내용을 확인하지도 않고 회피하고만 있었다. 기다리게 하면 포기하겠지, 이메일이 유튜버에게 전달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겠지,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말이다. 


영상을 올리지 않은 지 육 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가끔씩 제품 협찬 이메일이 온다. 내가 유명 유튜버라서가 아니다. 유튜브가 해가 다르게 하나의 마케팅 영역으로 거듭나면서 예전에는 무조건 그 분야 최대 구독자들에게만 제품을 홍보했다면, 이제는 일정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가 특정 연령대와 특정 분야에 인지도가 있다고 여겨지면 수월하게 홍보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유튜브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지금처럼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마케팅 시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설사 제품 리뷰를 부탁했다 할지라도 요구 조건이 구체적이지 않았다. 그저 '한 번 써보시고 좋으면 나중에 소개해주세요' 정도?


그런 '잠시 유포자'인 나한테 또다시 비슷한 형식의 제품 제안 이메일이 온 것이다. 하지만 영상을 제작할 필요도 없었고 테스트 결과를 알려줄 필요도 없었다. 그저 이전에 써 둔 글을 그들의 홍보에 사용하도록 '허락'만 하면 되는 것이다. 뭐랄까. 같은 지적재산권의 영역인 글과 영상, 서로 다른 미끼로 같은 고기를 낛았다는 묘한 감정? 손 안 대고 코 풀고, 땅 짚고 헤엄친 것 같은 기분? 


 

모다 모다 측에서 무상으로 보내온 제품, 미국인데도 보내주셔서 감사!

  

알고 있다. 글은 글대로 살과 뼈와 영혼을 갈아 넣는 작업인 것을. 내가 삼분만에 써놓은 샴푸 후기는 그런 '글' 이 아니라는 사실을. 하지만 어떠한가. 이것도 글이고 저것도 글이라면 나는 샴푸 주는 글을 종종 써가며 흰머리 걱정 없이 '살과 뼈와 영혼을 갈아 넣는' 글을 모색하는 편을 택하련다. 다시 한번 이 글을 빌어 제품 제공에 감사드린다. 


혹시 모다 모다 샴푸 후기 글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여기 링크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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