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며 살고 있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 1년 반이 지났다. 홀린 것처럼 시작한 일인데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글쓰기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고, 평생 계속 글을 쓰며 살고 싶다. 글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글을 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 같았다. 글을 잘 쓴다는 담임 선생님의 칭찬, 취미가 된 독서, 별과 달을 좋아하는 마음, 이유도 여러 가지였다. 성공한 사람들이 TV에서 인터뷰를 하듯,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순간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만들고 싶었다. 운명처럼 시작한 글쓰기, 인연처럼 다가온 글쓰기, 그렇게 글쓰기는 나에게 특별하다고, 무엇보다 특별한 의미를 지닌 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인연은 많지 않다. 그 시작이 아무리 특별해도 그렇다. 운명처럼 시작했든 영화처럼 만났든, 무언가와 평생을 함께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건 글과의 인연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시작을 했든 그것을 지속하는 데는 또 다른 힘이 작용하는 것이다. 2년이 되도록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이유가 그저 선생님의 칭찬을 기억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독서가 취미라고 계속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감성적인 성격이라서 계속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그런 성향들로 글쓰기를 시작한 건 맞지만 이후로도 꾸준히 글을 쓰는 이유는 글쓰기 그 자체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시간, 그 순간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건 내 안에 있는 생각과 감정을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나의 실체로 만드는 것이다. 그걸 위해 생각을 가다듬고, 감정의 깊은 곳을 들여다본다. 어울리는 단어들을 찾아 이리저리 조합한다. 문장을 만들고, 운율을 느낀다. 그리고는 읽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한다. 내 생각은 이러한데, 당신은 어떠냐고 묻는다. 그리고 다시 대답한다. 당신의 감상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고,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반대하는 부분도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생각을 주고받는다. 대화를 한다. 그런 느낌으로 글을 쓴다.
그러다 보면 글에는 생명력이 생긴다. 글은 살아 움직여 내 마음과 읽는 이의 마음을 오고 간다. 그렇게 독자와 나는 연결된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만나 조금 더 가까워진다. 이런 생각을 하면 기쁘고, 글을 쓰는 순간이 행복하다. 햇살 밝은 카페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하얀 화면에 내 생각을 적어내는 활동. 비록 글이 써지지 않는 순간도 많고, 글 앞에서 작아질 때도 많지만, 그래도 나는 글쓰기가 좋다. 글을 쓰면 행복해진다.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로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는 분들이 많다. 브런치 작가님들도 그렇고, 가까운 지인들도 그렇다. 추세경 작가님, 추 작가,라고 해준다. 그리고 그들은 묻는다. 그래서 책은 언제 나오냐고, 책이 나오면 사주겠다고, 그러면 꼭 사인을 해달라고 말이다. 조금 부끄럽지만 그렇게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이 고맙다. 그저 듣기 좋은 말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정말로 고맙게 생각한다. 때때로 사람은 작은 말 한마디에도 위로를 얻는다. 그렇게 말해주는 마음이 고맙다.
생각해보면 글쓰기와 책을 낸다는 것, 그리고 작가라는 건 같은 의미를 지닌 말들처럼 들린다. 글을 쓰는 사람은 곧 책을 쓰는 사람이고, 책을 쓰는 사람이 곧 작가라는 것이다. 노래를 아무리 잘해도 자기 노래가 없는 사람을 가수라고 부르기는 조금 어려운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자기 책이 없는 사람이 작가라고 불리는 건, 뭔가 마음에 걸린다. 책 한 권 없는 내가 작가라고 불리는 게 조금 부끄럽다는 것이다. 책을 내야만 비로소 작가라고 누가 정해 놓은 건 아니지만, 괜스레 그런 생각이 든다. 작가라는 호칭의 무게랄까. 글쓰기를 시작한 지 거진 2년이 되어 가니 이제는 책을 한번 출간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
책을 낸다는 건 꿈과 같은 일이다. 저자란에 내 이름이 적혀있고, 그 책이 서점 진열대에 올라 있는 상상을 하면 행복하다. 실력이 있고 운이 좋다면 스테디셀러나 베스트셀러가 될 수도 있다. 정성과 노력으로 쓴 한편 한 편의 글이 하나의 실체로서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다. 책을 내준다는 공모전에 목을 맨 이유도 그래서였다. 출간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책을 쓰겠다는 생각을 하면 글을 쓰는 게 그다지 설레지 않는다. 글쓰기에 선 뜻 손이 가지 않는다. 납기가 정해진 회사의 일이나, 노느라 밀려 버린 방학 일기처럼 느껴진다. 책을 내기 위해서는 하나의 주제로 쓴 일정 분량의 원고가 있어야 한다. 외로움에 대한 책이라면 외로움에 대한 글이 30편 정도 있어야 한다. 사랑에 대한 책이면 사랑에 대해서 30편을, 불안에 대한 글이면 불안에 대해서 30편을 써야 한다. 책의 흐름을 기획해야 하고, 원고가 완성되면 출판사에 투고를 해야 한다. 출간을 해주겠다는 출판사가 있으면 나를 담당하는 편집자와 수차례의 밀고 당기기를 해야 한다. 그런 일들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나는 그저 글을 쓰는 게 좋은데, 굳이 이런 일들을 해야 하나 싶다.
그 정도 노력은 해야지, 그게 귀찮으면 책을 낼 수 없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그건 나도 인정하는 바이다. 책을 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거네,라고 한다면 (기분이야 나쁘겠지만) 그렇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일을 애써서 노력하는 성격이 아니다. 책을 내기 위해 앞서 이야기한 일련의 과정에 정성을 쏟고 싶은 마음이 아직은 없다. 지금은 그저 그때그때 생각나는 주제로, 그때 내 안에서 화두가 되는 소재로 글을 쓰는 게 좋다. 굳이 출간을 위해 한 가지 주제만 억지로 생각해서 글을 쓰기는 싫은 것이다. 그렇게 글을 쓰는 건 별로 행복하지 않다.
조급한 마음이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책을 내야 한다고 말이다. 당장 쓰고 싶은 이야기는 조금 뒤로 하고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그에 맞는 원고를 써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을 달리 하려고 한다. 꼭 당장에 책을 써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게 꼭 책을 쓰는 게 될 필요는 없다. 보다 중요한 건 글을 쓰는 행위와 거기서 느끼는 기쁨이지 꼭 내 이름이 적힌 책이 서점에 진열될 필요는 없다. 글을 써서 공개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런 내 글을 읽어주는 분들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글을 쓰다 보면 몰입하게 된다. 그렇게 열중하고 있는데 화장실이 급하면 노트북을 들고 화장실에 간다. 변기에 앉아 일을 보면서도 글을 쓴다. 퇴근길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삼십 분을 혼자 서있던 적도 있다. 그렇게 서서 핸드폰으로 문장들을 고쳤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랄까. 그럴 때면 내 주변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앞뒤로 누가 지나가든, 날이 흐리든 밝든, 오로지 거기 있는 건 까만 글씨와 나뿐이다. 그렇게 글을 쓴다.
휴가 때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가는 건 상상만 해도 행복한 일이다. 오늘은 과연 어떤 글을 쓸지, 그 글은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날지 궁금하다. 그게 나의 글을 쓰는 기쁨이고, 그래서 계속 글을 쓴다. 이런 내 글쓰기가 책이 될 수 없다면, 굳이 책을 내지 않아도 된다. 글쓰기의 기쁨과 책의 저자가 되는 것, 굳이 둘 중에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나는 과감히 저자가 되는 걸 포기할 수 있다. 책을 쓰는 것보다 중요한 건 좋은 글을 쓰는 것이다. 행복한 글쓰기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말 책을 내고 싶지 않은 거냐,라고 한다면 그건 아니다. 하지만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쓰는 글이 하나씩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하나의 부피감 있는 생각의 덩어리가 될 거라고 믿는다. 그렇게 되면 그건 그 자체로 하나의 책이 될 수 있다. 억지로 쓴 글들을 모으지 않아도 이렇게 한 달에 두세 편씩 글을 쓰면 시간이 지나 언젠가는 책 한 권의 원고가 쌓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순간이 오면, 그때 책을 내면 된다.
사실 요새는 전자책 출판이나 자비 출판 등 출간의 방법이 다양하다. 책을 낼 수 있는 의지만 있다면 출판사를 거치지 않아도 책을 낼 수 있다. 완성도가 조금 떨어질 수 있지만 단순히 출간 작가가 된다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번 생각해도 책을 내는 것보다 중요한 건 글쓰기 그 자체이다. 책을 기획하는 것도 아니고 책을 출판하는 것도 아니다. 출간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책을 써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글쓰기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다면 그건 앞뒤가 뒤바뀐 일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경애하는 작가의 글을 보면 행복해진다. 살아있는 묘사와 적확한 표현,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 그런 글을 읽다 보면 내 안의 세계가 확장되는 기분이 든다. 글이 주는 감상은 내 안에 남아 나의 일부가 된다. 나를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한다. 절대적인 고독은 무엇인지, 함께하는 기쁨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그저 쳇바퀴 같은 매일의 일상에서도 나는 글을 통해 겪어보지 못한 세상을 경험한다. 그 경험은 잠들어 있던 내 안의 무언가를 일깨운다. 문장을 통해, 글을 통해, 거기에 실린 작가의 에너지를 통해 나는 더 풍요로운 존재가 된다. 더 다채로운 감각을 가진,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내 글을 읽는 독자도 이런 감각의 확장을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내 글로 누군가가 더 풍요롭고, 더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마음에 조금 더 깊고, 조금 더 농밀하게 달라붙을 수 있는 문장을 만들고 싶다.
살다 보니 점점 더 시간의 무게가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효율적인 것도 중요하고 에너지를 짧게 집중하는 게 좋을 때도 있지만 사실 인생에서 보다 중요한 일들은 대개 충분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건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깊이 사유해야 한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느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내 안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시간을 들여야 한다. 나무가 1년에 하나씩 나이테를 더 해가듯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나의 세계를 깨쳐가야 한다. 글의 깊이와 문장의 유려함은 짧은 시간 안에 체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시간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책을 내야겠다고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행복하게 글을 쓰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자연히 책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도 그렇게 했을 때 더 좋은 책을 쓸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한다. 책 쓰기를 위해 억지로 적어 내린 글보다는 하루하루 살아있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글들이 더 나은 책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까.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느껴야 할까. 더 많이 웃어야 할까, 더 많이 울어야 할까. 정답은 없다,라고 생각한다. 다만 중요한 건 계속 글을 쓰는 것이다. 글 쓰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살아가는 만큼 쓰면 된다. 살아있는 만큼 표현하면 된다. 시간의 힘을 믿고, 한 줄의 문장을 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