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첫 전교직원 출근일에 전입교사 기간제 영어교사 소개를 하는데 깜짝 놀랐다.
고1 때 영어를 가르쳤던 제자였다.
제자는 그전에도 한 번씩 내 블로그에 와서 안부를 묻기도 했었지만, 첫 근무지에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놀라움으로 기뻐했다.
운명 같은 그 만남이 믿기지 않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제자는 내가 면접관을 했다면 너무 떨려서 합격하지 못했을 것 같다고 엄살을 부렸다.
제자와 동학년은 아니었지만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하고 기뻤다.
제자는 고1 때로 돌아간 듯 내 수업도 참관했다. 난 수업하다 말고 청블리키즈 원년 멤버라고 제자를 소개해서 학생들의 신기한 탄성이 터지기도 했다.
학부모대상 자기주도영어학습 시교육청 강의도 데려갔다. 제자는 영어 티칭과 코칭에 깊은 영감을 얻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그동안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주고 교사로서의 나의 삶과 나의 컨텐츠를 무제한으로 공유해 주었다.
제자는 고1 때와 달라진 것 없는 한결같은 겸손하고 겸허한 자세로 내게서 뭐든 배우려 애썼다.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3426418024
그러나 우리의 만남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한 학기도 다 지나기 전 계약 만료로 학교를 떠나게 되었고, 제자는 임용시험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그러기를 몇 달 지난 후 임용 1차 합격했다는 연락이 왔고, 얼마 전 최종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난 너무도 기뻐서, 함께 근무했던 학교 선생님들 단톡방에 공유해 드렸다.
1학기 영어 기간제 교사였던 ***쌤 임용 최종 합격하여 쌤들께 인사 대신 전합니다^^
학교에서 수업 및 실무를 제대로 배운 덕입니다.
제자를 대신하여 감사인사드립니다^^
여러 선생님들이 축하의 댓글을 남겨주셨다. 그중 일부...
정말 반갑네요. 훌륭한 스승님의 훌륭한 제자네요^^
야무지더니만 꿈을 이뤘군요.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
떡잎부터 알아봤습니다. 가르치신 청블리 선생님도 뿌듯하시겠어요~^^ 축하드립니다!!
정말 축하한다고 인사 전해 주세요. ***교육청 진짜 제대로 인재 뽑았네요.^^
부장님~ 훌륭한 제자 두셨어요. 축하 인사 전해주세요
이후 제자는 발령받은 곳이 신설학교에 영어교사는 본인 혼자뿐이라고 걱정스러운 메시지 끝에 내게 이런 긍정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한 번 부딪혀보려구요…ㅎ 어떻게든 되겠죠!!!ㅎㅎㅎㅎㅎ모르는 거 있으면 쌤한테 여쭤봐도 될까요�
그래서 이렇게 격려해 주었다.
그래 넌 아직 젊고, 그곳은 너가 꿈꿨던 무대이며, 만나게 될 학생들은 오롯이 너의 학생들이니까.
두려움이 있어도 나처럼 믿음으로 감당하길.
궁금한 거 있으면 내게도 물으렴^^
그리고 어제 전해 온 또 다른 제자의 메시지.
선생님~~~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 대구여고 제자 ***입니다!
저번에 연락드린다고 해놓고 참.. 꽤나 용기가 필요해서 마음처럼 실천이 쉽지않아요ㅎㅎ 선생님 저 이번 연도에 초등 임용 합격해서 초등교사가 되었답니다 ..� 2차 준비하면서 기억에 남는 선생님, 꿈꾸는 교사상 생각하면서 선생님 엄청 떠올렸어요! 그리고 심지어… 저 **에서 근무해요!! 오늘이 첫 전직원 출근일이라 이제 집 가는 길이에요 ㅎㅎ 선생님 어릴 적에 **에서 사셨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 그래서 엄청 반가웠는데 !! 제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거일 수도 있지만 ㅋㅋ 여튼 제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 주셔서 꼭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서 연락드립니다�
나의 답변
**아 연락 준 것만으로도 반가운데 임용 합격 소식까지 전해주니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
**이 같은 감성과 공감과 사랑이 넘치는 학생이 꼭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꿈과 바람이 있었는데 그걸 이뤄줘서 너무 고맙다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겠구나
그 고생도 너의 성장과 아이들 만날 때의 더 큰 공감 능력으로 나타날 것이니 그 노력과 애씀에도 칭찬과 격려를 열렬히 보내고 싶다.
어찌 내 고향을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신기하고 그곳에 발령받은 것도 뭔가 운명 같은 느낌이라서 가슴 벅차구나.
이 성취의 순간에 나를 기억해 주고 좋은 모습으로 가슴에 담아줘서 너무 감격스럽다. 이 감격은 **이가 꼭 너 같은 제자를 만나야 느낄 수 있는 감동일 것이니 꼭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고 응원할게.
***선생님의 행복교육을 응원하고 기도합니다.
연락 줘서 고맙다^^
제자의 답글
여전히.. 글을 무척 잘 쓰시는군요 ㅠㅠ 감동이에요. 저도 청블리쌤을 멀리서도 항상 응원해요^^*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 �
이어서 제자가 교지에 쓴 글이 담긴 예전 블로그가 생각나서 링크를 보냈다.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2845355074
제자의 답글
와 대박 .. 이럴 때마다 세월이 참 빠르다는 말의 의미를 뼈저리게 느껴요ㅋㅋㅋㅠㅠ
꼭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은 몽글몽글한 기분이네요 ㅎㅎ 초심을 잃을 것 같을 때,, 또는 힐링이 필요할 때 힐링 블로그로 방문해야겠어요 ㅋㅋㅋ 감사합니다..�
나의 격려 답글
그때도 넌 순수한 열정이 가득했고 지금도 한결같을 거라 믿는다
한 번에 사랑 다 쏟지 말고, 산소마스크는 너부터 써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말고. 교사가 행복해야 그 행복이 학생들에게 전달되는 거니까^^
이 학생도 담임은 아니었지만, (위에서 링크한 글에서처럼) 고1 때 나의 수업시간에 몰입하며 나를 엄청 따랐고, 나를 모델로 학교 교지에 글을 기고하며 나 같은 교사가 되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널리 알리기도 했으며, 내가 학교를 떠난 2학년 국어시간에 김춘수 시를 배울 때 전교생 이름을 외워서 자신의 이름도 불러주던 내가 생각나서 시를 읽다 말고 울어서 친구 국어쌤이 수업 중 내게 영상통화 시도를 고민했었다는 잊지 못할 제자였다.
교지에 실렸던 글을 봤던 그때도 지금도 내가 교사로서 노력해야 할 이유가 선명해지며 가슴을 울리는 감동과 감격은 변함없는 듯하다. 정말로 자신의 선언대로 꿈을 이룬 제자가 너무 대견하고 그 기쁨의 순간을 나와 함께해 줘서 너무 감사했고, 학생들에게 사랑과 행복을 전하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같은 교사로서 함께 성장을 응원할 수 있게 되어 가슴 벅찬 웅장함을 느꼈다.
내게는 이 모든 만남이 다 선물 같다.
제자가 고1 때 교지에 기고했던 글
<뭔가 다른 선생님>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선생님을 만난다. 나에게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선생님은 우리 학교 학생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청블리선생님이다. 그 선생님은 뭐라고 말로 형용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선생님들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선생님을 3월에 처음 보았을 때, 조금의 웃음도 없이,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영어 단어를 물어보셨다. 굳은 표정에 단호한 목소리라니, 알고 있던 것도 다 까먹고 금방에라도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복도에서 인사했을 때, 마냥 무서울 줄만 알았던 선생님의 그 따뜻한 미소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학기 초에 선생님은 언제 어디서든 우리들의 사진을 들고 이름을 외우셨다. 처음에는 ‘교탁에 자리표도 있고, 그게 큰 도움이 될까’,하며 괜한 고생을 하시는 게 아닌가라고 단편적으로 생각했었는데, 선생님께서 기대도 안한 나에게, 얼굴을 보고 내 이름을 불러주시며 매력적인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씀하실 때, 중요한 말은 아니었지만, 이름을 불러준 것 자체가 엄청난 감동이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는 시도 있듯이 선생님께 나는 그 무수히 많은 학생들 중 하나가 아닌 하나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다.
선생님께서는 수업 시작부터 종종 “내 수업을 기다린 친구들한테는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공식적인 사과를 하시고는 문이과 결정에 도움이 되는 얘기들, 우리에게 절실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이야기들, 인생 선배로서의 느꼈던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하시곤 했다. 자기 아빠한테도 예쁘다고 들어본 적 없는데 선생님한테 처음 들었다고 놀라며 기뻐하는 아이들도 있고, 선생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듣고 훌쩍이거나 아예 울어버리는 친구들도 많았다. 물론 나도 그중에 한 명이었고.. 언제 한 번은 기타를 들고 오셔서 반 아이들에게 노래를 불러주시기도 했다. 정말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일들이었다. 늘 깨달음을 주고 소통하고 공감하는, 이거야말로 인생수업이었다.
선생님의 관심과 우리를 향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느껴지는 사랑과 진심이, 선생님에 대한 신뢰로 돌아가는 것 같다. 내 뜻대로 되지는 않지만, 선생님께서 믿어주시는 데, 절대 실망시켜드리고 싶지는 않아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수업에 경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뭐든 진심으로 느껴지고 열정이 넘치는 선생님을 누구든지 오래 기억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그 선생님을 존경하고, 꼭 그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 학생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선생님. 당장에 학생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고 인기를 누리는 것보다는 시간이 지나도 학생들의 마음속에 남아있고, 떠올렸을 때 고마움이 느껴지는, 그런 선생님이 되는 것이 나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