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4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다 멈췄다.
혹시라도 그가 깰까 봐, 조심스레 숨을 죽였다.
그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고른 숨결, 미동 없는 어깨,
부드럽게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이마부터 콧날, 입술까지 조용히 정돈된 얼굴선.
……예쁘다.
남자의 얼굴을 보고 그렇게 느낀 건 아마 처음이었다.
날카롭지도 않고, 그렇다고 부드럽기만 하지도 않은—
묘하게 단정한 얼굴.
낯설면서도, 왠지 오래 본 것만 같은 얼굴.
그렇게 멍하니 바라보던 순간,
그가 눈을 반쯤 뜨며 중얼거렸다.
“……음?”
“네?”
“‘네?’가 아니고요. 지금 왜 여기 계시죠…?”
나는 흠칫 놀라,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얼른 등을 돌렸다.
민망함을 숨기려 헛기침까지 했다.
“그쪽, 바닥이었잖아요. 언제 여기까지 올라온 거예요?”
그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제가 올라온 게 아니라, 그쪽이 내려온 거죠.”
“네?”
순간, 딱딱한 바닥감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눈앞엔 침대 밑 공간.
……내가 굴러 떨어졌구나.
나는 얼른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
“아니, 그게… 오해하지 마요.
그냥 술 마시고 피곤해서 자다가 떨어진 것 같아요.”
순간의 침묵.
그러다 불쑥,
그가 입을 열었다.
“근데요.”
“……네?”
“그쪽.. 아니 혜은 씨, 아침부터 남자 얼굴 빤히 보는 건… 좀 그렇네요.
잠버릇 고약한 건 잘 알겠고요.”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누가 그쪽 얼굴 예쁘다고 일부러 봐요!
그리고 이 일은 비밀이에요!
어디 가서 말할 생각 하지도 마요!
잠버릇은… 미안하고요.”
그는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말할 곳도 없어요.
이럴 때 친구가 있으면 바로 말했을 텐데.”
“참, 어이가 없네요.
그렇게 친구 필요 없다더니, 이럴 땐 잘도 찾네요.”
그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몸을 돌려 내게 등을 보였다.
마르다 못해 가냘파 보이기까지 한 등.
묘하게, 외로움이 묻어나는 등.
“……장난이에요. 장난.”
나는 그의 등을 툭, 가볍게 쳤다.
“장난도 정도껏 해야죠. 진짜, 밉게 말하는 재주는 타고났나 봐요.”
그는 여전히 등을 돌린 채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조용한 웃음.
그리고,
그의 등을 이렇게 가볍게 칠 수 있을 만큼
우리가 가까워졌다는 사실이
괜히 마음을 간질였다.
생각보다 따뜻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해장하러 갈래요?”
“……네?”
“그만 놓아주시죠. 다음 주 내내 붙어있을 사이잖아요.”
그 말에 잊고 있던 ‘여행’이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왜 웃어요?”
“그냥요. 웃겨서요.”
그는 숨을 내쉬듯 말하며,
한쪽 눈썹을 살짝 올렸다.
“지금 그쪽 웃음소리…
좀 이상한데요.
그쪽 표현으로 하면, 변태 같달까요?”
“진짜 어이없네.”
“뭐, 일단 해장부터 하고
비행기표도 슬슬 알아보죠.
숙소도 그렇고.”
나는 괜히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서
시선을 아래로 떨군 채 중얼거렸다.
“……네. 그래보죠.”
맑은 국물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반쯤 감긴 눈으로 해장국을 바라보던 나는,
숟가락을 들고 겨우 말을 꺼냈다.
“……살겠다.”
“그쪽, 어제 그 텐션으로 어떻게 그렇게 떠들었대요.”
“그야… 취했으니까요.”
나는 천천히 고갯짓을 하며 핸드폰을 꺼냈다.
그도 조용히 자신의 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해외여행이라니—
아주 오래전, 어릴 적 가족 여행이 마지막이었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숙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는 휴대폰을 보며 짧게 대답했다.
“근처 괜찮은 데로 제가 찾아서 예약할게요.”
“그렇게 해주시면 저야 고맙죠.
비행기는 오후 걸로 하나요?”
“아뇨. 오전 11 시대 걸로요.
너무 늦게 가는 건 별로니까요.”
“네… 그러죠.
뭔가, 다 그쪽이 하시는 것 같아서 미안하네요.”
그는 얼굴을 들지도 않은 채 말했다.
“괜찮아요. 그게 제가 더 편하거든요. 신경 쓰지 마세요.”
잠시, 손끝만 바쁘게 움직이며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권 정보는 저녁쯤 제가 등록할게요. 번호만 이따 알려주세요.”
나는 해장국을 떠먹으며 작게 끄덕였다.
“네. 바로 보낼게요. 그리고… 여행 경비는 제가 보내드릴게요. 계좌 알려주세요.”
그는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됐어요. 살아가는 게 힘들다면요. 가서 밥이나 한 끼 사요.”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요.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아요.”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 오늘만 몇 번째인지 모르겠네.
됐고요, 나중에 밥이나 꼭 사요.”
나는 괜히 작게 웃었다.
염치없다는 걸 알지만,
정말 고마웠다.
실제로, 경제적으로 빠듯하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는 핸드폰 화면을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
“예약 끝났어요. 이 비행기 타면 돼요.”
나는 예약 내역을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요, 모지코 간다면서… 왜 후쿠오카로 가요?”
그는 이마를 짚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