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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코에서 가을을

EP. 11

by 추설

이상하리만치 예의 없는 말투에 기분이 나쁘다기보단 웃음이 터졌다.

“정말 어이가 없네요. 나름 용기 내서 말한 건데,

생각도 안 해보고 대답하기 있어요?”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런 나와는 다르게, 그는 꽤나 진지한 얼굴이었다.

“미안해요. 예의 없어 보였다면.
하지만… 저는 정말 그런 건 필요가 없는걸요.”

나는 웃음을 멈추고 그에게 말했다.

“세상에, 그래도 그렇지.
친구가 되자는 사람한테 그런 건 필요 없다고 하다니요.
하지만… 잘 알겠어요.”

그는 내 말을 듣고 의아해했다.

“네? 뭘요?”

“그쪽은 친구가 필요 없는 게 아니고,
친구가 있어본 적이 없으니까 필요 없다고 하는 거요.”

그는 한숨을 쉬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있었어요. 친구.
연애도 해봤다니까요?”

이상하게, 이 남자는
연애는 해봤을 것 같아도
친구는 없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이미 정신이 나갈 정도로 취해서,
그냥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안 믿어요. 그러니까, 저랑 친구 해요.
친구가 싫으면 아는 사람으로라도 자주 만나고요.
만나기 싫으면… 자주 마주치기라도 해요.”

그는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웃었다.

“그게 뭐예요, 자주 마주치기라도 한다는 건.
그쪽이 저를 신기한 사람처럼 말하지만…
제가 볼 땐, 그쪽이 정말 신기한 사람이에요.”

나는 그가 웃는 모습을 보며
조금은 안심했다.

“저기요, 그쪽만큼 신기한 사람은 전 본 적도 없거든요?
아무튼, 그렇게 하기로 한 거예요.”

“취했네요, 그쪽.
뭐, 맘대로 생각해요.”

“정말이죠? 그럼 우리 친구 하기로 한 거예요! 그리고 취하긴요. 하나도 안 취했어요.

근데 그보다… 그쪽 이름은 뭐예요? 우리 이름도 모르잖아요?”

그는 맥주캔을 가만히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이름은 비밀이에요.”

그가 했던 말 중
가장 어이가 없던 말이었다.

“네?
이름조차 안 알려준다고요?”

“안 알려주고 싶은 건 아니고…
이름에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때서야 깨달았다.
내가 이 남자에게 호기심이 생기는 게 아니었다.

이 남자가 나를 궁금하게 만들고 있는 거였다.

그럼에도 나는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또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그거 알아요? 그쪽이 했던 말 중에 제일 어이없는 말인 거.
아니, 여태 살면서 들은 말 중에 제일 이상한 말이었어요.”

그도 내 말을 듣고는 웃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근데 정말이에요. 그리고 이름을 서로 알면… 정이 붙을 것 같아서요.
그런 건 질색인데.”

나는 그의 말에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정이 붙는다니.

“이혜은. 저는 이혜은이에요.”

“네?”

“사람 이름을 듣고 네라니요.

제 이름은 이혜은이라고요”

“그렇군요… 예쁜 이름이네요.”

“예쁘긴요. 그쪽이 무슨 트라우마가 있는진 몰라도… 그냥 흔한 이름인데요”.
“흔하다고 안 이쁜 이름은 아니니까요

알려주셨는데… 저는… 미안해요.
트라우마는 거짓말이 아니—”

나는 그의 말을 딱 잘라 말했다.

“괜찮아요.
그쪽이 거짓말할 사람 아니라는 거 저도 아니까요.
그래도, 나중에라도 알려줘요.
언제까지고 제가 그쪽한테 ‘그쪽’이라 부르긴… 저도 좀 미안하니까요.”

그는 나를 보며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황당한 얼굴로 조용히 대답했다.

“오. 그쪽, 생각보다 꽤나 남을 배려해 주는 사람이네요.
냉혈인인 줄 알았는데.”

나는 피식 웃었다.

“그쪽이 아니라 혜은이라고요. 그리고, 누가 봐도 그쪽이 냉혈인이거든요?
대낮부터 벤치에 누워 있지를 않나, 비 오는데 우산도 없이 고양이랑 대화를 하고 있질 않나
그쪽이 더 신기하고, 이상하고, 냉혈 해요!”

그가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런가요.
이름을 부르는 게 아직은 좀 그러네요.
제가 다른 사람 이름을 불러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라.”

이 사람은 도대체 동굴 같은 곳에서 살아온 걸까.

“그쪽은 입을 열면 열수록 신기한 사람이네요.
그냥 편해질 때 불러요.
됐고, 연락처나 좀 알려줘요.
친구니까요, 우리.”





작가의 첫 출간도서 『세상에 없던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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