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학과 창고입니다. 열지 마세요"
"워!”
“아 진짜 깜짝아… 하, 진짜 놀랐잖아요!”
주위 사람들은 동시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웅성거렸다.
“미안 미안. 근데 진짜라니까? 분명 뭔가 봤어.”
“에이, 설마요. 아무리 여기가 산골짜기 학교라지만 그건 너무 픽션이죠.”
“나도 잘은 몰라. 그냥 졸업한 선배들한테 들은 얘기야.”
그날은 종강을 맞아, 졸업을 앞둔 선배들과 함께 석철 선배 자취방에서 술자리를 했다. 학과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처음 보는 얼굴도 섞여 있었지만, 좁은 공간에서 술잔이 오가며 모르는 사람끼리도 어느새 친해졌다. 술은 이미 한계까지 올라 더는 못 마시겠는데, 그렇다고 자리를 파하기도 아쉬운 눈치라 선배들은 무서운 이야기를 꺼내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이 학교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막차도 일찍 끊기고, 시내로 나가는 버스마저 몇 대 없었다. 자연스레 대부분의 학생들은 원룸이나 기숙사에서 자취를 했고, 이곳은 그야말로 제2의 고향 같은 공간이었으니까.
사실 이런 무서운 이야기는 신입생 때부터 이어져 온 전통 같은 것이었다. 산밖에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없다 보니, 세대를 거쳐 내려오는 관습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 사람이 이야기를 끝내자, 이번엔 가장 고학번인 선배 차례였다.
“야야, 그럼 내가 그 얘기해줄게. 우리 과에서 전해 내려오는 얘기라 진짜 싸~해.”
“오, 뭔데요? 궁금해요.”
다들 픽션이란 걸 알면서도 ‘우리 과 얘기’라니 괜스레 마음이 끌렸다. 그러자 한 선배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또 그 얘기야? 으휴… 그거 듣고 나면 애들 강의실에서 과제 못 한다니까 하지 마.”
우리 과는 의류학과였다. 산골 중에서도 외딴곳에 관이 있었고, 엄청난 양의 과제를 밤새 강의실에서 해결해야 했다. 괜히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래도 듣고 싶어요! 어차피 다 같이 과제하러 가면 괜찮잖아요.” 용감한 여자 후배가 나섰다.
“아, 조용히 하고 다들 들어봐. 너희 403호 강의실 알지?”
학번이 제법 올라 이제 후배들 앞에서 ‘선배’라 불릴 수 있는 내가 끼어들었다.
“네, 알죠. 문 안 열리는 곳. 귀신 나온다고 소문난 거기요. 창고라고 써져 있는 곳. 열지 말라고 써져 있는”
“근데 거기, 진짜 귀신 나오는 거 아냐?”
“에이, 또 괜히 양념 치시는 거잖아요.”
그러자 선배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짜야. 설이 너 들어봐. 우리 과가 지금 창고로 쓰는 강의실 몇 층에 있냐?”
“…1층이요.”
“근데 왜 같은 창고인 403호 강의실 문이 열렸다는 얘기를 나도, 12학번인 나도 들어본 적이 없을까?”
“네? 그러게요…”
선배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이건 내 문제가 아니야. 내가 입학했을 때도, 08학번 선배조차 그 문이 열리는 걸 본 적이 없대.”
“… 그건 좀 미스터리네요. 그래도 귀신 때문은 아니고, 그냥 공사가 덜 된 거 아닐까요?”
“야야, 끝까지 들어봐. 공사라니. 우리 관은 리모델링만 몇 번을 했는데, 고작 그 작은 강의실 하나를 수년째 공사도 못 하고 있다는 게 말이 돼? 등록금도 싼 것도 아닌데 말이야.”
다들 숨을 죽이고 들었다.
“내가 너 입학하기 2년 전쯤이었나? 군대 휴가 나와서 민석이랑 학교에 놀러 온 적이 있었거든. 그때 동기들이랑 술을 엄청 마시다가, 그 강의실이 너무 궁금해서 한번 문을 열어 보려고 했어. 근데… 아무리 해도 안 열리더라. 다 큰 성인 남자 셋이 달라붙었는데도 낡은 강의실 문이 꿈쩍도 안 하는 거야. 그게 먼저 미스터리였지.”
잠시 뜸을 들이던 선배는 낮게 목소리를 깔았다.
“아무튼 그래서 우리는 그냥 포기하고, 비어 있는 다른 강의실에 들어가 술을 마시고 있었지. 그런데…”
선배는 일부러 말을 끊어 분위기를 살렸다. 모두가 무심코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때 지혜라고, 너희는 모를 거야. 우리 동기 하나가 화장실 간다고 민석이랑 나갔는데… 20분쯤 지났나? 갑자기 지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입에 거품까지 물고는 미친 듯이 민석이가 엎고 뛰어 들어오는 거야. 꼭 귀신 본 사람처럼.”
그 순간 민 선배가 눈살을 찌푸리며 기억을 보탰다.
“장난 아니었지. 지혜가 갑자기 여자화장실 쪽에서 나한테 뛰어오면서 고래고래 ‘가자! 가자! 가야 해!’ 소리를 지르면서 버럭 대는데, 결국 내가 걔를 업고 원룸촌까지 뛰어 내려왔잖아. 진짜 죽는 줄 알았다니까.”
다른 선배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 다행히 우리야 그냥 학교 구경 온 거라 상관없었는데… 동기들은 술병도 안 치우고 가버렸잖아. 다음날 선배들한테 욕 엄청 먹었다지, 허허.”
“끝이에요?”
성격 급한 내가 다가앉으며 물었다. 그러자 선배는 잠시 인상을 쓰더니, 낮게 말을 이어갔다.
“설마 끝이겠냐. 진짜 무서운 건 그다음부터야.”
모두가 숨을 삼켰다. 선배는 한동안 말을 고르다가 천천히 던졌다.
“지혜는 원래 과탑이었어. 학교 생활도 성실하게 하고, 늘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던 애였지. 그런데… 그날 이후 이상한 일이 생겼어. 학교에서 보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강의실에서는 아무도 지혜를 본 적이 없는 거야.”
순간 주위가 싸늘해졌다.
“쉬는 시간에 불러도 대답을 안 하고, 복도나 운동장 같은 데서 혼자 어슬렁거리는 건 본다더라. 근데 수업 시작하면… 안 와. 출석부에는 이름만 남아 있는데, 강의실 안에서는 아무도 본 적이 없다는 거지.”
용기 있던 여자 후배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과 수석 입학에 내내 1등이었다면서요… 그런 사람이 학교는 나오는데 수업에선 사라졌다니… 말도 안 돼요.”
“그러니까. 말이 안 되는 게 맞아.” 선배는 허공을 짚듯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때부터 애들이 403호 얘기를 꺼내는 걸 피하기 시작했거든.”
“왜요?”
“왜긴… 이 이후에 나랑 민이, 그리고 우리 동기들은 이 얘기를 다시 꺼내지 않기로 했어. 사실 우린 이제 졸업이니까 말해줄게, 무서운 이야기하는 타이밍이기도 하고, 그래서 말해주는 거다.”
선배는 침을 꼴깍 삼키며 말을 이었다.
“지혜가 그다음 날 밤에 혼자 403호 강의실을 열었대. 남자 셋이서 열어도 꿈쩍도 안 하던 그 문을…”
방 안 공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러고는 애가 미친 듯이 디자인관을 돌아다니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는 거야. 결국 관리인 아저씨가 무슨 소리인가 하고 가서 말리려 했는데, 혼자선 도저히 감당이 안 됐대. 다른 관리인들이 달려와서야 겨우 붙잡을 수 있었다네."
다들 눈을 커다랗게 뜨고 석철 선배의 말에 집중했다.
“지혜는 그 일 때문에 학교에서 징계니 정학이니 말이 많았어. 결국 정신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진단서를 부모님이 대신 제출해서 정학은 겨우 면했지. 문제는… 그 뒤에도 계속 학교를 나왔다는 거야.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둘 지혜를 피해 다니기 시작했어. 그러다 어느 순간, 지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쪽지 하나만 남기고.”
“…어떤 쪽지요?”
대담하던 여자 후배도 이번엔 목소리가 작아졌다.
석철 선배는 낮게 읊조렸다.
“『403호 강의실 문 열어볼래?』”
정적이 흘렀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오싹하지 않냐? 물론 다들 자격증이니, 취업 걱정이니, 학점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했지. 근데 문제는… 그 쪽지가 남겨진 시점이 딱 403호를 열었던 때라는 거야. 게다가”
선배는 말을 멈추고 주위를 훑었다.
“그 강의실 문에 크게 칠해져 있던 페인트 글씨, ‘의류학과입니다. 열지 마세요.’ … 그게 지워졌대.”
“그래서 지혜 선배는 자퇴 처리된 거예요?”
“아니, 그것도 몰라. 전화도 안 되고, 부모님도 연락이 끊겼다더라. 그보다… 다시 그 문구가 써져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 누가 쓴 건지는 아무도 몰라.”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에이, 전 그걸 누가 썼는지가 더 궁금한데요? 솔직히 이건 무섭다기보단 호기심이 앞서지 않나요. 어차피 선배님들도 짐 싸야 하고, 우리도 내일 당장 본가로 내려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럼… 담력 체험, 고?”
겁 많은 나는 강하게 반대했다.
“야, 야! 아서라. 원래 공포 영화 보면 호기심 많은 사람이 제일 먼저 죽는다니까?”
석철 선배가 비웃듯 말했다.
“허허, 설이 봐라. 이렇게 겁이 많아서야 이 험난한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냐.”
민석선배가 나를 감싸주 기라도 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지, 이건 담력 체험이 아니라니까. 괜히 갔다가 진짜… 귀신에 홀리면 어쩌려고? 진짜 거기는 문제 있다니까? 우리 졸업인데 이제 진짜 요단강 건넌다?”
하지만 분위기는 이미 기울어 있었다.
“에이, 그래도 가보죠. 이런 것도 나중엔 다 추억이에요.”
“맞아, 너무 궁금하다 진짜.”
짧은 시간 안에, 불과 몇 분 전까지 무서운 이야기에 잔뜩 움츠러들었던 얼굴들이 호기심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결국 반대하던 나랑 민석선배도 어쩔 수 없이
자정이 넘은 깊은 밤, 우리는 산을 타고 올라가 우리 과 건물이 있는 관으로 향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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