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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자살(人格自殺)

첫 번째 수기-4

by 추설


그렇게 몇 달을 병실에서 버텼다.

처음엔 병문안을 오던 지인들이 하나둘씩 찾아왔다가,

점점 뜸해지더니 결국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딱히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더 편했다.


따분한 병실에서 나는 그다음 해 대학 입학을 위해 수능 공부를 했다.

숨을 돌릴 수 있는 건, 휠체어를 힘겹게 끌고 옥상에 올라가 바람을 쐬는 일뿐이었다.

아쉬운 게 있다면,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싶었지만

무릎 통증 때문에 그것마저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저 그 높은 곳에서도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대학에 들어갔다.

나는 성격이 꽤나 유해졌음을 느꼈다.

독불장군 같았던 기질은 꾹 눌러 담고, 남들에게 맞추는 법을 조금은 터득했다.

큰 트러블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어쩌면 그런 태도가 나를 좋아하게 만든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본래 내 성격, 내 인격에는 맞지 않는 일이었다.

답답할 때가 많았다.

왜 저기서 저런 행동을 할까.

왜 저기서 저런 말을 할까.

그렇게 해서 곁에 남아 있을 사람이 있을까.

전에 했던 말을 이번엔 왜 뒤집는가.

별별 생각이 나를 스쳤다.

인간이란 참으로 신기한 존재였다.

생김새는 모두 다르다지만, 결국 유전학적으로는 같은 분류다.

다름이 있다면 남성이냐 여성이냐 정도일까.

그마저도 같은 종이다.

그런데 왜 사람마다 인격은 이렇게 다를까.

누구 앞에서는 착하지만, 누구 앞에서는 건방진 태도를 보이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

이 복잡하게 얽힌 회로를

겨우 대학생이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하물며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얼마나 더 심해질까.

그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불안했다.

불안하고, 너무나도 불안했다.

내 기분을 꾹꾹 눌러 담고,

다른 사람의 기분을 위해 웃어야 하는 이 사회.

이 불합리한 시스템 속에서

나는 늙고 병들어 죽을 때까지

계속 이런 연극을 해야 하는 걸까.

그런 시스템은 도대체 언제부터 만들어진 것일까.

누가, 무엇 때문에,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생각해 말하라”는

이 잘못된 도덕의 규범을 만들었을까.

인류는 왜 타인을 배려하면서까지

자신을 희생하려 했을까.

수많은 질문이 내 머리를 옥죄어왔다.

그저 질문만이 남았다.


그렇게 나는,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누구보다 인간답게, 아니 누구보다 더 철저하게

사회라는 시스템을 수행하며 대학 생활을 보냈다.

그 보상으로, 사람들과의 관계에 큰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까지 얻었다.

아이러니였다.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인간들 속에서 가장 무난하게,

아니 오히려 신임을 받으며 지냈다는 사실이.


그러나 그것은 모두 허울뿐이었다.

허울뿐인 인간들, 허울뿐인 관계.

나는 그 속에서 웃었고, 또 침묵했다.


남은 것은 알코올 중독과,

손끝에 남은 지나친 담배 냄새,

그리고 끝내 쓸모없음을 증명해 버린 인간관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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