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처럼 물들고, 바람처럼 흩어진 사랑에 대하여
가을은 언제나 조금 늦게 찾아왔다.
바람이 차가워지고,
거리의 나뭇잎이 붉게 변할 때쯤
비로소 마음이 계절을 따라 움직였다.
그해 가을,
너와 나는 자주 걸었다.
공원 벤치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나눠 마시고,
낙엽이 쌓인 길 위에서
의미 없는 이야기를 오래 나눴다.
햇살은 부드럽고, 공기는 투명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은 서늘했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모든 계절에는 끝이 있다는 걸.
언젠가부터 우리의 대화는 짧아졌고,
눈을 마주치는 일도 줄어들었다.
단풍이 가장 예쁜 날,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이별은 늘 그렇게 찾아온다.
커피가 식고,
손끝의 온기가 조금씩 사라질 때쯤
서로의 마음도
조용히 식어간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날 이후로,
가을은 나에게 조금 다른 계절이 되었다.
길가의 낙엽이 바스락거릴 때면
그때의 대화가 들리는 것 같고,
바람이 스칠 때면
너의 목소리가 함께 떠오른다.
사람의 마음은 참 이상하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 계절의 공기와 냄새를
그리워하게 된다.
요즘도 가끔은
커피 향이 짙은 오후에
그때의 우리를 떠올린다.
그건 미련이 아니라,
한때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조용한 증거 같은 것이다.
가을이 끝나갈 때,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슬프지 않았다.
사랑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
그 계절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은 결국
누군가를 잊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있던 계절을 떠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가을이 오면 네 생각이 난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질 때면
그날의 우리처럼 마음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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