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현욱 Jan 08. 2022

비건 아스퍼거증후군 가정

활동가가 바라본 돌연변이 세상에서

나는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나는 나의 분석이 필요하다. 오늘같은 상황이 있을 때마다 나는 나를 분석하고 기록을해서 자료를 취합해 둘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자료가 쌓이면 나 같은 장애를 안고 가정을 이루고 살고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지않을까 생각해본다. [2021.12-2022.01 캐나다]




[서론]

4살 아이가 매트리스에 쉬를 했다. 자다가 깨서 “엄마, 이불에 쉬 했어.”라고 말하며 울상이다.
“일어나서 쉬하러 가고싶었는데 너무 급해서 참을 수가 없었어.” 아이가 정말 침착하게 자기 상황을 잘 설명해주었다.

아버지가 상황을 수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에게 “잘 말해주어서 고맙다”고 먼저 칭찬해주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상황에 대한 이해’와 ‘감사의 언어 사용’은 늘 그 상황이 끝난 뒤 한발짝 물러나 생각했을 때 떠오른다.

모든 상황이 끝난 지금, 나는 평정을 되찾았지만 이미 많은 비난의 말을 하였고, 화가 섞인 소리들을 쏟아낸 후 였다. (그래도 쉬 싼 게 아이의 잘못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있기 때문에, 아이에게 직접 화내며 뭐라고 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일 정도이다.)

‘비난의 언어’를 들은 아이는 슬퍼지고 자신감을 더 잃게 될 것이다. 게다가 비난의 언어 습관이 어느새 그에게 내재될 것이다.

굳이 아이가 듣는 앞에서 하지않아도 되는 말들을 내뱉었기 때문에 아내는 항상 나에게 “그만 좀 하라”고 한다. 맞다. 나는 그러면 안 된다. 하지만 아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 많이 거슬린다. 아이가 듣고있기 때문에 나는 존중받지 못한다고도 느낀다. 그러면 타겟이 갑자기 아내에게 돌아가 이번에는 직접 화내게 된다. 투덜거림이 공격성을 갖춘 언어로 바뀌는 것이다.

나는 아이와 아내에게 둘다 잘못했다. 간접적이건 직접적이건 상대방이 듣는 말에 화를 담을 것이 아니라, 수용과 포용의 언어로 말하며 마음을 보듬었어야한다. 아니 그게 잘 안되면 적어도 가만히라도 있어야한다.

나는 평정을 되찾은 후에 생각한다. ‘아, 내가 또 그랬구나.’ 안 그래야 한단 걸 알지만 안 그러겠다 다짐해도 또 그런 상황이 반복된다. 이런 지적을 많이 받았던 초기에는 ‘나는 원래 변화에 더딘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며,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 느꼈다. 안 그래도 나는 인생을 살면서 내가 변화하는데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고, 익숙치않은 무언가를 해내는데 각별한 노력과 길고 긴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옆에있는 사람에게는 그 “충분한”이라는 변화의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 글은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양육자가 구성원으로 있는 가정이 자체적으로 겪는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가이드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어쨌건 아스피(아스퍼거 증후군 사람들을 일컫는 말)인 당신이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면 그것으로 당신이 적극적으로 변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고 이제 그 여정이 시작될 것입니다.





[본문1]


나는 늘 계획대로 움직일 때 편안함을 느낀다. 시행착오를 기억하고 저장하면서 상황 대처 능력을 쌓게된다. 성장하면서 수많은 상황들을 학습했기 때문에 비자폐인과 같은 생활이 가능하다. 반복적인 업무에서는 오히려 남다른 대처 능력이 빛을 보이기도 한다.

내 머리 속에는 셀 수 없이 “수많은” 칸의 방이 존재한다. 계획을 “수많이” 세우고 그 많은 수의 예측 범위 내에서 상황이 일어나야 상황을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 완벽히 같은 조건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고, 일어난다 하더라도 학습한대로 완벽히 대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 머릿속에 저장했던 상황이라도 반복이 없으면 데이터가 사라지며,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케이스들을 어쨌든 한정적이다. 

새로운 환경이나 즉흥적인 무대에서는 항상 긴장감이 동반되고 부자연스럽다. ‘낯섦’ 앞에서는 누구나 어느정도 긴장하기 때문에 이게 특별한건 아니겠지만, 그 순간에 ‘자체적으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생각이 멈추고 천천히 반응하고 느리게 움직이게된다.

무슨 일이든지 하기위해서는 머릿속으로 늘 계획해야 한다. 해야할 일을 손가락으로 꼽아가며 순서를 정하고 데이터의 양이 많으면 필히 메모를 한다. 지금 이 글도 그런 메모들을 바탕으로 쓰여진 글이다.

나의 뇌는 연산 처리 능력이 방대하지 못한 컴퓨터와 같고, 동일한 궤도 위를 움직이고 있는 천체와 같다. 궤도 안에서는 한없이 편안하고 침착한 사람이다. 하지만 궤도에서 많이 벗어난 일이 갑자기 생기면 일시적으로 고장나게 된다. 연산 처리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나는 이것을 해결하기위해서 매우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런 스트레스 상황에서 누군가 함께있다면, 설령 도와주려고 하는 것이어도 나는 공격적인 사람으로 돌변한다. 아주 예민해지고, 투덜거림이 많아지고, 비난을 하기도 한다.

혼자서 문제를 수습해야 한다면 전혀 문제가 없다. 상황을 되돌리기위해 행동이 갑자기 빨라지는데 오히려 발빠른 대처가 돋보일 정도이다. 하지만 나의 정신은 일의 빠른 수습에만 집중되어 주변 사람의 마음을 돌보지 못한다. 나는 이 혼란의 상황에서 벗어나야만 내가 살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하게 발현되는 나의 공격성에 주변 사람들은 적잖이 당황한다. 당황만 하면 다행이지 진심으로 함께 몰입한 사람이라면 나의 행동에 상처를 입을 것이다. 이런 모습을보고 아스퍼거증후군을 알아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사자인 나도 이걸 아는데 37년 걸렸는데 누가 이걸 진단한다는 말인가?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상호 영향을 미치며 살아간다. 나는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느끼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문제가 노출되지 않는다. 늘 문제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 한국에서는 나이에따른 서열의 문화가 존재하고, 연장자가 연소자에게 뭐라고 하는 일이 일반적으로 발생한다. 연장자가 실수를 하거나 무례한 발언을 한다고해도 연소자는 지적하거나 문제시하지 않는다. 보통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그래서 다행인걸까? 그 덕분인지 나는 나보다 어린 사람과 있을 때 문제가 덜 발생했고, 나보다 어린 사람과 있을 때 편안해했다. 서열의 문화 덕분이었다. 반면에 나이 많은 사람과의 복잡한 일은 항상 너무 힘들었다. 서열의 문화 때문이었다. 서열이 동등한 동갑 친구 사이에서는 늘 싸우고 화해하는 것이 반복된다. 그러면서 오히려 찐친구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웃어른과의 대립만 피하면 별 문제가 없어보인다. 이것이 좋은 것일까? 30년을 한국에서 살았지만 나의 특별함을 알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사람들과 부딪히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나는 아내와 말다툼도하고 혼자 고뇌하기도 하다 어느날은 이런 결론을 내기도한다. ‘그럴때는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자’, ‘그냥 그 자리를 일단 피하자’. 어쩌면 이것이 어느 정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잠시 떨어져 있으면 감정이 누그러들기 때문이다. 

감정코칭에서는 ‘격한 감정을 가라앉히는 15초 호흡법’이라는 것이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평소보다 약간 느리고 깊게 호흡을 하면 심장이 안정적으로 뛰면서 일단 중립 상태로 될 수 있다. 이때 마음으로 감사함을 느끼면 안정 호르몬인 DHEA가 나온다.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최성애 ・ 존 가트맨 박사)>, 121) 

그러나 언제까지나 피하기만 하는 것은 적절한 대안일 수 없다.
정말로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어떡해야할까?




[본문2]


나는 기후활동가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미래의 변화와 적응의 말할 때, 기상 이변과 자연 재해를 겪었던 과거의 역사를 공부하고 기후 변동 과정에서 변화한 선조들의 생활 방식을 통해 우리의 대안을 찾는다. 나는 이같은 방법을 신뢰하고, 이것이 사람들에게 설득력있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는 실생활에서도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안 찾기를 선호한다. 

사회 생활을 하다가 대인관계에서 나의 공격성이 발현될 때는 주로 의견대립이 생겼을 때이다. 나는 계획대로 움직일 때 편안함을 느끼고, 나의 궤도에서 벗어난 일이라도 미리 예측해서 내 머리속에 준비해두었다면 침착할 수 있다. 그때문에 예측할 수 있었다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대립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나는 내가 대항하여야하는 외부 침입자로 인식한다. (*완전 다른 얘기일 수도 있지만, 외부침입자에 공격적으로 대항하는 본성이 생겨난 이유를 나는 내가 엄마와 아빠의 몸 속에서 세포로 발생할 때 부터 있었던 원론적인 문제 때문이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우리 면역체계는 외부세포나 항원을 발견하면 그 침입자를 파괴함으로써 병을 이겨내는데, 우리는 방어하기위해 공격자에 대한 거울이미지 단백질을 주형으로 만들어 놓고 다시 마주치면 주형을 이용해 침입자를 인식해서 파괴한다. 면역체계가 침입자에게 맞는 주형을 떠놓았지만 동물성 단백질은 때로는 우리 세포와 너무 똑같아 보인다. 이렇게되면 면역체계가 자신의 세포를 포함하여 그 주형에 맞는 모든 세포를 파괴해버린다. 이렇게 외부침입자 단백질과 신체 단백질을 구분하지못하는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자가면역질환이다. 원래 면역체계는 매우 섬세한 과정을 통해 어떤 단백질을 공격하고 어떤 것을 공격하지 않아야 할지 알고있다. 하지만 세상의 변화는 우리 신체가 감당하기 힘들정도로 급격히 빨라지고, 우리가 섭취하는 우리 종과 흡사한 종류의 동물성 단백질과 가공의 물질, 수많은 유전자 조작 물질, 다양한 약물과 환경오염 물질이 급격히 많아지고 있는데, 그로부터 자기세포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 빈번해진다. 돌연 변이되고 유전되기도 한다. 자폐는 뇌에 일어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세포였던 시절부터 체구가 아주 작았던 영유아 시절 때까지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절대 혼자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런 와중에도 외부침입자가 발생하면 죽지않기위해 필사적으로 싸워야했다. 싸우면서 자기 세포를 죽이는 자살 시도도 일어난다. 누구도 의도치 않았던 것이겠지만 인간세계는 자연세계에서 너무 멀리 벗어났고 스스로 만들어낸 위기를 인식못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만들어 낸 아주 크고 또는 아주 작은 위기들로부터 인류 절멸의 길을 걷고있다. 그것을 멈추려면 시스템을 바꿔야하고 먹어야하는 것을 먹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원치않게 외부세포가 많이 주입되었던 그 경험때문에 나는 나를 스스로를 살리기위해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외부 침입자로 규정하고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본성을 갖게된 거라 억측해본다.(*<무엇을 먹을 것인가(콜린 캠벨)> 참고))

의견 대립이 생겨도 내가 전문분야라고 생각하는 분야에서는 적극적으로 논리를 주장하고 오히려 토론을 즐기는 사람이 되기도한다. 반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아무 말을 못하며, 내 관심분야이지만 상대적으로 아는 것이 부족하면 큰 스트레스를 받고 내면이 갈등으로 요동치게 된다. 그래서 나는 한가지 분야가 정해지면 그것만 많이 파고드는 성향이 생겼다. 내가 그것을 나에게 저장하여야 나는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전문가 기질이 생긴다는게 크게 장점이 될 수 있지만 비전문적 영역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한국의 사회 생활에서 후배들과 대체로 크게 문제가 없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내가 선배라서 후배에게 주로 알려주는 입장에 놓이게 되고, 내가 상대적인 전문가의 위치에 놓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 문화의 특성상 후배가 선배 의견에 큰 이견이나 반발을 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후배이고 선배가 나에게 부당하게 대하면 나는 큰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게 된다. 오히려 나이와 계급의 차이없이 “동등한” 위치라고 생각하면 나는 거침없이 나의 의견을 피력하고 그 자리를 토론장을 만들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와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말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나는 고장나고 만다. 갑자기 동분서주하고 우왕좌왕하며 불안에 몸서리친다. 상대방은 나의 부족하고 어설프고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고 더 심한 윽박을 지르기도한다. 나는 자괴감과 우울감에 한없이 깊이 빠지고, 복구되는데 물리적인 시간이 요구된다.

그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좋지않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스스로 많은 고민을 해왔다. 사실 결혼하기 전에는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또 내가 남들과 좀 다르다는 것을 크게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나의 독특함이 장점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과거를 되돌아보면 나는 초등학교 시절 말이 없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이전 시기는 거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마 아주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아이였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 나는 수업시간에 절대로 발표를 하지 않았다. 선생님의 지목으로 일어서게 되어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선택적 함구증”이다. 집에서는 말을 잘 했지만, 학교에서 말이 없었다. 반에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아이 정도로 여겨졌다. 그 이유때문에 종종 나쁜 아이들의 타겟이되어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다행인 것은 친한 몇 명의 친구들과는 말을 했다. 아이들과 뛰어놀기도 잘 놀았다. 그래서 아스퍼거증후군을 더 발견하기 어려웠을지도. 중학교 시절에는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학교에서는 입에 욕을 달고 살았다. 불안의 유일한 탈출 방법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변화하려고 굉장히 많이 노력했다. 그 시기에 사귀게된 여자친구 덕분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아주 힘들어했는데, 모두가 배제되고 1:1로 말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괜찮았다. (그런 성향은 아직까지 남아있지만 어린시절만큼 심하지는 않고, 오히려 전문 분야와 준비된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 앞이라도 적극적으로 말을 하기도 한다.)

나에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있느냐고 물어봐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는 나에게 나의 기분과 지금 느끼는 감정을 쏟아낼 수 있게 이끌어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것을 물어봐주길 항상 바랐었다. 그렇게 4년을 사귀었다. (강제적인) 한국 스타일 학업으로 바쁜 고등학교 시절, 나이도 다르고 학교도 다르기때문에 일주일에 한번, 이주일에 한번 만나는 게 고작이었고, 때로는 연락을 일주일에 한번 밖에 하지 않았어도, 그는 내게 큰 버팀목이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이었다. 혼자서는 갈 방법도 몰랐던 구립 도서관에 버스까지 타가며 함께 가기도하고, 책을 읽고 독후감상문을 써서 나누기도 했다. 목소리를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해서 전하기도 했고, 교환일기를 나누면서 생각을 글로 표현하기도 했다. 손도 안 잡았지만 나란히 걸으며 고요를 나누었다. 내가 아는 분야는 대중음악과 학교미술 분야가 전부였는데, 그 시절에 나는 책을 알게되고 시를 알게되고 자연을 알게 되고 꽃을 알게되었고, 그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들어주었다.

어쨌든 이런 계기와 노력이 쌓여 드디어 국어시간에 지문을 소리내어 읽는 것에 자신감이 생겼다. 고3때는 비록 책을 읽는 것이지만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합창단으로 활동하며 사람들 앞에 노래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내가 스스로 변화하고싶었던 의지를 보여준 활동이었다.

대학을 가면서 나는 180도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한국의 초중고등 주입식 교육시스템은 내가 원치 않는 것이었다. 그곳에 갇혀서 원하지 않는 국영수 위주의 공부만 하다가 자유의지에 의해 자발적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대학이라는 공간에 왔다는 것이 나를 다르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도형이나 건축같은 공간적인 미술을 좋아해서 뷰티코디네이션과의 실습위주의 수업이 좋았고, 수업이외에 시간에는 밴드활동을 하면서 실전 음악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파고들 수 있게 되었고 준비한 것을 무대에서 사람들 앞에 보여주는데 희열을 느꼈다. 초등시절 생기부에 나는 “내성적인”으로 기록 되었다. 그렇게 내향적이던 사람이 무대 체질이었을 줄 누가 알았겠나? 그 시절의 경험들은 이후의 나를 ‘정상적인’ 대열에 올려놓아 주었으며, 나의 독특한 사회 경험들은 나의 장애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게 하였다. 겉으로만 본다면 치료된 것과 다름없었다. 사실 지금 시대에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를 논할 수가 있을까? 그 정도로 세상은 많이 달라졌고, 왜 인지도 모르고 비슷한 아픔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사실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들 앞에 나를 보여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의 시스템에의해 억압받느냐 방임되느냐에 따라 나의 발현되는 가치가 다르다. 모든 제한이 없이 나를 내버려둔다면 나는 지극히 외향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세상이 나를 축소시키려 할 때 나는 그것을 깨부시지 못하고 그 축소 안에서만 나를 발현하려고 한다. 나를 틀 안에 가둔 그것은 부조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은 그것을 깨부시기위해 내가 힘을 키워야한다는 것을 알았고 연대해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치에 맞지 않는 세상의 흐름이 당신을 그 속에 가두었기때문에 당신은 그 세상 안에서 힘들어하고 있다. 방치한다면 더욱 말이 안되는 위기에 처하고 절멸을 가져올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바꾸어야한다.

요즘 MBTI E냐 I냐를 가지고 외향, 내향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롯이 나를 들여다본다면 나는 분명한 외향인데 반해 아스퍼거증후군이 나를 자꾸 내향으로 가두려고한다는 걸 확실히 느끼고 있다. 학창시절의 가장 억압적이었던 순간을 벗어나면서 나는 많이 변화하였고 계속 깨뜨리려고 발악하고 있다. ‘반항적’ 인간(l'homme révolté)으로 살아가야 내가 존재한다.




[본문3]


나는 살아오면서 수도없이 마인드 컨트롤을 해왔다. 그게 생존 방식이다. 대학 이후, 사회에서 분장사로 4년간 일했다. 분장을 전공했지만 뷰티코디네이션과에서 배운 나의 분장 기술은 실전에서 한없이 부족했다. 나는 일하면서 4년제 학교에 입학했다고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하였고, 그로인해 버틸 수 있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학교를 다니는데 학비를 내는게 아니라 오히려 급여를 받으며 일을 하고 있다 생각했다. 또 너무 많은 시간을 일함으로써 나는 내 기술을 더 쌓고 있고 인생을 배우고 있다 생각했다. 이게 바로 강인한 정신력 아닌가! 말이 안되는 노동시간과 봉급이 바로 부조리인데, 그때는 스스로를 제어하지 않았다면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동료로부터 밴쿠버 필름스쿨을 알게 된 후, 나는 분장 공부를 더 하고싶었다. 그때부터 영어공부를 틈틈히 하면서 유학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이만하면 떠날 때가 되었다 싶은 시기에 사퇴 의사를 제출했다. 그 비싼 학교에 들어가려면 돈이 더 필요한데 아무리 열정으로 일했어도 쥐꼬리 봉급의 몇배는 더 받아야했다. 그때 내가 생각한 건 군 전역 이후 4개월간 해보았던 야간 택배물류창고 작업. 내가 생각해낸 가장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군 전역 때와는 몸 자체가 달랐다. 힘에 부쳤다. 1달만에 그만두고 흔히들 텔레마케터라고 알고있는 콜센터 상담사로 1년반을 일했다. 유학 자금을 모으는 것이 단하나의 목표였기때문에 그거하나로 열심히 버텼다. 생각보다 시간이 길어졌지만 워킹홀리데이를 가야하는 시기가 되어 정리하고 한국을 떠났다. 대학생활과 사회생활에서 나는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서 끝없이 나를 발견했다. 




사회에서도 나는 여전히 3인 이상 모인 자리에서 입을 거의 열지 않았고, 2인석에서도 가치관이 맞지 않으면 거의 듣기만하는 입장이었다. 덕분에 나는 남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될 수 있었고, 진심으로 함께 걱정해주는 친구로 인식되어 고민을 쉽게 털어놓는 친구도 많았다. 나와 잘 맞는 친구와는 서스름 없이 말을 했으니 누가 나를 자폐스펙트럼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나조차도 몰랐다.

사회생활에 아스퍼거증후군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학창시절에 그것을 발견했더라도 노력에따라 사회로 나가면서 이겨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가정을 이루고나서는 새로운 문제들이 인식된다. 아스피들은 굉장히 가정적인 편이라서 겉으로 보기엔 한없이 좋은 아빠이자 엄마이자 배우자이다. 그러나 각기 다른 성격의 주체들이 한 공간안에서 지속적으로 상호 작용할 때 스트레스 상황에 더 자주 돌입하게 된다. 

정상인의 눈으로 보았을 때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상황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가정 생활은 파국으로 치닫을 것이다. 인식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당사자 자신도 자신의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기때문에 상대방이 그것을 인식하고 도와주길 바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상대방이 오히려 도움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떻게든 제3자의 도움을 받으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수도 있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발생하는지 당사자는 본질적인 문제를 파헤쳐가며 탐구하고 따져볼 것이다. 상대방은 그런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독특한 배우자를 보며 난해함을 감추지 못한다. 급기야 싸움이 커지면 고장난다. 
  
‘내가 정상이고 네가 비정상이야’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절대로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 다름을 인정해야 존재할 수 있다. “보는 견해가 많이 다를 뿐이야. 다양성을 인정하자.” - 이건 내가 갖는 마인드 컨트롤이다. 상대방도 이런 생각을 가져주면 좋겠지만 말이 쉽지 이렇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상호 노력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아스피는 많은 경험을 통해 그 경험들을 나에게 저장함으로써 수용범위를 넓혀간다.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래서 새로운 문제가 새로 닥칠때마다 어려움을 겪는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사회에서는 괜찮았다. 사례들이 내게 저장되어 내 궤도가 구축되면 오히려 업무능력에 빛을 발한다. 배우자와의 둘 사이에서도 괜찮다. 상대방의 인지와 노력이 필요하지만 ‘초기의 잦은 충돌’이라는 라인만 잘 넘어서면 이후에 방법을 찾고 존재할 수 있다.

(파국을 모면하면) 부부는 어쨌든 이것을 수용하고 공존방법을 찾겠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특히 아스퍼거를 아직도 알아채지 못했다면) 아이들에게 공격성을 보일 것이므로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자신이 아스피인 것을 알고있다면 방법이 있지만!) 아이들은 예측가능하게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자라면서 필연적으로 새로운 대립이 계속 일어나게된다. 

나는 아이에게 많이 뭐라했고, 그것으로 인해 늘 부부싸움이 시작되었다. 절실히 개선을 원하는 우리는 우리의 어린시절부터 짚어가며 정말 많은 얘기들을 했다. 나는 지금은 내가 아스피인 것을 안다. 그렇기때문에 정말 많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내 마음대로 제어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미숙하므로 실수를 연발하기 마련이다. 남이 하는 실수 중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실수는 매번 다른 케이스로 나에게 다가온다. 심각한 스트레스 상황에 돌입하지 않기위해 많은 노력을 하지만 어느새 내 몸은 스스로 제어를 넘어서서 비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그런 상황이 있은 후 상대에게 상처준 부분에 대한 사과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 사과가 있기에 앞서 상대방의 기분을 확인해주고 감정을 공감해주어야한다. 그리고 내가 무엇때문에 그런 언행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좋다. 과거에 부모로부터 같은 것을 느꼈던 나의 어린시절을 고백해도 좋다. 이것을 “초감정”이라고 한다. 이 상대방이 아이라면 매 케이스 적극적으로 이 과정을 이행하라.

양육자는 자신의 초감정을 인식해야하고, 아이를 탓하거나 고치라고 하기보다 ‘나~전달법’의 3단계 방식으로 전달한다면 아이가 감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① 먼저 상황에 대해 중립적으로 말한 뒤, ② 그때의 감정을 묘사하고, ③ 원하는 바를 요청한다. 이를 테면, “아빠는 어릴 때 할아버지가 큰소리로 화내실 때(상황) 참 무섭고 싫었거든(감정). 그래서 큰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나고 감정이 격해진단다(감정). 그러니 아빠한테 말할 때 좀더 부드럽고 차분하게 말해 주면 좋겠다(요청).”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최성애 ・ 존 가트맨 박사)>, 104) 

아이들과 배우자가 아스퍼거증후군에 대해서 알고 공유해야하며 특수성을 이해하고 서로 도와야한다. 그러면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아이들이 너무 어리다면 이해가 어려울 수 있으므로 아이의 슬픈마음을 공감해주고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감정이 있고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려야한다. 마음아픔을 안겨준 것에 대해서 먼저 사과도 필요하다.




[본문4]


앞서 나는 사회생활에서 마인드컨트롤을 해가며, 버젓이 존재하는 부조리에서 충돌하지 않고 “이겨낸” 생존방식을 언급했다. 분장사로 일 할 때는 정말 수도 없이 ‘나는 현장이라는 4년제 학교에서 오히려 돈을 받고 배우고 있으며 실전 실습으로 기술을 벌고 있다’고 스스로 주문을 외워왔다. 유학을 결심하고 다른 일을 했을 때도 유학자금을 조금 더 모으는 단기적인 목표를 이행하기위한 일일 뿐이므로 힘들지만 곧 끝날 것이라 주문을 외며 버텨왔다. 그런 일은 내가 어리고 힘이 없던 시절, 거기서 끝났다. 지금도 힘이 없는 건 여전하지만 이 부조리한 세상을 어떻게 깨부셔야 할지 어렴풋하게라도 인식하고 있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존재하며 세상을 바꾸기위해 혁명을 꾀하는 그들과 온라인 상에서 연대함으로써 힘을 낼 수 있다.

예전엔 그렇게 해서라도 배우는게 있고 유학 갈 생각이라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들에겐 없다. 지금의 노동자들에게도 희망은 없다. 생존하기위해, 비주류의 생명들이 동등하게 권력을 나눠 가지는 세상을 만들기위해 투쟁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고 그것이 미래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비주류 속에서 미약하게나마 권력아닌 권력을 쥐었던 시기들이 있었다. 그리고 상부에서 만드는 필연적 스트레스의 상황에 처해지면 나는 나보다 더 약한 자들을 들볶았다. 평소에는 친구같은 동료였고, 선임으로서 후임에게 필요한 것들을 알려주었지만, 시스템은 때에 따라 내가 격해지고 나빠지도록 만들었다. 그 시절 내가 아무리 작게라도 아픔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아직도 빚을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사과하는 마음을 가지며 앞으로 약자에게 힘을 과시하지 않고 권리를 찾아주며 살아가는 것이 내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부조리의 시스템 속 비주류의 당사자가 되면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 상황에 처한다. 유학 후 한 대형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할 때는 무서운 매니저에게 매일같이 혼나기 일쑤였다. 군대에서도 그랬다. 후임병일때 매일같이 고참으로부터의 언어폭력이 있었다. 하루이틀이면 괜찮지만 눈만뜨면 몰아세우는데, 급기야 그것은 나를 ‘나는 못난 사람이고 제대로 할 줄 아는게 없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에 스스로 빠지게 만들었다. 심각해진 군대 우울증은 급기야 극단적인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게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그 일이 옆 소대에서 나보다 앞서 터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그런데 무서운 것은 식당에서 일할 때 과도한 업무로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내가 연차가 있는 알바생의 선임 위치에 있었을 때 동료 후임 알바생에게 화를 냈다. 한국사회에서 흔히 있는 일이고, 그 당시 나는 ‘일적으로 화를 내는 것은 사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기때문에 괜찮다고’까지 생각했다.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공과 사는 분명히 해야하지만 내가 남에게 화를 내는 것은 공사와 전혀 상관없는 것 아닌가! 지나고나면 많이 배우지만 나는 만연한 부조리 속에 스며들어 무엇이 옳은지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수준에 처해 있었다. 다시한번 나는 마음의 짐을 가지며 내가 내 마음 내키는대로 권력 행사했던 이들에게 깊고깊은 사과를 표한다.

반면에 나는 나를 일할 수 있게하고 한국의 최저시급에 비하면 나쁘지 않은 급여를 빼먹지 않고 준 사장 내외에게 복종하고 있었다. 과도한 노동도, 실수에서 비롯된 굴욕도, 나는 금전적 보상을 받고 있다 생각하며 이겨낼 수 있었다. 어느 직장에 가든 초반에는 매우 미숙하고 어설프다. 나는 수많은 실수를 통해서 나의 궤도가 구축되기 전까지는 비슷하지만 다른 실수를 아주 많이 일으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하길 기다려주었으니 감사하기까지 했다.

나는 과도한 업무로 고장난 적이 한 번 있었다. 사장 가족이 여행으로 장기간 자리를 비워야해서 내가 얼마간 전체 관리와 요리를 함께 맡으며 최고 위치를 지켜내야하는 상황이었는데, 좌석 수가 많은 식당이다보니 피크 시간대에 늘어나는 오더량에 내가 집어삼켜져버린 것이다. 나는 폭발해버렸고 들고있던 국자를 던져버리고 그냥 사라졌다.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집이 코앞이었기 때문에 무작정 집으로 갔다. 다른 직원들의 전화도 안 받았다. 식당은 비상이었다. 저녁시간 전까지 자체 휴업을 했고 다시 복귀하긴 했지만, 나는 약속된 기간만큼만 일하고 사장 가족이 복귀하기도 전에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제어불가의 상황에 처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아스퍼거증후군은 아주 특수직종을 제외하고는 일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특수직종을 언급하기위해 뇌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나의 뇌는 특별하다. 소뇌는 운동 협응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데 나는 일반인보다 소뇌가 작다. 그래서인지 스포츠를 즐기지 못하고 구기종목은 완전 엉망이다. 뇌 여러 영역 사이를 잇는 백색섬유다발은 시각 기억을 간섭하는데, 나는 그것이 과잉연결 되어 있다. 그 때문인지 다른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모든 걸 그림으로 생각한다. 아내가 그냥 민트색에 동물 그림이 있는 아이 옷을 가져오라고 시키면 나는 도대체 무엇인지 몰라서 오래 헤매거나 여러번 되묻게된다. 나는 무늬나 그림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달라고 주문하지만 아내는 너무 상세하게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기를 바란다. 나는 왼쪽 뇌실이 오른쪽보다 길다. 작업 기억과 상관이 있는 두정엽 피질까지 왼쪽 뇌실이 뻗어있어 그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나는 항상 모든 것을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고, 정확한 작업을 위해서 메모를 항상 확인한다. 그러나 과도하게 메모하는 것처럼 보이는 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큰 숫자를 힘들어하기 때문에 자산관리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돈관리는 아내가 하는 편이다. 

자폐증은 마음이 아니라 뇌의 문제다. 나는 뇌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것을 아는 이유는 <나의 뇌는 특별하다>의 작가 ‘템플 그랜딘’이 말하는 특징이 놀랍도록 나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와의 공통점을 통해서 나는 충분히 나를 유추할 수 있다. 자폐 스펙트럼을 연구하면서 나는 이것이 어린시절 뇌에서 일어난 자가면역질환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자가면역질환은 알려진 것 만해도 백가지가 넘으며 신체 여러부위에서 일어날 수 있다. 발병위치에 따라 피부에서 일어나면 아토피나 건선, 폐에서 일어나면 천식, 혈액에서 일어나면 백혈병 등으로 나타난다. 비염, 갑상선염, 류마티스 관절염, 궤양성 대장염, 1형 당뇨, 섬유근육통 등도 모두 자가면역질환이다. 

비건Vegan의 건강적 측면을 연구해 본 사람이라면 동물성식품과 가공식품을 끊고 자연식물식을 하는 것 만으로도 자가면역질환이 호전됨을 알고있을 것이다. 그리고 백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연구해 본 사람이라면 작은 체구의 영유아기에 맞은 백신이 자폐스펙트럼과 크고작은 다양한 자가면역질환을 유발함을 알고있을 것이다. 백신 자체는 인류에게 긍정적이지만, 대량생산 체제 속에서 생산되는 백신은 그 유통과 보존을 위해 미량의 중금속 함유를 허용하기때문에 개인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다. 신체가 수용할 수 있는 능력에 개인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리스크를 떠안고 접종받아야하지만 제약회사에서 알려주는 성분 정보는 제한적이다. 또한, 백신은 대량생산 할 때 오염도를 확인하기위해 투구게의 피를 사용하는데 윤리적인 문제까지 떠안고 있다. 매년 50만 마리가 의학용으로 채혈되며, 최근 그 개체수가 급감하고 있다. 인류를 더 많이 살리는데 기여 한다고 하지만, 동물 착취는 명백하게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이며, 자연에게 인간이 권력을 휘두르는 행위이다. 게다가 인류를 더 많이 살리는 약이 병든 인구를 더 많이 양산하는 기능을 한다면, 아픈 사람이 늘어날테니 약을 파는 제약회사에게만 이득인 것 아닌가? 돈이 곧 권력이고 돈이 신(神)격화되는 자본 위주의 세상에서 더 큰 돈을 만들기위해 비윤리적 행위까지도 용인되는 세상이다. 백신 대량생산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자본(곧, 권력)을 위한 것이다. 이런식이라면 비윤리성이 인간에게까지 용인되고 있지 않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글을 쓰면서도 느끼지만 나의 말은 이야기할 때 주제에서 벗어났다가 되돌아오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들 받는다. 다루는 영역의 범위에 제한이 없고 탄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개 중간에 자꾸 삼천포로 빠졌다가 되돌아오는 것 같은 복잡한 문장구조를 가진다. 긴 글을 쓸 때 늘 이렇게 썼고 말을 할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내는 연애 초기에 대화를 할 때 내가 자꾸 다른 화제의 이야기를 산발적으로 꺼내서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각각의 이야기들이 연관성은 없지만 재미있게 느껴졌다고 했다. 재밌었다니 그래도 다행이다. 나는 연관적으로 이야기 했다고 생각했는데 범위가 일반적이지 않다면 당연히 비연관적으로 보일 것이다. 

상대방이 처음부터 개괄적으로 파고들기는 어렵기때문에 그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연관성을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일 것이고, 부연 설명 없이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상대방이 오해하지 않게 하기위해서 의도와 동일하게 말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데 가끔은 말한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을 때 내가 생각해보아도 듣는 입장에서 오해할 수 있겠다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나도 처음부터 상대방의 이해를 염두에 두고 말하지는 못하기때문에 그저 상세하게 말하려고 노력한다. 주로 결론되는 것을 먼저 화두에 던져놓고 세밀하게 묘사하는 편이다. 순차적으로 얘기해야하는 경우에는 1번부터 순서대로 다 말해야하기 때문에 결론을 말할 때까지 말이 빨라진다.




[본문5]


앞에 언급한 바와 같이 아이들은 예측가능하게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아스피는 아이들과 필연적으로 새로운 대립이 계속 일어날 수 밖에 없고, 아이들에게 공격적으로 대하는 일이 잦아진다. 그렇다면 그 때문에 아이를 키우지 않아야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않아야할까? 그렇지않다. 여기 아스피들이 육아를 잘 하기위해서 필요한 것을 3가지로 정리해보았다. 

1. 규칙과 허용범위
아스피는 굉장히 성실하고 가정적이고 가사노동에 협조적이지만 대개 아이들에게 엄격한 편이기도 하다. 엄격해지는 이유는 그들이 규칙에서 어긋난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아스피에게 규칙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규칙대로 안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있다. 나 자신조차도 규칙대로 못하는 경우가 있기때문에 남의 실수를 인정하고, 세상에는 나를 비롯하여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기때문에 다른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해 주어야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규칙을 정확히 따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수용한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 그가 의도한 것인가 의도치 않은 실수인가를 파악하여, 고의가 아니라 실수라 판단하면 더 너그러워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의 오류는 자체판단에 의한 것이라서 정확치 않다는 것이다. 사실 규칙을 일부러 깨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하지만 재빨리 이런 것까지 생각해내긴 어렵다. 내가 뭐라고 다른 사람의 선한 의도와 악한 의도까지 파악하고 규정할 권리를 갖고있을까 싶기도하지만…, 어쨌든 이런 규칙이 확립된다면 규칙에서 어긋난 경우라도 어느정도 화를 잠재울 수 있다.

특히나 아이들에게는 규칙 이탈의 허용범위를 넓히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을 위해서는 정보수집과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아스피는 관심분야를 적극적으로 파고드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육아가 관심분야가 되면 연령대에 따른 육아 방법과 특성을 파악해서 규칙 이탈의 허용범위를 충분히 넓힐 수 있다. 또한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기때문에 계속 부딪히며 경험의 케이스를 늘릴 필요가 있다. 아이도 사람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기때문에 처음에는 화를 내는 일이 있겠지만 그로부터 그 사람의 특징을 파악하여 성향에 맞게 상황을 대처할 수 있다. 

연령대에 따른 육아에 대해서 예를 들어보면 이런 것들이 있다. 3세 이전의 아이에게는 절대 훈육을 하지 않아야 한다. 0~3세는 양육자와 애착이 형성되는 시기로 조건없는 사랑이 필요하다. 분리불안이 수시로 있을 것이고, 자주 안아주고 사랑을 표현해주어야 한다. 

또 첫째를 키워보면 둘째 아이는 대략 언제부터 걸을지, 언제 이가 날지, 언제부터 말을 할지, 언제 아플 것이고 무슨 조치를 해야할지 까지 대략 감이 온다. 물론 매뉴얼적으로 알기만하는 것은 도움되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여야하고 어버이로서의 직감을 신뢰해야한다.

아스퍼거증후군이 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아이와 눈을 계속 마주치며 대화하는 것이다. 이건 거의 불가능하지만 불편해도 의도적으로 약간은 노력할 수 있다. 또 공감해주는 능력도 부족하지만 ‘감정코칭’에 대해서 공부하고 실생활에 적용하려 노력한다면 감정코칭의 매뉴얼에 따라서 대화로써 아이의 감정도 공감해줄 수 있다. 또 표정이 다양하지 못할지라도 무표정한 얼굴보다는 최소한 아이에게나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는 의도적으로 미소를 짓고 있으려 노력하면 좋다. 이건 캐나다에서 살면서 놀이터에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수많은 엄마들의 표정을 보고 한 수 배운 것이다. 그 어머니들의 표정은 아이에게 또는 주변에 마주치는 사람에게 항상 미소를 띄고 있었다. (한편 아버지들, 영감님들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백인 남성 아버지들은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는 일이 드물었다. 백인 남성의 우월주의와 관계된 행동으로 보인다.) 웃는 표정은 경계를 풀 수 있게 하고 다가가기 쉽게 만든다. 그 때문에 더욱 나의 표정과 성격을 그대로 보고 배워갈 아이들을 위해 웃는 얼굴을 의도적으로 보일 필요가 있다. (권위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노력은 필요하다.)

2. 자기주도적 육아
이런 것들이 아스피가 가지는 관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하는 방법들이 될 수 있는데, 이것은 적극적인 양육의 주도자가 되면 저절로 가능할 수 있다. 자기주도적인 육아가 중요하다. 그러니까 내가 주양육자가 되어야한다는 소리다.

가부장적 가족제도에서는 주로 여성이 직접적인 양육을 책임진다. 여성이 육아를 주도하거나 전담하기 때문에 아스피 어머니는 자기주도적으로 육아 분야를 파헤치면서 방법을 찾아가서 상대적으로 문제가 적게 발생한다. 하지만 남성은 주로 육아에 소극적 참여 또는 비협조적 참여를 하기때문에 이스피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실수를 용납 못하고 윽박지르거나 과도하게 엄하게 대하는 잘못을 자주 저지른다. 또한 이로인해 부부싸움이 증가한다.

아스피 아버지가 육아를 혹시 전담하더라도 본인이 주도적으로 연구하여 전문분야로 만들고 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관심을 가질 수 있게 아내와의 지속적인 대화와 정보 교환이 필요한데, 그것이 돌봄노동의 전문화를 고취시킨다.(고취시킬 수 있는 다른 요인도 있는데 그것은 돌봄노동의 가치 향상이다.)

아스피 아버지가 주양육자라도, 아내와 함께 있을 때 아내의 육아에 대한 간섭이 크면 갑자기 고장나기도 한다. 육아를 자기주도적으로 해야한다는 말은 바로 이것이다. 아이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부부 상호간에 지적이 있으면 안된다. 주양육자의 양육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보조양육자가 주양육자에게 직접적으로 잘못을 언급하거나 즉시 정정을 요구하는 것은 주양육자를 존중하지 못하는 방식이고, 주양육자는 간섭을 일으킨 보조양육자를 부조리속 시스템에서 혼내는 선임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기게되어 또다른 스트레스 상황에 처한다. 여기서 아이의 잘못으로 불거진 사건의 불똥이 부부사이의 싸움으로 옮겨지게 되는데, 의견 차이를 논리적으로 말할 기회를 갖지 못하면 역시 고장나고 만다. 의견대립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공격성을 갖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상황에서는 상황이 종료되기 전까지 보조양육자는 주양육자에게 조언을 비롯한 의사 전달을 삼가고, 대신 아이에게 도와주거나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첨언을 해줌으로써 주양육자의 결정을 존중하고 주도권을 유지하게 해야한다. 아이와 관련하여 부부가 나누어야 할 대화는 나중에 아이가 없는 자리에서 따로 상의하도록 한다.

3. 가사/돌봄 노동 종사자의 노동 가치 향상 
이것은 내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바뀌어야 하는 문제이다. 여성의 ‘사람을 만드는 일’은 가장 기본적인 생명 활동이고, ‘양육’은 사회적 재생산 노동이다. 사회에 새로운 노동력의 투입하게 하는 가사노동, 돌봄노동이라는 재생산 노동은 인류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이것을 남성위주의 권력구조에 따라 이윤을 창출하는 생산 노동과 철저히 분리 시켰다. 이에따라 가사‧돌봄은 대부분 무급노동이며, 가부장제 사회에서 대부분 여성에게 과도하게 업무가 과중된다.

가사‧돌봄 노동은 그 가치를 인정받고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한다. 자본주의적 성장이 만들어내는 불평등과 기후위기를 해결하기위해 ‘가사‧돌봄 사회화’는 반드시 필요한 운동이다.

나는 과거 저임금의 과도한 노동 속에서도 현장에서 기술을 배우는 중이기 때문에 4년제 실전 학교를 돈받고 다니고 있는 것과 같다고 마인드 컨트롤 해가며 버텼다. 식당에서 과중한 노동과 굴욕이 있어도 다른 알바보다는 금전적 보상을 받고 있으니 좋다고 주문을 외워가며 청년 시절을 버틴 경험이 있었다. 부조리를 어렴풋이 인식했지만 세상을 바꾸기에는 어리고 힘이 없었다. 혼자서는 높은 천장을 깨부실 수 없다. 그래도 지금은 권력으로 기울어진 세상을 인식할 수 있고 세상을 바꾸기위해 소외되고 배제된 이들과 연대하여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벗어나, 비주류의 존재들이 모두 동등하게 권력을 나누어 가지는 세상을 만들기위해 우리는 투쟁해야한다. 

우리는 가사‧돌봄 노동의 가치를 바로 인식해야하고, 종사자들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으며 노동자로서 인정받아야 한다. 그것이 근본적으로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이고,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잘못을 대물림 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깨어 변화를 만들어내야 미래 아이들의 권리를 보장해 줄 수 있다. 생태계에 있는 모든 우리는 모두 가치있는 존재로 인정받고 서로를 돌보며 사랑으로 공존해야 한다.

그렇게 사회적 재생산 노동의 가치 향상으로 가사돌봄노동의 전문화를 고취시킬 수 있다. 




[마무리]

공격성을 자주 말하지만 나는 대체로 평화주의자다. 공격성은 나에게 위협이 가해졌을 때만 발현된다. 나의 궤도를 이탈하는 문제는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수용 가능한 문제로 인식되면 세상 가장 평화롭다.

개별 대상의 특수성을 인식한다면 나는 모든 대상의 (특히 아이들의) 규칙이탈의 허용 범위를 넓힐 수 있고 연습을 통해서 수용할 수 있다. 다만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다.

의견대립이 있을 때는 나는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한다. 다만 그것을 부드럽게 진행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얼마전부터 아이들과 함께하고있는 ‘화내지 않기 게임’이 큰 도움이 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먼저 화를 내는 사람이 지는 놀이이다. 그러니까 말을 할 때 부드럽게 하게되고, 아이가 먼저 화를 내더라도 놀이를 하고 있기때문에 심각해지지 않을 수 있다.

아내와는 평소에도 엄청나게 많은 대화를 한다. 나의 공격성이 발현되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배우자에게도 어떤 상황이 스트레스로 다가오는지를 파악해야한다.(파악하는데는 자기성찰을 하는 아내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한다. 물건이 적으니까 청소가 쉽고 집안에 여백이 많고 시각적으로도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우리는 경제적 생산 활동을 최소화한다. 돈을 꼭 필요한 만큼만 벌고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들과 함께 보낸다. 재생산노동이 세상에 가장 중요한 노동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과 가까워지려 노력하고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공간은 피하려고하고 시끄러운 목소리나 소음보다 자연스러운 소리들을 들으려고한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식물식을 지향한다. 내 몸에도 미니멀리즘을 적용하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속이 편안하고 잠재되어있는 뇌가 활성화되고 좋은 생각들을 가질 수 있고 쓰레기를 확연히 줄일 수 있고 설거지하기 너무 쉽다.

결혼하기 전, 한때는 ‘웬만해선 스트레스 받지않는 사람이 되자’ 가 내 철학이었다. 사회에서 나는 상황을 피함으로써 내 스스로 대립을 조절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정을 갖게되면서 더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아주 많은 상황이 스트레스로 다가왔고 배우자에게도 그것이 주어지게 했다. 문제의 해결을 위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기때문에 아내와 나는 각자 다각도로 탐구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탐구했다기보다는 스스로의 평안을 얻기위해서 노력한 결과인 것 같다.

나는 인간 동물이고 생태계의 일원이다. 생태계는 지구에서 서로 연결되어있는 하나의 유기체이다. 나의 행동이 타자에게 영향을 주고, 나도 영향을 받는다. ‘돌봄문화’는 바로 그런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돌보며 함께 살아가야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에 훨씬 가깝다. 자본주의는 인간이 만들어낸 괴물이다. 우리는 한시도 자연과 떨어져서는 생존할 수 없다. 지구가 없다면 돈이 아무리 많은들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지 않는가?

나는 아스퍼거증후군이다. 명백하게 자본주의의 희생양이다. 돈이 최고인 세상이 만들어낸 돌연변이이다. 나는 아스퍼거증후군이지만 우리 아이들은 자본주의의 희생양이 되지 않게 하기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있다. 정상적이지 않은 세상으로부터 더 자연스러운 세상으로 복원하기까지는 굉장히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아마 평생을 다 걸어도 우리는 절대 생태계를 문명 이전으로 되돌리고 호모사피엔스로 회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호모 심비우스로 거듭나야한다. 그것은 유일한 대안이다.  

불평등과 빈부격차, 기후‧생태‧보건 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는 지금, 차별을 없애는 일은 필수이다. 인간만의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여자도 노동자도 장애인도 청소년도 성소수자도 난민도 선주민도 흑인도 농민도 아이들도 모두 인간이고, 인간도 동물이고, 인간도 생태계이다. 인권을 넘어 동물권과 생태권이 대두되고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이 가치를 지닌 존재이다.

기후변화 말고 체제변화 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 라는 기후행동 구호가 있다.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은 무엇일까? 이래저래 생각해도, 엎어치고 메쳐도 나오는 건 사회주의 밖에 없었다. 근데 사회주의도 여러가지가 있더라. 절대로 ‘국가 사회주의’는 답이 아니다.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 Libertarian socialism”가 있다. ‘리버테리언 사회주의’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쉽게는 생태 공동체를 말한다. 이것은 권력을 국가가 가지지 않는다. 민중이 똑같이 나누어 가진다. 자연 속에 서로 돕고 살아간다. 자연스럽게 돌봄 문화가 만들어진다.

내가 지금 해야할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고, 배우자와 아이들을 돌보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이웃을 함께 돌본다. 그 이웃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 식물, 자연요소 전부이다. 한마디로 생태계이다. 그것이 바탕이 된다면 아이들을 훌륭하게 성장시킬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나도 치유될 것이다. 아직도 갈길이 많이 남았다. 하지만 그 멀고 어려운 여정을 나의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아직도 자주 서로 싸우고 울고 화내지만 그래도 이제는 무엇을 해야할지, 무엇으로 이겨낼 수 있을지 분명하게 알고있다.

이 글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문제를 가지고 힘겨워하고 있을 수많은 자폐 스펙트럼 가정에 실마리를 줄 수 있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참고서적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 (최성애 ・ 존 가트맨 박사) 

나의 뇌는 특별하다 (템플 그랜딘)

무엇을 먹을 것인가 (콜린 캠벨)

                                                                                              

참고

정체성 우선 언어, 자폐인 "자폐가 아들을 규정한다" http://www.ablenews.co.kr/News/NewsContent.aspx?CategoryCode=0006&NewsCode=00062021122806165726012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