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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코에서 가을을

EP. 16

by 추설

“모지코는 기타큐슈에 있어요.
그쪽 말대로 후쿠오카에서 이동해야 하고요.”

그가 손가락으로 허공에 선을 긋듯 이어갔다.
“모지코뿐만 아니라 그 근처 지역도 가볼 거예요.
고쿠라, 시모노세키…
뭐, 하루쯤은 후쿠오카에 있어도 되고요.”

모두 이름만으로는 감이 오지 않는 곳들.
그저, 낯선 지명들.
그가 말하니까 그런 곳이 있구나 싶을 뿐이었다.

“다 계획이 있었네요.”
“대충요.”
그의 대답은 늘 그렇듯 담담했다.
하지만 어쩐지,
그 사람만의 어떤 경로가 이미 그려져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알겠어요. 그냥 따라갈게요.
대신… 저는 먹을 거 담당할게요. 맛집은 제가 찾아볼게요.”
그는 짧게 고갯짓을 대신해 손목을 살짝 돌리며 응수했다.
“그건 그쪽 전문이니까 맘대로 하시죠.”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우리는 커피를 다 마시고,
다시 이동을 준비했다.

아직 잘 모르는 곳들이지만,
그래도 이 사람을 따라가면
어딘가는 도착하겠지.
그런 마음이었다.

우리는 커피를 다 마시고, 공항에서 바로 하카타역으로 향했다.

하카타역에 도착하자,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넓고 복잡한 공간에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갔다.
출근길처럼 빠르게 걷는 사람,
큰 캐리어를 끌며 두리번거리는 여행자,
서로를 기다리는 듯한 사람들.

각자의 이유로 모인 군중 속에서
그와 나는 묘하게 느슨한 속도로 걷고 있었다.
그는 마치 오래 다닌 사람처럼,
주저함 없이 길을 찾아 나섰다.
한 번도 동선을 헷갈리지 않는 걸 보니,
이곳이 낯선 내가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는 주변을 살피다 그에게 물었다.
“근데 우리 뭐 타고 가요?”
그가 시선만 옆으로 흘렸다.
“신칸센이요.”
“그게 뭔데요?”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숨을 한 번 내쉬며 말했다.
“KTX 같은 거요.”
“아, 빠른 기차.”
“애도 아니고 참… 빠른 기차라뇨… 아무튼 맞아요.”

플랫폼에 도착하니,
멀리서 신칸센이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하얗고 매끄러운 차체.
어딘지 차가운 금속의 인상.

우리는 자연스럽게 탑승했고,
조용한 좌석에 앉았다.
그는 캐리어를 정리한 뒤, 창밖에 시선을 붙였다.
나도 잠시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곧 창 너머로 눈길을 옮겼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출발하자마자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뒤로 밀려갔다.
낯선 도시의 얼굴들이, 눈앞을 스치듯 지나갔다.
나는 그제야 실감했다.
정말 일본에 와 있구나.
그리고,
이 사람과 함께 일본 땅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도.

“고쿠라까지는 금방이에요.”
그의 말이 이상하리만치 차갑게 들렸다.
그 말 이후로, 우리는 다시 말이 없었다.
하카타의 분주함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고,
우리는 이제,
조금 더 모지코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조용함이 계속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싶었다.
여행이라는 게, 말 그대로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거니까.
게다가 우린 어쨌든,
하룻밤을 같은 공간에서 지낸 사이였다.





표지.jpg '모지코에서 가을을'과 이야기를 공유하는 작품 『세상에 없던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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