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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세살이 Feb 24. 2019

사바하

악마와 신, 인간의 믿음


※ 주의 : 이 글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그것’은 악마인가, 신인가.


온몸이 털로 뒤덮인 '그것'이 태어날 때, 기독교에서 악마를 상징하는 동물 중 하나인 흑염소들이 울었다. '그것'이 태어나고 '그것'을 낳은 어머니는 일주일 후에 죽었다. 아버지는 목을 매고 자살한다. '그것'이 이사를 온 동네에서는 소들이 시름시름 앓으며 쓰러진다. '그것'의 겉모습, '그것'과 관계된 사람들의 죽음, '그것'이 속한 공간의 비극들. 이런 모든 정황들이 ‘그것'을 악마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것'은 악마였을 수 있다. 남은 가족들은 흉측한 모습의 '그것'을 두려워하며 창고에 가둬두고 개밥보다도 못한 식사로 연명하게 한다. 그들은 그들이 믿는 종교를 통해 '그것'으로부터의 안전을 담보받고 싶어 한다. 그렇게 그들이 '그것'을 악마라고 규정했을 때, '그것'은 악마가 되었다. '그것'을 확인하러 온 무당에게는 징그럽고 위협적인 뱀으로, '그것'을 죽이러 온 신의 아들에게는 새들을 유리창에 부딪쳐 죽게 만드는 사악한 주술사로 나타난다.     


하지만 쌍둥이 동생이 내적 갈등 끝에 농약을 탄 밥그릇을 걷어차고 따뜻한 스웨터를 내어 주었을 때, '그것'은 몸을 뒤덮은 털을 벗어내고 가부좌를 틀며 꼿꼿한 신의 형상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을 죽이러 온 자를 위로해 주면서 그의 잘못을 깨닫게 만든다. 인간이 '그것'에게 의미를 부여했을 때, '그것'은 비로소 신이 되었다. 그렇다면 신이라는 건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게 아닐까.


어쩌면 '그것'은 그저 겉모습이 조금 다른 인간이지 않았을까. 조금 다른 모습의 아이들은 언제라도 태어나고, 산고를 겪은 어머니는 안타깝지만 건강이 쇠약해져 명운이 다할 수 있다. 일련의 비극적인 사건들의 압박이 아버지의 목을 매게 했을 수 있다. 흑염소는 그저 본능에 따라, 그러니까 배가 고파서 울었을 수 있고, 소들은 종종 유행하는 구제역으로 쓰러졌을 수도 있다. 인간들의 주관적인 편견이 겉모습만 다른 '그것'을 본인들의 해석에 따라 악마 혹은 신으로 규정해 버린 것이 아닐까.     



2. 믿음을 얻는다는 건 무엇일까.


불우한 가정에서 각자의 사정으로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은 교도소에서 신이라고 불리는 사람을 만나고, 신은 그들에게 의미를 부여해 줌으로써 그들이 살아가야 할 이유와 목표를 만들어 준다. 물론 영화에서 설정된 신의 목표는 잘못된 것이었지만, 기댈 곳 없던 아이들의 마음에서 그들의 인정 욕구를 충족시켜 준 것은 어쩌면 종교의 순기능일 수 있다. 그렇게 그들은 구원을 받았고, 외국에 가서까지 사람을 죽이고 자신의 목숨을 버릴 정도로 충성스러운 신의 군사들이 된다.     


하지만 신의 아들들이 된 자들은 한낱 인간인지라, 사람을 죽이면서 생기는 내적 갈등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신의 아들 중 하나는 그가 죽인 소녀들의 환영을 보면서 괴로워하고, 그때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들려주던 자장가를 기억해 내며 무시무시한 괴로움을 버텨낸다. 비록 신의 아들이지만 , 본질은 인간인 자의 괴로움을 파고든 것은 또다른 신이 된 '그것'이다. 어머니의 자장가를 부르는 신의 모습에 그는 무릎을 꿇으며 여태껏 추종했던 자신의 신을 의심하게 된다.


우리의 마음에는 다양한 욕구들이 자리 잡고 있다. 소년교도소범들이 갈구하는 인정 욕구는 물론이고, 어머니와 같은 내 편의 존재에 기대어 충족하는 의존 욕구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욕구에 관심 있는 종교는 감성의 영역이다. 사건을 쫓는 목사가 신의 아들을 붙잡고 당신이 하는 일이 말이 되느냐며 설득하려 하지만, 그의 설득은 별 효과가 없는 이유는 종교는 이성적인 설득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교는 인간의 심적 욕구를 감정적으로 만족시켜 줌으로써 이성적인 사고로부터는 멀어지게 만들기도 하지만, 사실 그러한 일은 누군가에게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무엇보다 나의 마음이 편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3. 매끄럽고 탄탄한 이야기, 참신하고 의미 있는 상징들, 소외된 캐릭터.


불교의 4대 천왕을 모티브로 한 종교적 세계관이 자칫 관객들에게 어려울 수 있었을 텐데, 이를 설명해 주는 역할의 스님을 배정한 것은 관객을 위한 친절한 배려였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너무 설명이 많아 늘어졌다는 비판도 있는 듯한데,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보다는 조금 느리더라도 천천히 이해시키면서 나아가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사람의 마음을 판단하는 거울을 상징하는 코끼리의 눈은 불교와 잘 어울리면서도 시각적으로도 재미있는 장치였다. 악마로 여겨졌던 '그것'을 신의 모습으로 바꿔 주는데 기여한 스웨터의 따뜻한 감정도 잘 전달됐다. 신을 죽게 만든 라이터는 불을 상징한 현대물로서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영화 중간 중간 군인들의 모습을 등장시킨 것은 신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신도들을 상징한다는 측면에서 인상적이었다.     


형사의 비중은 아쉬운 부분이다. 정진영이라는 유명 배우가 연기한 점, 그의 말투나 행동이 범상치는 않았다는 점 등에서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데에 그도 어느 정도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형사는 진실을 파헤치는 목사의 말을 시종일관 무시하는 다소 소극적이고 무능한 인물로 그려졌다. 여러 캐릭터의 이야기를 펼쳐 놓고 조절을 하는 과정에서 비중이 줄어든 비운의 캐릭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가정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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