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그때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은 은빛의 얇은 안경태를 쓰고 눈꼬리가 째진 중년의 여성분이었다. 당시 느낌으로는 40대였던 부모님 보다 더 세대가 높았으니 아마도 50대가 넘으셨던 것 같다. 어깨 정도 오는 머리길이에 곱슬 파마를 한 것이었는데 볼 때마다 머리가 무엇에 젖은 듯 반짝였다. 그때는 그게 뭔지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왁스나 스프레이 등 헤어 제품을 바른 것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체격이 작고 마른 분이었는데 유독 아랫배가 볼록 튀어나온 분이었다. 그때 반에서 한 아이가 선생님은 똥배가 나왔다고 했었고 그 말을 들은 이후로 나에게 똥배란 선생님의 배처럼 몸은 말랐는데 아랫배만 나온 형태를 의미하게 되었고 지금 나이에도 똥배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끔씩 그때의 그 담임 선생님이 생각난다.
그때 우리 반에는 친구 한 명이 있었다. 머리카락이 얇고 앞니 두 개 사이가 벌어진 친구였다. 몸은 말랐고 골격도 작았고 눈은 깊게 파여 눈 밑이 항상 그늘져 보였다. 왕따를 당한 건 아니었지만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이유 없이 학교에 나오지 않는 날도 많았는데, 내가 기억하는 그날도 무단으로 결석을 한 날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나와 다른 한 친구를 불러 수업에 빠져도 좋으니 그 친구를 ‘잡아’ 오라고 했다. 수업에 빠진 다는 게 괜히 재미있었고 사립탐정이나 형사가 된 것 같아 신나기도 했다. 하늘이 파랗게 맑은 가을날이었다. 수업 중이라 텅 비었던 운동장을 함께 가던 친구와 신나서 달렸다. 꼭 이 임무를 성공하고 싶다는 흥분감도 있었다.
선생님께 받은 친구의 집 주소는 학교에서 내가 살던 아파트를 지나 6차선 대로를 건너야 나오는 주택가였다. 우리 아파트와 그쪽 주택가는 6차선 대로로 나뉘어 있었고 같은 동네였지만 그쪽 주택가는 가본 적이 없었다. 상가나 오락실이 있는 곳도 아니었고 시장이 있는 곳도 아니었다. 주택가의 전경은 눈으로 보기엔 익숙했지만 실제 주택가 안쪽으로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가본 적 없는 곳에 간다는 것은 묘한 설렘과 불안을 함께 불러왔다. 도로를 건너려면 육교를 지나야 했다. 거의 삼십 년 전 일이라 친구네 집에 어떻게 도착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당시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어린 나이였고 당시엔 핸드폰도 없었는 에 주소 만으로 친구네 집을 어떻게 찾아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친구 집에서 내가 보았던 광경은 어떤 이미지로 내 안에 또렷이 새겨졌고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찾아간 친구네 집은 반지하 방이었다. 빨간 벽돌집 대문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야 나오는 곳이었다. 주소가 정확히 맞다고 확신한 우리는 철제 틀에 반투명 유리로 된 현관문을 노크했다. 문은 허름해서 우리의 노크에도 유리와 철제 틀 사이로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몇 번을 두드려도 안에선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혹시나 하며 손잡이를 돌렸는데 문이 열렸다. 지금 같았으면 당황했겠지만 그때는 어린 나이에 그게 웃기고 재밌었다. 초등학생의 패기로(또는 생각 없음으로)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면서도 친구의 이름을 연달아 불렀다.
문을 열고 들어간 친구네 집은 조그맣게 현관이 있었고 그 앞에 바로 주방이 있었다. 말이 주방이지 가스레인지와 싱크대가 있었다는 말인데, 가스레인지는 기름때와 불에 그을린 자국으로 더러웠다. 가스 레인지 위에 프라이 팬이 하나 있었는데 프라이팬도 언제 닦았는지 주변이 검게 그을려 있었고 그 위에 있는 볶음 김치는 언제 먹었는지 기름이 둥둥 떠 있었다. 바닥 장판은 노란색이었고 벽면으로 올라온 마감 부가 군데군데가 벽면에서 떨어져 말려 있었다. 그 안으로 갈라진 시멘트가 보이기도 했다. 집에 들어가며 가장 놀란 건 냄새였다. 어떤 묵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음식물 쓰레기 냄새나 청소 안된 화장실 냄새처럼 당장에 참기 힘든 정도는 아니었지만 집 전체에 원인 모를 악취가 풍겼다. 바닥의 먼지 냄새, 땀냄새, 화장실 냄새, 주방 하수구 냄새, 안 씻은 사람의 몸 냄새 등 여러 냄새가 합쳐진 것 같았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 그 집의 풍경이 또렷이 생각나는 건 어쩌면 그 냄새 때문이었다. 살면서 처음 맡아본 냄새였다. 영화 촬영 장의 슬레이트가 쳐지듯 냄새는 내 머릿속에 무언가를 건드렸고 그 때문에 집에 들어서면서부터의 화면이 내 머릿속에선 생생했다. 주방에서 옮겨진 시선은 거실(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 만큼 작았지만)로 향했고 그곳에는 한 남자가 분홍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내가 얼굴을 볼 수 없는 방향 쪽으로 남자는 웅크리고 있었다. 나와 내 친구가 들어갔지만 그는 놀라는 낌새도 없이, 아니 놀랐지만 그 놀란 게 별거냐 싶을 만큼 회의적인 말투로, '누구냐'라고 했다. 친구와 나는 주방을 지나다 그의 말소리를 듣고 잠시 멈췄고 멈춰 선 순간 프라이팬에서 올라오는 볶은 김치 냄새가 코를 스쳤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희원이라고 합니다. 박희원이요. 얘는 재균이고요. 아, 동수랑 같은 반인 친구입니다" 나는 말하면서 옆에 있는 친구에게 고개를 돌렸다. 문을 열 때만 해도 희주가 거리던 재균이도 입을 반만 벌린 채 멈추어 있었다.
"그러니까 여기 왜 왔냐고" 남자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말했다. 사실 잘 들여다봤지만 남자가 눈을 떴는지 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낮이었지만 지하여서 집은 어두웠고, 문 뒤로 들어오는 햇살에 그나마 사물을 구분할 정도는 되었다.
"동수가 오늘 학교에 안 왔어요. 그래서 찾으러 왔습니다"
"동수는 학교에 갔다" 남자는 목소리가 작았고, 천천히 말했지만, 단호했다.
"아...?"
"학교에 갔다고. 집에 없어"라고 말하며 남자는 누운 자세에서 상체를 들었다.
남자가 몸을 일으켜 우리를 쳐다본 순간 몸이 굳고, 숨이 막힌 듯 말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동수의 아빠(라고 추정되지만 아직도 그가 동수의 아빠였는지 아닌지 모른다)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의 오른쪽 눈에 눈동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오른쪽 눈은 흰자만이 가득했고 어떻게 보면 흰자도 아니고 아주 옅은 연두색처럼 보였다. 그게 무슨 색이든 중요한 건 검정 눈동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왼쪽 눈은 그러지 않았지만 광대와 코 안쪽으로 눈이 깊게 파여있었고 뼈 모양은 그랬지만 눈동자 자체는 바깥으로 쏟아질 듯 튀어나와 보였다. 머리는 미용실을 간지 오래된 듯 구레나룻이 사방으로 자라 있었고 머리를 감은지도 오래되어 보였다. 회색의 줄무늬 민소매 러닝은 탄성을 잃고 흘러 그의 마른 몸을 더욱 부각했다. 그가 소리를 친 것도 아니고, 화를 낸 것도 아니지만, 그 모습 자체로 나는 몸이 굳었다. 나와 함께 갔던 재균이는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뛰쳐나갔고, 나 역시 재균이를 따라갔다. 동수의 아빠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할 틈도 없었고 먼저 도망간 재균이를 원망할 사이도 없었다. 일단 뛰었고 그 뒤로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집에서 나온 후로의 기억은 또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확실한 건 재균이와 나는 그날 동수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에는 두 가지가 남았다. 그날 그 방에서 동수의 아버지를 보았던 장면, 그 방의 냄새, 모양가 한 가지였고 두 번째는 그곳을 나온 이후 내가 자꾸 선생님이 말했던 동수를 '잡아’ 오라고 했던 그 말을 곱씹었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왜 동수를 잡아오라고 했을까. 그냥 찾아오라는 것도 아니고, 동수를 잡아오라니, 잡아오라고 하지 않고 찾아오라고 했으면 나와 재균이의 행동이 달랐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어제 영준에게 전화를 받고, 어둠에게 맞았다는 그 녀석의 말이 자꾸 머리를 맴돌았다. 그리고 아침 출근길 강변북로 한강물에 비치는 아침 햇살을 보는데 불현듯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 동수의 아버지를 보았던 이미지, 그 지하방의 냄새, 불 꺼진 어두움, 애꾸눈이었던 아씨의 눈 빛, 그의 떡진 머리, 희망도 절망도 없는 것 같은 말투, 그런 것들이었다. 영준이가 맞았다는 사실과 동수의 무단결석, 이 두 가지 이미지가 서로 섞여 출근길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오늘은 건석이 부모님을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어제 통화 때문에 마음 같아서는 영준이가 입원한 병원에 가보고 싶었지만 이럴 때일수록 침착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3차로에서 운전하는 데 옆 차로에서 클랙슨이 한번 울리더니 내 차 앞에 검은색 세단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클랙슨을 두 번 세 번 다시 2차로로, 그리고 3차로로 칼치기를 했다. 기분이 나쁠 뻔했지만 클랙슨을 나에게만 울린 건 아니니 별 이상한 놈이네, 하고 말았다. 전방에는 마포대로가 보였고 한강물에 반사되는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셨다. 강변북로의 출근길은 늘 똑같지만 매번 새로웠고 오늘도 수많은 차가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