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축제를 마쳤다. 학생들의 수고와 애씀이 곳곳에 묻어났다.
수업 시간에 조용하고 대답 없기로 유명한 우리 반 아이들도 축제 반별 장기자랑 준비에 열심이었다. 무대를 망칠 것을 각오하고, 담임인 내게 엔딩 포즈까지 부탁했다. 학년부장인 내가 다른 반에서는 인기가 많을 줄 알았나 보다ㅋㅋ
고난도 댄스 동작이 아니었고, 마지막 부분에 숨어 있다가 아이들이 홍해 갈라지듯 반으로 갈라지면 내가 운전하는 포즈로 뛰어들어와서 하트를 날리는 간단한 동작이었다.
학생들 무대에 절대로 끼어들지 않는 것이 평생 원칙이었던 나는, 아이들의 간절한 애씀에 부응하려 원칙을 깼다.
우리 반은 수상도 못했고 본무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난 아이들에게 내 마음 속의 1등이며, 무엇보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즐거웠던 순간들의 행복이 더 중요하고, 그만큼 오래도록 간직되는 추억이길 바란다고 위로했다.
축제가 끝난 직후, 난 그동안 금요일 방과후에 진행했던 채움수업을 강행했다. 규정된 횟수나 시간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졸업이 다가오는 아이들에게 내 가진 모든 것을 다 쏟아주고 싶었다.
축제 전 날, 축제 마치고 수업한다는 사실을 학생에게 확인을 받자 옆에 있던 학생이 내게 이랬다.
"저, 선생님 그렇게 안 봤어요!"
유쾌한 농담에 설마 수업하겠냐는 놀라움이 담겨 있는 말이라서 나도 유쾌하게 웃음으로 반응했다.
갑자기 10년도 더 된 기억이 떠올랐다.
고등학교에서는 정규수업 7교시 이후 배정형 교과 방과후 수업이 진행되었었고, 희망하는 학생들에 한해서 야자시간인 7시부터 9시까지 특별보충수업(특보)이 있었다.
특보의 특성상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하여 효과를 높이는 것이 보편적이었지만, 난 굳이 인원 제한을 두지 않는 편이었다. 동일 집단이면 수업의 효율은 더 높겠지만, 수준에 상관없는 원리와 이해중심 수업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어떤 때는 중위권과 상위권으로 두 개 반으로 나눠 진행한 적도 있었다.
대구여고에서 어느 해인가 거의 중상위권과 최상위권이 혼재된 40명 정도의 고1 학생들이 내 특보를 신청했다. 특보는 희망자를 받지만 교사의 재량으로 인원 조정이 가능했다.
그러나 난 성적으로 적당인원만 선발해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성적이 부족해도 본인의 간절함으로 충분히 내 수업을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겨울 방학 때는 60명이 넘는 학생들의 간절함을 외면할 수 없어서 시청각실에서 전체를 모아서 대단위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었으니 내 기준으로 인원은 문제가 아니었지만, 학생들의 간절함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마침 첫 특보 시간으로 예정된 날 오후에 외부 동아리 체험활동 행사가 있었다.
점심 식사 후 동아리별로 지하철과 도보로 왕복 90분 정도 걸리는 곳에서 2시간 정도의 체험을 하고, 그곳에서 동아리별로 종례하고 각자 귀가하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그 활동을 마치고 학교로 다시 돌아와서 내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만 이후 수강 기회를 주겠다고 선언했다.
코로나 이후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교육예산 투입으로 학생 비용 부담 없이 수강하는 채움수업과 달리, 그 당시 보충수업은 학생들이 비용을 부담했음에도, 그래서 수업개설의 주도권은 학생들에게 있음에도 나는 갑질 같은 말도 안 되는 미션을 던졌던 거였다.
그 당시 특보는 10명 이상이 되어야 보통 개설되었는데, 그렇게 선언하고도 불안했다. 10명도 안 오면 개설 자체가 안 될 텐데... 아이들과의 만남의 기회를 내가 걷어차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한 건 아닐까...
외부 활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와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약속된 수업 장소로 향했는데...
내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믿을 수 없었다.
신청한 모든 학생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수업하는 교실에 와서 앉아 있었다.
교사로서 최고의 영예로운 순간 중 하나였다.
학교 내신과 상관없으면 수업에 잘 참여하지 않으려 하고, 평소 학원이나 인강 등으로 영어학습을 하는 교육특구 고등학교 분위기에서...
평범한 한 교사에게 쏟아진 아이들의 신뢰와 인정이 공교육 교사로서의 내 존재의 의미를 일깨워 주었고 정신 못 차릴 정도의 격려와 응원을 해주는 느낌까지 들어서 가슴이 벅찼다.
피곤한 체험활동 후 학교로 다시 돌아오는 여정 자체가 고되었을 텐데, 학교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만으로 간절함은 이미 증명되었고 그것만으로도 감동이었는데, 학생들은 모두 100분의 수업 동안 끝까지 몰입했다.
이후 그 아이들을 대상으로 중간고사 다음 날 밤에도 수업을 강행했었는데 변함없는 몰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도 지치지 않고 수업에 몰입했다. 마침 지나가면서 그 수업 모습을 보던 학년부장님께서 내게 감탄과 감사의 마음을 전해주시기도 했다. 그 감탄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향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함께 뿌듯했다.
그 아이들의 열정과 수업의 몰입은 겨울방학을 넘어서 종업식 후 2학년 진학하기 전 봄방학 때도 비공식적인 수업을 개설할 때까지도 이어졌다.
교사의 자긍심과 자부심과 자존감은 학생으로부터 나온다. 교사의 열정도 학생들의 열정의 투영일 뿐이다.
대구여고에서 학생들의 열정을 마주하다가 비교육특구 강동고에서 첫해 고2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보 수업을 신청받았는데, 신청자가 10명이 되지 않아 폐강되었다. 몸은 편했지만,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이전의 특별한 수업들이 나의 열정으로 인한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아픔으로 자기 객관화하는 기회가 되었다.
자기 객관화 이후 겸손하게 학생들의 수준과 필요를 살피며 고1을 하는 3년간 여러 가지 수업과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특히 내가 가장 큰 의미를 부여했던 과정은 1학기 기말고사 끝난 직후 2주간 문법 단기 특강 수업을 진행할 때였다. 자공고여서 수강료 지원을 절반 받아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주기는 했지만, 그런 나의 열정에 방과후부장님은 내가 돈독이 올랐다고 생각했다고 훗날 내게 고백하셨다. 아무도 그렇게까지 수업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 오해로도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행보를 멈출 수 없었다.
절실해서 시작하는 것은 다소 늦으며, 남들이 하려 하지 않을 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 몇 배의 성과가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 결정적인 시기의 수업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물론 내가 무대를 세팅하지만 그 무대에 오르고자 하는 학생들의 간절함과 의지와 의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30대 초반에 경덕여고에서는 수능 끝난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아침 8시부터 등교 시간인 9시 전까지 거의 한 달 간 매일 한 시간씩 무료로 영어수업을 하기도 했다. 그때 교재로 썼던 것이 <Grammar in Use, Intermediate>였다. 수능 끝난 아이들에게 진정한 활용문법과 영어 말하기 쓰기의 기본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그 수업도 나의 열정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수능 후 고3의 아침 8시는 새벽과도 같은 시간이었을 텐데 20명이 넘는 학생들이 정말 열심히 수업에 참여해 주었다.
대구여고에서도 점심시간에 영어 인문학 독해 특강을 무료로 진행하기도 했는데 어느 해인가 210명 이상이 신청을 해서 분반을 해서 수업을 하기도 했다.
선생님들은 학교 수업으로도 힘들 텐데 점심시간까지 무리가 아니냐고 걱정해 주셨지만, 수업 후 오히려 활기를 얻고 행복해하는 내 표정을 보시고는 바로 걱정을 접으셨다.
나이가 더 들어가니 체력적 한계의 끝도 보이지만, 여전히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뭔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진다. 그러나 그 마음이 닿지 않는 것 같아 무력해지고 안타깝기만 하다.
젊은 시절에는 젊다는 이유만으로도 학생들 호감에 기대어 이미 다가와 있는 학생들에게 어떤 역할이라도 더 해줬던 건 아닐까하는 현실 인식에 서글픔도 느껴진다.
주말에 한 고등학교에 예비 고2, 고3 학생 두 반을 대상으로 모의고사 분석 및 영어학습법 특강을 다녀왔다.
첫인상을 넘어선 소통의 장벽을 넘기가 어려웠다. 한 번의 만남으로는 그들에게 나의 도움을 제대로 전할 수가 없을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줄 수 있는 영향력에만 집중하려고 모의고사 분석보다 이후 학습 자립을 위한 학습 방향과 마음자세를 이야기해주었다.
교육의 영향력은 한두 번의 시도만으로 제대로 심어지지 않을 수 있으니, 내게 주어진 일상의 반복을 통해서 그 역할을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만났던 중3 학생들 중, 결국 준비된 아이들과 절실한 아이들만 그 교육의 영향을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고등학교 교사인 시절이 그리운 것은 나의 젊음에 대한 그리움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 이 나이에도 고등학교 초빙교사에 도전하려 지원서를 냈다. 초빙에 합격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 인근의 중학교 4개를 함께 썼다.
교육특구 중학교는 민원이 많은 편이어서 기피하는 경향이 있지만, 오히려 난 그곳에서 나의 역할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애써 피하지 않았다.
교육특구라서 오히려 소외받는 학생들을 살피고, 학원 다니면서 상처받고 이런저런 이유로 절실함과 절박함과 간절함이 있는 학생들을 만나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 학교 축제 후 수업은 어떻게 되었냐고?
학생들이 모두 다 모였다. 고등학교 때의 인원과는 비교가 안 되는 6명이었지만, 단 한 명 학생의 절실함이라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는 중학교 4년 내내 가져왔던 나만의 간절함이 맞닿는 감동의 순간이었다ㅠㅠ
교사의 교육은 의사의 의술과 유사한 점이 있는듯 하다.
아픔에 대한 자각과 치료에 대한 필요성이 있어야 사람들은 병원을 찾는다.
학교에서는 모두가 다 학교에 어떻게든 와 있긴 하지만, 공간을 차지하는 존재감 이면에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자각과 교육에의 필요성을 느끼는 학생들에게만 교육의 효과가 드러난다는 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나만의 수업과 코칭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내게는 그런 비유가 딱 들어맞는다.
치료시기가 늦어지면 더 고생할 것을 얘기해도 마음이 변화가 없는 환자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학생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아픔은 교사의 숙명이다.
사교육의 상처가 있고 치열한 경쟁과 비교로 아픔을 겪는 교육특구에서의 학생들이, 경쟁이 덜 치열한 지역의 학생들보다 아이러니하게도 절실함이 더 큰 경우가 많다. 고등학교보다 경쟁이 덜 치열하고 자기 객관화가 덜 될 수밖에 없는 중학교에서 절심함이 더 부족한 상황에 견줄 수 있을 것 같다.
학교생활이라는 일상에서는 각자의 타이밍을 존중하는 기다림도 유효하지만, 지난 주말처럼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치료와 같은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생각에 잠겼는데...
단 한 번의 만남으로도 의미를 찾았던 결론은 "자기치유"였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스스로 치유되고 교육하는 것이다. 단 방향이 맞아야 하는 것이니 초기의 가이드가 필요하다면 이벤트 같은 한 번의 만남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 믿고 싶었다.
일상에서 자주 마주해도 결국 치유와 교육의 과정을 이어가서 완성으로 나아가는 것도 본인의 자발적인 의지와 노력으로만 가능할 것이다.
의사나 간호사들은 환자를 다시 만날 일이 없어야 자신들의 치료 효과를 검증받는다.
교사도 이와 다르지 않다. 교사는 결국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 순간을 위해서 교육 활동을 해야 하는 건 의사의 숙명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부디 눈으로 확인되지 않은 교육의 씨앗이 어딘가에 누군가에 잠재되어 있다가 결국에는 열매를 맺게 되기를...
의미 없던 교육 활동은 없었기를...
그리고 굳이 안 해도 되는 그 순간에 몰입했던 수업의 기억이 그들에게 사소한 성취의 기억으로 새겨져 스스로 치유되는 것처럼 학습 자립의 동력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아이들은 늘 공부 안 해도 되는 합리화와 싸워야한다. 이렇게 터무니없는 상황에 수업이나 공부를 한 기억이 몸에 새겨지면 공부를 해야 할 그 순간에 망설일 이유를 애써 찾지 않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어제 영어멘토링 학습코칭하는 학생들에게 실적에 관계없이 이런 문자를 전송해주었다.
축제의 분위기와 공부 안 할 유혹을 딛고 여전히 최선을 다하고 있을 거라고 믿는 너에게...
지난 번 소개했던 둘째 딸 고3 플래너 명언 중에서 추가로 몇 문장 더 소개할게. 계속 힘내길 응원하며..
그것이 부질없는 되풀이라 하더라도 그 부질없음이 쌓이고 쌓여져서 마침내 길을 만들고 이리 힘들고 어려워도 왜 내가 지금 주저앉아서는 안 되는지를 나는 안다. - <산길에서> 중
내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라. 오늘이 내일이다. - 앤드루 카네기
지금이 편한 이유는 내가 가는 길이 내리막이기 때문이다.
실패하는 사람들의 90%는 정말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황송한 이 심정을! 날로 나날이 내 앞에는 자칫 가늘은 길이 이어가라. 나는 나아가리라. 한 걸음, 또 한 걸음.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세다. - 아인슈타인
당신이 그저 기분이 좋을 때 환경이 허락할 때만 어떤 것을 한다면 그저 취미로 간직하는 것이 낫다. 절대로 그것으로 최고가 될 수 없다. - <일의 격> 중
몸이 힘들어 도저히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일단 토슈즈를 신고 연습실에 서면 행복합니다. - 발레리나 강수진
지금 이 순간이 우리의 파도라면 두려워말고 더 힘껏 마주하길
끝날 때까지 끝난 거 아니다. 수능 전에는 모든 것이 가능성이고 수능 후에는 모든 것이 현실이니 아직 정해지지 않은 큰 기회에 계속 베팅 하렴. - From Dad
꿈 : 현실의 어려움을 버티면서 살아가고자 할 때 생겨나는 마음의 힘. - 니체
그런데 어쨌거나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인 거잖니. 아직 기회가 있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된다. - From My Dad
수많은 저 사람들 몸속마다에는. 밖에선 볼 수 없는 뜨거움이 일렁거리나 보다. 저마다 진흙으로 돌아가려는 몸을 일으켜 세우는. 불가마 하나씩 깃들어 있나 보다. - <별을 굽다> 중
상상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있다면, 상상할 수 없는 노력을 해라.
어제의 후회와 내일의 희망 사이에 오늘의 기회가 있다.
가자 끝이 기다리는 시작으로.
순간은 참으로 아름답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서 공부하고, 일하고, 노력하는 이 순간이야말로 영원히 아름답다. 순간이 여기 있으리라. - 괴테
주변의 일반화된 이야기에도 귀를 닫고 너만의 길을 가렴. 아빤 끝까지 노력하고 완주해낼 너의 발걸음만 응원하는 거란다. - From Dad
가장 무능한 사람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시기에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우리는 피카소가 천재라 여기지만 그는 3만여 점을 그렸고 그중 상당수의 작품은 그저 그랬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의 성공 비결은 단순하다. 꾸준히 실행하는 것이다 많이 쓰고 많이 시도하는 것이다. 양에서 질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