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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 둥구나무에서..

by 추설

둥구나무에서..ㅇㅊ

첫번째 이야기 - 둥구나무에서..


초등학교 6학년, 열세 살 무렵이었다.

외할머니 팔순잔치가 있어 온 가족이 청주에 모였다.

잔치가 끝나고, 술을 드시지 않은 삼촌들이 우리 대가족을 차에 태워 보은 외할머니 댁으로 데려다주었다. 엄마와 이모, 삼촌들의 본가였다. 그 집은 어릴 적부터 가기 싫은 곳이었다.

벽에는 단 한 번도 뵌 적 없는 외할아버지 사진이 걸려 있었고,

알 수 없는 웃음을 짓는 돼지 그림이 붙어 있었다.

거실 한쪽의 낡은 시계는 삐걱이며 소름끼치는 소리를 냈다.

무엇보다 화장실이 집 안에 없었다.

새벽에 일이 급하면 꼭 마당을 가로질러 가야 했다.

다 허물어가는 집에서 한밤중에 밖으로 나간다는 건 어린 나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없었고, 닌텐도DS마저도 점점 시들해지던 때였다.

결국 형들과 누나들은 불을 끄고 모여 무서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억지로 그들 옆에 끼어 앉아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첫째 친척 누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후 첫째 누나로 표기 예정)

“너네, 여기 앞에 있는 500년 된 둥구나무 알지? 사실 그 나무, 엄청 무서운 이야기가 있어…”

순간, 내 눈이 커졌다. 우리가 있던 방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 바깥 풍경이 훤히 보였다. 바로 그곳에, 불과 5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커다란 둥구나무가 어둠 속에 서 있었다. 나는 예전부터 그 나무를 수호물이라고 알고 있었다.가끔 혼자 앉아 있거나, 형·누나들과 다 함께 놀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밤의 기운을 머금은 둥구나무는 낯설고도 위협적인 존재로 보였다.그때 성격이 급한 둘째 친척형이 툭 내뱉었다.
“야, 얼른 말해봐. 무서운 이야기가 있다고만 하면 뭐하냐?”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다른 친척 누나들은 듣기 싫다며 손사래를 쳤다.

괜히 들었다가 잠 못 자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형은 지지 않았다.
“차라리 알고 피하는 게 낫지, 모르고 노는 게 더 무섭잖아. 그렇지 않냐?”

말도 안 되는 논리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우리는 첫째 누나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친척 누나는 창밖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니까… 뻔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 저 둥구나무에서 귀신이 자기 아이를 기다린다는 말이 있어. 그래서 자기 자식 또래 아이들이 지나가면 잡아간다네. 특히… 설이 너 같은 또래 애들 말이야.”

그 순간, 온몸이 굳어졌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무슨 귀신 타령이야’ 하고 웃어넘겼을 테지만, 그때의 나는 너무나도 무서웠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창밖 어둠 속에서 서 있는 나무가 금방이라도 나를 향해 손을 뻗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다른 친척 형과 누나들은 달랐다. 겁먹은 기색은커녕,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누나는 킥킥 웃으며 “에이, 그게 뭐가 무서워” 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때였다. 둘째 형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아이, 그게 뭐가 무섭냐? 나는 지금도 저기까지 혼자 다녀올 수 있어.”

그 말에 방 안의 공기가 잠시 멈춘 듯했다. 누나가 흘끗 창밖을 바라봤고, 나 역시 시선을 돌려 어둠 속의 둥구나무를 바라봤다. 마치 검은 거인이 서 있는 듯했다. 아니, 정확히는 공간 자체가 도려져 나간 듯한 검은 구멍이 마당 끝에 자리 잡고, 그곳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결국 둘째 친척형을 제외한 나머지 형과 누나들은 혼자 가긴 도저히 무섭다며 다 함께 둥구나무 쪽으로 다녀왔다. 다녀오고 나서야, 처음부터 큰소리를 치던 둘째 형이 혼자 둥구나무를 향해 걸어갔다.

잠시 후, 형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돌아왔다. 마치 별일 아니라는 태도로 이불을 펴고 먼저 자겠다고 눕는 모습이 이상할 정도였다. 우리 모두 의아해했다. 허세 많고 말도 많은 둘째 형이었는데, 막상 다녀온 뒤에는 조용히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야, 진짜 무섭지 않았어?”
첫째 친척 누나가 다급히 물었다. 시끄럽게 몰려드는 질문에도 그는 짧게 대답했다.
“응… 그냥 그랬어. 조금 무섭긴 하더라.”

그 말 한마디 뒤에, 그는 등을 돌리고 누웠다. 더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그 상황 자체가 내겐 공포였다. 큰소리를 치던 둘째 형의 갑작스러운 침묵, 등을 돌린 채 보이지 않는 표정. 그것만으로도 어린 나에게는 괴담보다 더 무서운 호러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그날의 일을 잊은 채 성인이 되었다.
외가 가족은 명절이나 가족 행사도 잘 모이지 않는, 요즘 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작년에 외할머니께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고, 우리는 청주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다시 모였다.

첫째 누나는 이제 어엿한 장녀이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설이 많이 컸네. 언제 본 게 마지막이더라? 할머니 팔순잔치 때였나?”
“그러게. 오랜만이네, 누나. 우리 집 사정도 있고 좀 그래서 못 왔어. 나도 벌써 서른을 바라봐.”

그렇게 어색했던 대화는 곧 자연스럽게 술자리로 이어졌다. 술잔이 몇 번 오가자, 셋째 형이 툭 말을 꺼냈다.
“야, 너 그거 기억나냐? 둥구나무 얘기.”

나는 그 말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형, 그걸 어떻게 잊어. 난 그때 진짜 잠도 못 자고, 며칠 동안 엄마 옆에 꼭 붙어서 화장실도 같이 가달라고 했었다니까?”

다른 형과 누나들은 낄낄 웃으며 맞장구쳤다.
“야, 그건 우리가 널 놀리려고 괜히 오버한 거였어. 설마 그럴 리가 있냐? 사람도 안 사는 동네에.”

나는 토마토를 집어 먹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렇지? 근데 아직도 술 먹으면 그 얘기 꺼내곤 한다니까.”

첫째 누나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농담처럼 말했다.
“뭐, 설이 겁 많은 건 어릴 때부터 알았던 거잖아. 지금도 그렇겠지.”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 지금도 겁 많습니다.”


발인 당일,

모두가 새벽 일찍 일어나 화장터를 다녀온 후 할머니의 납골묘를 들고 다시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알고 보니 외할머니께서는 지병으로 인해 근처 청주 삼촌 댁에서 지내셨고, 그 때문에 몇 년 동안 외갓집은 비어 방치된 상태였다고 한다. 그 집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기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꺼림칙한 공기는 예전보다도 더 진하게 감돌았다.

그러던 중, 제사를 지내러 산을 오르던 길에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제사상에 올릴 음식을 그대로 두고 온 것이다.

연령 순서로 봤을 때, 그 짐을 가지러 갈 사람은 나와 다섯째 이모의 아들, 그러니까 다섯째 형이었다.

형과 다시 할머니 댁으로 내려가면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그저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할머니 댁쪽을 들리려는데 둥구나무가 보였다. 그때 그 무서운 생각이 들어 친척형에게 말했다.

"형, 근데 저거 정말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네. 전에는 주위가 다 잡초때문에 난리였는데 꽤나 깔끔한 모습이야." 내 말을 듣고 형이 대답했다. "그 얘기는 웬만하면 둘이 있을 때는 하지말자 아직도 등골이 오싹거리는 것 같아"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짐을 가지고 할머니께 절을 올리려 갈 때 까지는 둥구나무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그날 저녁, 우리는 할머니 댁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장례를 치른 날이라 모두 지쳐 있었지만,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은 집을 정리하고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자는 취지였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날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었다.)

어른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언성이 높아졌다. 살아계실 때 못다 한 이야기, 서로 서운했던 이야기, 회한 같은 것들이 쏟아졌다. 이제는 어른이 된 우리 사촌들도 그 술자리 한켠에 앉아 있었다.

그때 막내 삼촌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꺼냈다.
“누나, 기억나? 어릴 때 엄마가 나 업고, 누나 손잡고 둥구나무 지나갈 때 그거.”

‘누나’라 함은 우리 엄마였다.
엄마는 잠시 웃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그걸 어떻게 잊어. 나랑 네가 울면서 난리가 났잖아. 엄마는 돌 던지면서 욕하고, 우리 셋이 줄행랑쳤던 그거 말하는 거지?”

삼촌은 크게 웃더니, 곧 표정이 굳어졌다.
“맞아. 그때 말이다… 나, 그 일 때문에 이주일 동안 학교도 못 갔던 거 알아? 아파서.”

엄마도 목소리를 낮췄다.
“알지. 난 우리가 귀신 들린 줄 알았다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세상에, 그 시간에, 거기서… 사람이 그럴 수가 있냐고.”

술기운에 흘러가던 대화는 서서히 무거워졌다.
우리 사촌들은 하나둘 입을 다물었고, 첫째 누나는 두 아이를 껴안으며 불안한 눈빛을 감추려 했다.

그때 삼촌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 둥구나무 근처는 밤에 혼자 다니지 마라. 큰일난다.”

다섯째 형이 무심코 물었다.
“왜요, 삼촌? 무슨 일 있었어요?”

그러자 우리 엄마가 피식 웃으며 옛날 일을 꺼냈다.
“어릴 적에 말이다. 나랑 네 삼촌이랑 할머니랑, 할머니 친구 집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거든. 돌아오는 길에 둥구나무 앞을 지나가는데… 웬 여자가 있더라. 머리는 산발이고, 흰 소복 차림에 양손에는 촛불을 들고 엄청 울면서 있었어. 촛농이 뚝뚝 떨어지고….”

잠시 숨을 고른 엄마가 소름 끼치는 듯 말을 이었다.
“할머니가 ‘재수 없다, 썩 꺼져라’ 하면서 돌을 던졌는데… 그 여자가 달려간 뒤쪽은 원래 묘지가 있는 곳이었어. 무덤이 엄청 많았거든. 그런데 순식간에 정말 순식간에 그 자리에선 사라져버린 거야. 사람에 속도가 아니야 그건”


오싹함이 목줄기를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뿐 아니야. 그거 봤다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고. 예전에 그 큰 나뭇가지가 떨어져서… 할아버지가 그거 맞고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누워만 있다가 돌아가셨잖아. 거긴 절대 혼자가면 안돼.”

순간, 삼촌이 목소리를 높였다.
“누나! 그런 얘기를 애들 앞에서 뭐하러 해!”
“뭐 어때. 다 지난 얘긴데.”


그래, 다 지난 얘기였다.

둘째 이모는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고,
이모부는 재혼을 했지만 결국 먼저 돌아가셨다.
그리고 둘째 친척형은… 자폐 증세를 보이다가,
이모들과 삼촌, 그리고 우리 엄마가 수소문했음에도 끝내 연락이 닿지 않고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그날, 둘째 친척형이 그 야밤에 혼자서 둥구나무에 갔을 때 본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왜인지 모르게 내 기억 속에 아직도 남아 있는

어느 날 초저녁에 내가 혼자 둥구나무 근처를 지나다가,
분명하게 나를 따라오던 그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comment. 여름은 지났지만 공포 특선을 써보고 싶어서 써보았습니다.

실화도 많고 허구도 많을 예정이니. 댓글로 소소하게 맞춰보시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표지.jpg 제 첫 출간도서 『세상에 없던 색』입니다. 많은 관심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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