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둘째 딸의 댄스 영상을 보신 우리 학년 담임쌤들이 술렁였다.
5명 중 나를 꼭 닮은 아이가 내 딸이라고 하니까 모두들 당황했다. 못 찾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딸을 지목하며, "어때요 저랑 똑 같쥬?"
이러니까 모두 실소를 터뜨리셨다. 어디가 똑같단 말인지? 얼굴도 이쁘고, 다리 길고 키도 큰데?
정녕 이 아이가 맞는다면 사모님 몰빵이라고 하시면서.
그러면서 키를 물으시길래 내 키가 궁금한가 해서 2미터 쫌 안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다들 어이없어하며 아내와 딸의 키를 물어 대답했더니 사모님 몰빵의 객관적인 증거가 나왔다고 다들 웃으셨다.
그러다 뜬금없이 누군가 내 아이큐를 물으셨다.
솔직하게 대답했다.
다들 놀라셨다. 우리 세대는 초중고 재학 중 아이큐 검사를 하던 시절이었는데 이런 아이큐는 처음 본다고.
도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냐고.
난 아무래도 찍은 거 다 맞았던 것 같다니까 그게 아이큐라고 하시면서, 어떤 쌤은 답을 잘못 체크했다고 하니 선생님으로부터 그게 아이큐라는 상처되는 말도 들으셨다고.
한 선생님이 내게 사교육 없는 자기주도학습 강의를 하면 안 된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농담처럼 들리지는 않아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초임 교사 시절에 학생들이 내게 아이큐를 물어서 답해주니까 키 얘기하지 말라는 학생들 반응에 폭소했던 기억도 갑자기 떠올랐다. 그래서 내 키가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해두었다.
아이큐는 신분 같은 폐쇄성이 있다. 자기규정효과도 강력하다. 아이큐 테스트는 원래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변별하여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굳이 일반 학생들에게 오해와 착각의 메시지를 전할 이유는 없다.
아이큐가 높으면 머리만 믿고 노력을 덜하게 될 것이고, 아이큐가 높지 않으면 해도 안 된다는 좌절감이 발목을 잡을 것이니까.
요즘 학교에서 옛날처럼 대대적으로 아이큐검사를 하지 않는 건 다행인 일이다.
고등학교 때 별명이 두 자리인 친구가 있었다. 실제로 아이큐가 두 자리였던 까닭이다. 그런데 그 학생은 서강대에 진학했다. 노력으로 이겨냈거나 아이큐검사에 신뢰성이 떨어지거나 둘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 친구는 정말 열심히 노력하긴 했다.
선천적인 요인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아이큐는 후천적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나의 아이큐는 126이었다. 3학년 때부터 우연한 기회에 독서의 재미에 빠져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하굣길에 우산이 없어 말 그대로 소나기(shower)로 강제 샤워를 하고 집에 와서 따뜻한 물로 다시 샤워하고는 따뜻한 방에 누워 책을 보며 느꼈던 편안함과 극강의 행복감이 아직 떠오른다. 어린 시절 나는 책과 함께 울고 웃었다. 초등 5학년 때까지 중고등학교 교목(학교목사)이자 사서교사를 병행하셨던 아버지가 상주하셨던 학교도서관에 가서 마음껏 책을 볼 수 있었던 행복감은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 야구를 하러 다니는 즐거움에 견줄 정도였다. 어린 시절 나의 꿈 중의 하나는 서점 주인이었다. 원하는 책을 마음껏 볼 수 있을 거라는 순진한 열망의 반영이었다.
그러고는 중고등학교 때 아이큐가 155가 나왔다.
유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결과였다. 첫 결과가 잘못 측정되었거나 중고등학교 결과가 과대평가되었거나, 신뢰성의 이슈도 있겠지만.. 아이큐가 급상승한 그 기간 동안에 유의미한 활동은 독서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물론 아이큐는 언어적 이해, 수리적 능력, 공간적 사고, 기억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므로 문해력과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아이큐 검사가 신뢰성이 있다는 걸 전제로 한다면 나의 아이큐 변화는 아이큐와 문해력의 관련성에 대한 유의미한 결과였다고 믿는다.
실제로 내가 학습에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은 한참 독서에 몰입한 몇 년간의 축적 이후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였으니 아이큐와 문해력과 학습력과의 상관관계는 적어도 내게는 확실히 연결고리가 존재하는 듯했다.
그런 확신으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짧은 글이라도 지속적으로 읽기를 시켰고, 댓글달기 활동도 꾸준히 시켰다.
딸들에게는 당장 성적을 올리는 사교육이 아닌, 꾸준한 독서의 기회 확대에 계속 초점을 맞췄다.
내 이론이 틀려서 성적이 오르지 않았더라도 사교육을 시키지 않은 미련도 없었을 것이지만, 딸들은 즐거운 독서 일상을 계속했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딸들은 결국에는 학습능력에 대한 자신감도 갖게 되었다.
아빠 아이큐의 유전이라고 말한다면 반박하기 어렵겠지만, 아이큐의 상관관계보다 문해력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고 싶다.
질문을 했어도 굳이 대답할 이유는 없었는데, 나의 아이큐가 알려진 후 선생님들은 내게 부러움도 표현했고, 그동안 내가 해온 업무의 효율성 등에도 의미를 부여하셨다. 아이큐가 모든 것을 결정짓지는 않지만, 마치 예언을 충족하는 듯한 운명론적인 생각에 힘을 실어주는 느낌을 받았다.
나의 노력조차 아이큐에 묻혀버린 느낌까지...
그러나 아이큐보다 문해력 등 후천적 노력을 더 신뢰할 수 있게 되기를...
어린 시절부터 즐거운 읽기에 더 집중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기를 나의 삶을 통해, 딸들의 교육의 사례와 학교 현장에서의 사례를 통해 외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