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엄마를 찾으러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나에게 아빠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도 술에 취해 자기 엄마를 찾으러 간다고 했고 그 이야기가 마음속 깊이 박혀 있던 엄마는 결국 내가 꺼낸 이야기에 그 퍼즐을 맞추었다. 그게 정답이라고 믿었고 혹시 그게 정답이 아니더라도 엄마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아빠가 자기들을 완전히 배신한 것은 아니라고 아빠도 우리에게 돌아오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그렇게 라도 생각해야 아빠에 대한 미움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게 엄마의 마음이 편해지는 길이었다.
“민규야, 엄마는 아빠가 어디에 갔는지 이제야 알겠어. 너네 아빠는 너네 할머니를 찾으러 간 거야. 마치 너처럼. 이제야 알겠어. 우리를 떠난 건 아빠의 의지였지만 우리에게 돌아오지 못하는 건 아빠의 의지만은 아닐 거야. 우리를 떠난 건 용서할 수 없지만 왜 우리에게 돌아오지 못했는지 그건 이제야 이해가 됐어. 민규야 엄마는 여기에 존재하지만 언제 까지고 그럴 수는 없어. 언제 일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여기서도 사라지게 될 거야. 그 시기는 점점 다가오고 있고, 엄마는 그걸 느끼고 있어. 그때가 오면 엄마는 완전히 소멸되어 버릴 거야. 네 말이 맞아서 내가 지금 죽은 게 아니라 해도 언제까지나 이곳에 존재할 수는 없어. 현실의 세계에서도, 이곳에서도 사라지는 거야.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너도 그렇게 돼. 그러니 현실의 세계로 가. 현실로 가야 해. 그래야 네가 살아. 그곳에 가서, 너의 삶을 살아. 네가 살아야 엄마도 구할 수 있지. 일단 이곳을 떠나"
이곳을 떠나라는 엄마의 말을 나는 수긍할 수 없었다. 이곳을 떠나야 하는 건 맞지만 엄마를 이곳에 두고 떠나갈 수는 없었다. 고양이 인간의 말이 맞다면 나는 엄마를 구해야 했고 이곳에서 엄마를 만난 이상 어떻게 든 엄마와 이곳에서 함께 탈출해야 했다. 나 혼자 떠나라는 엄마의 말은 나를 구하려는 엄마의 마음이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이곳을 떠난다면 언제 어떻게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엄마를 구하는 건 나중이 아니라 바로 지금 해야 할 일이라고 믿었다. 문제는 방법이었다. 이곳에서 엄마를 구해낼 방법을 나는 몰랐다. 어디에도 힌트가 없었다. 엄마가 알 수도 없었고 내가 알 수도 없었다. 고양이 인간이든 아니면 빨간 아이폰의 여자든 누구든 나에게 힌트를 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나보고 일단 떠나라는 엄마와 엄마를 두고 떠날 수 없다는 나의 대립은 결국 함께 울타리 밖으로 나가보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다. 엄마도 나와 함께 이곳을 벗어나 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집을 벗어나 내가 처음에 누워있던 곳으로 가보는 것뿐이었다. 당시 내 머릿속에는 그 방법 밖에 떠오르는 게 없었다. 시작 지점에 뭔가 힌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힌트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곳이 현실과 이곳을 잇는 통로라고 생각했다. 호밀 밭에 가야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을 나가보자고 합의를 한 뒤에도 엄마와 나는 의견이 달랐다. 나는 몇 시간을 걷고 뛰다 와서 나갈 때 나가더라도 더 쉬다 나가고 싶었고 엄마는 마음먹은 이상 당장 나가야 한다고 했다. 내가 그러면 삼 십 분만이라도 더 쉬고 싶다고 하니 엄마는 알겠다며 어디선가 스포츠용 검정 백팩을 가져와 짐을 싸기 시작했다. 냉장고에서 생수와 바나나를 꺼내 넣었고 화장실에서 수건을 챙겼다. 방에 가서는 옷을 챙겨 넣었다. 왜 챙기냐고 물어보니 집을 떠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일단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우리가 가려는 호밀밭이 이 집에서 멀긴 하지만 짐을 챙길 정도는 아니라고 엄마에게 말했다. 목이 마를 수 있으니 생수 한통과 비가 올 수 있으니 우산이 있으면 좋고 우비를 입으면 더 편할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이런 대화를 하고 있는 게 어이없기도 했다. 혹시 죽었을지도 모르는 두 사람의 대화치고는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이었다.
엄마가 준비하는 동안 나는 소파에 누워 잠시 눈을 감았다. 피곤한데 배는 불러 잠이 올 것도 같았지만 엄마랑 이곳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흥분되어 눈은 졸린데 머리는 맑은 듯 깨어 있었다. 엄마가 살아난다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일 년 동안의 생활처럼 집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다시 학교에 가야 할지 고민은 해봐야 했지만 일단 집에서만 머무르는 생활은 그만해야 했다.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현실로 돌아가면 우리 집은 어떻게 될까. 집도 다시 부활해 있지 않을까. 엄마가 살아나면 모든 것이 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엄마가 죽어서 받았던 보험금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것도 다시 사라지는 건가. 있었던 일이 전부 사라지듯 통장에 있던 돈들도 다시 그전으로 돌아가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돈은 그대로 있으면 좋긴 하겠지만 원래는 없어야 할 돈이었다. 머리로는 그게 맞았다. 현실로 가면 일단 신아영을 만나고 싶었다. 엄마를 살렸다는 소식도 알리고 기회가 되면 고양이 인간에게도 함께 찾아가 보고 싶었다. 엄마를 살리게 된 건 어쨌든 고양이 인간 덕분이었다. 더 이상 엮이기 싫은 마음도 있지만 그래도 고마운 마음도 있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을 때의 여러 상상들이 빌라 옥상에서 접어 날린 종이비행기처럼 머릿속을 떠다녔다. 고요하고 차분하게 가야 할 곳을 찾아가는 기분이었다.
잠이 들려는 찰나 엄마가 나를 깨웠다.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고 했다. 잠이 들려는 찰나가 아니었다. 잠깐 눈만 붙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자고 있었다. 너무 깊이 자는 것 같아 엄마는 나를 차마 깨우지 못했고 그래도 한 시간이 지나도 일어나지 않아서 나를 깨운 것이었다. 막상 눈을 뜨니 팔과 다리 모두 힘이 풀려 몸이 무거웠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출발하자고 엄마가 이야기했다. 내가 엄마를 구하는 게 아니라 엄마가 나를 구하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화장실 세면대에서 물을 틀고 세수를 했다. 수전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일생일대의 순간이라고 할까, 살면서 나에게 이 정도로 중요한 순간이 있었나 싶었다. 영화 속 주인공인 된 것 같았다. 디카프리오나 티모시 샬라메처럼 잘생기진 않았지만 이 서사의 주인공은 나였고 나만이 엄마를 구할 수 있었다. 우연의 연속으로 이곳까지 왔지만 이곳에서 나가는 건 나의 역할이었고 정신을 차리고 엄마를 안내해야 했다. 밥을 잘 먹어서 속이 부글거렸다. 방귀를 크게 한번 꼈다. 시원하고 우렁차고 깔끔한 방귀였다. 뱃속이 한결 가벼워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신까지도 맑아졌다. 좋은 출발 신호였다. 수전을 잠그려는 데 손이 떨렸다. 왼쪽 새끼손가락은 아직도 굽혀지지 않았다. 이 녀석도 곧 제자리를 찾을 것이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엄마와 나는 같이 현관을 나섰다. 여전히 햇살은 평화로웠고 멀리 까지 보이는 호밀 밭의 푸른 전경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처음 이 집에 올 때와 같은 포근함이 없었다. 맑고 푸른 날씨에 가만히만 있어도 시인이 될 것 같이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은 뭔가 부족했다. 기본으로 설정된 컴퓨터 배경화면을 보는 기분이랄까. 보기엔 예뻤지만 감동은 전혀 없었다. 긴장해서일까, 뭔가 달라져 있었다.
"엄마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 아까 나 올 때까지만 해도 날씨가 진짜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뭔가 좀 다른 것 같아"
엄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먼 곳을 응시하는 표정으로 나에게 답했다.
"소리가 사라졌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우리 둘의 말소리 말고는"
엄마 말이 맞았다. 문을 열고 현관을 나선 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에 잔디가 흔들리는 소리도, 햇살이 피부에 부딪히는 소리도, 호밀 사이사이에서 울리던 벌레소리도, 어디 선가 울리던 새소리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현관문을 경계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해 보았다. 현관 안쪽에서는 모든 소리가 살아 있었지만 현관 밖을 나가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으로 보기에는 똑같았지만 문을 경계로 전혀 다른 공간인 듯 소리가 사라져 버렸다. 바깥의 소리를 이 집이 모두 흡수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내가 처음에 이 집에 들어갈 때도 그랬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때는 아무 느낌 없었던 걸 보면 소리가 사라지는 등의 일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전 일인데도 뭐가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민규야,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 집 밖으로 수 없이 나왔지만 이런 적은 없었어. 너 혼자 떠나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랑 같이 떠나면 너한테 무슨 문제가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아니야, 일단 너도 같이 집에 들어가자. 지금은 움직일 때가 아닌 것 같아"
엄마는 나를 올려다보며 말한 뒤 내 손목을 잡고 힘을 주어 나를 집 안으로 데리고 갔다. 현관을 경계로 사라졌던 소리가 살아나는 건 몇 번을 해봐도 신기했다. 어렸을 때 목욕탕 냉탕에 잠수했다가 물 밖으로 나갈 때가 생각났다. 그때와 비슷했는데 그래도 물 안에서는 웅웅 소리가 들렸지만 지금 집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르다면 그게 달랐다. 신발도 벗고 집으로 들어가려는 엄마를 이번에는 내가 붙잡았다. 내 느낌엔 집에 숨는 게 오히려 도망치는 것 같았다. 지금이 이곳을 떠날 가장 좋은 순간 일지도 몰랐다. 당장에라도 집 밖으로 뛰쳐나가 엄마와 호밀 밭을 달리고 싶었다. 이런 용기가 어디서 나오는 건지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엄마, 이런 적이 처음이라고?"
"응, 이런 적은 없었어, 민규야 엄마는 두려워, 너까지 어떻게 될까 두려워" 내게 손목을 붙들린 엄마는 겁에 질린 눈동자로 말했다.
엄마를 설득하는 건 쉬웠다. 엄마는 집에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고 나는 엄마에게 집에 숨어만 있으면 더 큰일이 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이곳에서 도망치려면 어쩌면 지금이 기회일 수도 있다고 했다. 말을 할수록 자기 확신이 커졌다. 바로 이 순간이 엄마와 이곳을 빠져나갈 기회이고 내가 선택받은 자로서 엄마를 구할 수 있는 운명 같은 타이밍 같았다. 나의 확신에 찬 설득에 엄마는 알겠다고 했다. 우리에겐 그게 어려운 선택이 아니었다. 호밀 밭으로 나간 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으면 다시 집으로 들어오면 되는 것이었다. 관건은 엄마가 담장을 넘을 수 있느냐였다. 엄마는 지금까지도 수십 차례 담장을 넘으려고 했지만 이 집의 울타리를 나가는 순간 다시 집에 와 있었다고 했다. 내가 기대하는 건 나와 함께(최소한 손이라도 잡고) 담장을 넘으면 마법처럼 엄마도 담장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이곳을 빠져나간 뒤 내가 누워 있던 출발점으로 가서 다른 힌트를 찾는다. 거기서 다른 탈출 방법을 찾지 못하면 다시 이 집으로 들어와 방법을 찾는다. 혹시 다시 이 집에 들어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도 들었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었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는 지금으로선 상상 밖의 일이었다.
엄마와 나는 다시 현관의 경계를 빠져나왔다. 소리가 없는 세상으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그 느낌이 어떤 건지 이제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고막에 다른 막이 씌워져 모든 소리를 흡수해 버리는 느낌이었다. 경계를 통과하는 순간 하수구로 사라지는 물처럼 모든 소리가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 남은 건 역시 엄마와 나의 말소리뿐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허리를 약간 숙인 뒤 주위를 경계했다. 전투 현장에서 사주를 경계하는 군인처럼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엄마는 내 왼쪽 새끼손가락을 손으로 잡고 의지하듯 내 뒤를 따라왔다. 엄마 손에 붙잡힌 왼쪽 새끼손가락은 저 나름의 힘으로 엄마를 도와주는 것 같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마당 대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엄마와 내가 잡고 있는 손, 그 위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날씨는 따뜻한데 빗방울은 유독 차가운 것 같았다. 시각과 촉감 후각 등 다른 감각들은 살아 있었다. 아니 사실은 청각도 정상이었다. 귀가 안 들리는 게 아니라 소리가 사라졌을 뿐이었다. 비 내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온몸으로 비를 맞고 있으니 비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 바로 비가 올진 몰랐지만 그래도 준비해 놓은 우산이 있어 가방에서 우산을 꺼냈다. 대문으로 이어지는 디딤돌 위로 빗방울이 떨어져 방울방울 원형을 만들었다. 어느새 대문 앞이었다.
"엄마" 내가 큰 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크게 소리 내지 않아도 돼 민규야"
엄마 말이 맞았다. 비가 와서 잘 안 들릴까 봐 큰 소리를 냈지만 세상에 소리라는 건 엄마와 나의 말소리 밖에 없었다. 작게 말해도 다 들렸다.
"아, 그러네"
"엄마, 같이 손잡고 대문을 나가는 거야. 나랑 같이 나가면 엄마도 나갈 수 있을 거야"
"민규야, 엄마가 혹시 나가지 못한다고 해도 너는 계속 가야 돼.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는 거야. 알겠어?"
엄마는 검정 우산을 쓰고 있었고 그 위로 비가 떨어졌다. 우산 원단의 끄트머리로 빗물이 잠시 맺혔다 떨어졌다. 거기에 맺히는 방울 방울이 왠지 하나하나의 생명 같았다. 우산 위로 떨어진 빗방울은 역동적으로 움직였다가 맺히기도 하고 다시 떨어졌다. 우산 밑으로 떨어지는 빗물 너머로 엄마는 마음을 굳게 먹으라는 눈빛을 나에게 보냈다. 비도 오고 엄마의 결연함이 느껴져 비장한 분위기였지만 나는 그다지 긴장되지 않았다. 엄마와 함께 대문을 넘는 걸 실패해도, 그러니까 나와 손잡고 있던 엄마가 사라져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간다고 하면, 그때 다시 방법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냥 한번 넘어보는 것이었고 이 대문을 넘는 다면 진짜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자신감이 차 올랐다. 고양이 인간이 말한 선택받은 인간으로서 이곳까지 왔다. 그의 말을 의심하기도 했지만 결국 여기서 엄마를 만났다. 나와 함께 라면 엄마가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 것이었다. 이 또한 잘 될 것 같았다. 살면서 이런 자신감과 용기를 가졌던 적은 없었다.
"엄마 말 알겠어. 가보자. 잘 될 거야"
나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엄마가 불안해하며 내 새끼손가락만 잡은 게 아니라 엄마의 손을 내 손으로 덮듯이 잡았다. 엄마의 손은 어느새 비에 젖었지만 아직 따뜻했다. 나는 잠겨 있지 않은 대문을 발로 밀어서 열었다. 쇠로 된 대문의 경첩에서 끼익 소리가 날 것 같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실제로는 그런 소리가 났을 수도 있지만 이곳은 소리가 사라진 곳이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대문을 넘었다.
대문을 넘는 순간 사라졌던 소리가 다시 되살아 났다. 비가 우산에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고 물에 젖은 땅을 신발로 밟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엄마의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았을 때 엄마는 어디에도 없었다.
엄마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