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아직도 평일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난 저녁,
사무실 불이 하나둘 꺼졌다.
모니터 화면에 반사된 내 얼굴이
하루 동안의 피로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문득 고요해졌다.
사람들의 대화도,
키보드 소리도,
모두 멀어졌다.
건물 밖으로 나서자
도시의 불빛이 젖은 도로 위로 번졌다.
비가 왔는지도 몰랐다.
우산을 챙기지 않았던 나는
지하철 입구로 뛰어가듯 걸었다.
퇴근길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피곤함, 무표정, 혹은 아주 잠깐의 안도.
그 속에서 나도 그저
익명의 한 사람일 뿐이었다.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문득 창밖 어둠을 바라봤다.
누군가는 내일을 계획하고,
누군가는 오늘을 견디고 있었다.
나 역시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
휴대폰 알림 창이 깜빡였다.
‘아직 사무실이면 오늘 간맥 어때요?’
옆자리 사원의 짧은 메시지였다.
단 1초의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화면을 꺼버렸다.
하루가 끝났는데
마음은 여전히 일하고 있었다.
미처 닫지 못한 탭처럼
머릿속이 계속 깜빡였다.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조용히 불을 껐다.
천장의 빛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때서야 하루가 정말 끝났다는 걸
조금은 실감했다.
내일도 무채색의 하루는 비슷할 것이다.
그때 본 그 색상들을 다시 보고 싶다.
-> 『세상에 없던 색』에 나온 주인공인 '현서'의 검은 여름 파트에서 책에 담지 못한 속마음을 풀어내봤습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7444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