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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ST OCEAN

EP. 01

by 추설

인류는 달을 정복했다고 한다.

그러나 같은 지구에 존재하던 바다는,

끝내 10%조차 탐사하지 못한 채 미지로 남겨졌다.

푸른 물결, 교과서 속 사진으로만 보던 심연.

수많은 생명체가 얽히며 숨 쉬던 그곳은,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18년 전.

재앙 이후, 인류는 절멸 직전까지 몰렸다.

그리고 그 직전에 완성된 단 하나의 기계,

슈퍼 AI ‘델피’.

세간은 말한다. 델피가 제시한 조건 덕분에 인류가 살아남았다고.

다만 소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인류를 바보로 만드는 물건’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조차 델피 없이는 변해버린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다.


삐—빅. 삐—빅. 삐—빅.

[기상. 기상. 기상. 화요일 등교날입니다. 기상하셔야 합니다.]

시끄러운 알림음에 눈을 뜬다. 또 늦잠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이라. 오늘은 화요일. 평소보다

15분 늦게 기상하셨습니다. 아침은 토스트를 권장합니다.]

“또 토스트야? 됐어, 그냥 준비하고 갈래.”

[아침을 거르면 뇌로 공급되는 포도당이 부족해져 집중력과—]

“그만! 깨워줄 거면 제때 깨우든가.”

[저는 정확히 오전 07시 20분 01초 깨워드렸습니다]

"지겨워! 말대꾸!"


교복을 챙겨 입고, 방독면을 쓴다. 교내에선 델피가 관리하는 정화 시스템 덕분에 괜찮지만,

등굣길의 야외에서는 포자가 여전히 떠다닌다.

크고 작은 초록빛 알갱이들이 도시에 빛 속에서 반짝였다.

그걸 들이마시는 순간, 사람은 환각에 잠기다 이내 재가 된다고 한다.

18년이 지났지만 원인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델피조차 설명하지 못하는 영역.

델피를 개발한 인류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재앙을 맞이했으니 당연한 부분일지도..


거리 전광판이 번쩍이며 광고가 시작됐다.

굵직한 음악이 울려 퍼지고, 화면에는 공기 중을 떠도는 초록 포자가 확대되어 나타났다.

곧 붉은 X표가 겹쳐지고, 방독면을 쓴 시민들이 군대처럼 줄지어 행진한다.

뒤이어 정부의 로고가 화면을 뒤덮었다.


“안티 포자! 깨끗한 호흡, 안전한 미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18년 전 그날과 그 이후를

포자는, 모두가 스스로 나서서 제거해야 합니다.”


영상은 몇 초 간격으로 반복되며, 마치 숨을 쉴 때마다 귀에 들러붙는 듯했다.

광고판 불빛이 흘러내리는 사이, 햇살에 비친 초록빛 포자가 함께 흩날렸다.

길을 걷던 행인들은 무심히 지나갔지만, 그들의 무표정한 눈동자 속엔 피로와 무감각이 묻어 있었다.

나는 방독면 안에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문구, 도대체 몇 번이나 들려주는 거야…”


‘안티 포자’는 단순한 캠페인이 아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떠오르는, 살아남기 위한 이전 세대들의 압도적 공포였다.

그러나 우리 재앙 이후 세대, 그린폴 세대에게 포자는 다르다.

거부감도, 두려움도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모른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 이미 세상은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공기가 맑다, 하늘이 푸르다.

그런 표현은 교과서 속 글자로만 배웠다.


“맑다니? 방독면 없이 숨을 쉰다고?”

읽을 때마다 이해를 할 수 없다.

우리에겐 상상조차 되지 않는 세계였으니까..


정문 앞을 지나자, 자동 살균 게이트가 몸을 스캔했다.

“삑. 정상입니다. 통과하십시오.”

흰빛 소독 안개가 한 차례 휘감고 나서야 게이트가 열렸다.

방독면을 벗는 순간, 차가운 공기 대신 필터링된 공기가 폐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제야 숨 좀 쉬겠네.’

교내는 언제나 깨끗했다.

델피가 직접 관리하는 정화 시스템 덕분에 이 안에서는 먼지 하나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복도를 뛰어다니며 웃었고, 일부는 장난을 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밖에서 방독면 안 쓰고 저러면, 바로 재로 변할 텐데 말이지. 아니 실제로 변하긴 하는 거야..?”

하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 그린폴 세대에겐, 이 초록빛 위험이 당연한 공기나 다름없으니까.

위험이라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제 첫 출간도서 『세상에 없던 색』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744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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