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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꿈과 현실 사이(feat. 드림하이를 보고)

by 청블리쌤

예전에 정말 재미있게 봤던 <드림하이>라는 드라마를 다시 정주행했다. 느낌이 달랐다. 딸의 행복을 지켜주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아빠가 빌런으로까지 느껴졌다. 나를 돌아봤다. 난 정녕 빌런인 아빠는 아니었을까?



큰딸이 중학교 때 방송반을 하고 싶어 했는데 공부에 방해된다고 막았던 게 지금은 뼈저린 후회로 다가온다.

두 딸은 그럼에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며 나의 반대를 넘어서는 삶을 살아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후 아이들은 고등학교와 중학교 입학해서 각자 밴드부와 댄스반에 내게 미리 허락도 안 받고 오디션 합격하고는 결과만 알려주었다.

큰 딸은 베이스 기타를 전공하고 하고 싶다는 의지를 정기적으로 강력하게 피력했지만 그때마다 난 아이를 주저앉혔다. 그런 불확실한 미래에 베팅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경제적 자립을 하지 못해 무력한 딸에게 상처를 주면서 억압했다.


고등학교 1학년 말에는 예담학교에 진학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함께 설명회에 참가해 주는 것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라고 생각했지만, 딸은 설명회를 다녀와서 오히려 더 확고해졌다.

(대구 예담학교는 대구교육청에서 관리하는 음악, 미술 위탁학교로, 딸이 지원할 때는 2학년은 수요일 저녁, 토요일 오전 각 세 시간씩 방과후형으로 운영하고, 3학년은 전일제였지만, 지금은 2학년 때부터 전일제로만 운영한다. 고등학교에 원적을 유지하면서 추가 학비 부담 없이 예고처럼 위탁하는 시스템이다. 물론 졸업은 원적교로 기록된다.)



절대 허락할 수 없다고 못 박은 설명회 참석 다음 날 주일에 딸과 둘이서 예배를 드리러 갔다가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예담학교를 허락해 주었다. 처음에 반대를 하며, 냉혹한 현실을 말해주어야 하는 것은, 현실은 그보다 더 차갑고 힘들 것인데 문턱에서 그런 말에 의지가 꺾인다면 그 길이 아닐 것이니, 일종의 테스트일 거라고 스스로에게 합리화시켰던 것 같다.

어쨌거나 딸은 일단 그 1차 테스트를 통과한 것이었다. 그 대신 계약서를 쓰기로 했다. 두 가지 조항이었다. 하나는 지금 썸타고 있는 밴드부 선배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 다른 하나는 선행도 제대로 안 한 상태에서 예담학교와 이과 수학과정을 동시에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니 문과 전향을 고려해 볼 것이었다.

딸은 바로 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그리고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했다.


그리고 다음 해 딸은 오히려 아무 관계도 아니었는데 전화로 선배와 관계를 정리하려다가 오히려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본인은 수학과 물리과목이 재미있어서 도저히 이과를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결과적으로는 본인이 원하는 대로 다 하게 되었던 거였다. 그렇게 2학년 1학기에 딸은 바쁘면서도 너무 행복해했다.


학교 공부를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성적은 음악과 연애로 인해 내신이 각 한 등급씩 떨어질 정도였다. 딸은 처음부터 그걸 다 감수해서라도 행복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하길래 성적 떨어질 것을 직감하면서도 딸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성적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체험이라고 믿고 싶었다.

한 학기 마치고 예담학교 성과 발표회 공연도 온 가족이 다 참석해서 응원도 해주었다. 그 자리에서 예담학교 담당 장학사님을 우연히 만나 딸 얘기를 하면서 공부를 더 해야 하는데 저러고 있다고 하니까 “팍팍 밀어줘라” 이렇게 오히려 격려하셨다.


딸은 2학년 2학기 이과수학 범위인 미적2, 기하와 벡터 과목을 선행도 안 된 상태에서 진도를 따라가다가 현타가 왔다. 그리고 공부를 병행하며 음악에만 전념할 수도 없는 데다가, 막상 겪어보니 음악에 인생을 다 걸기에는 현실적인 제약들이 느껴지고, 대회에서 실력자들을 만나면서 또 현타가 왔다고 했다. 그리고는 2학기 중반에 스스로 예담학교를 포기했다. 원적교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원적교 복귀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만둔 후 오히려 밤에 베이스기타를 더 열심히 치길래 혹 미련이나 후회냐고 물으니까, 학교 과제로 하던 때와 달리, 교회 찬양대 준비를 하면서 자발적으로 하니까 더 재미있어 더 열심히 하게 된다는 말을 했다.

평생 음악을 하면서 살 운명인 건 인정하지만, 그런데도 음악을 정말 좋아하려면 그저 취미로 할 것을 권했던 아빠의 말을 본인의 체험으로 깨닫게 되었던 것이었다.



음악을 선택하면서 잃게 된 것도 물론 있었지만, 본인은 평생 취미로 베이스기타를 칠 수 있는 바탕을 더 다질 기회가 되었다.



음악과 연애를 시작하면서 딸은 결국 정시파이터가 되었다. 물론 수시인 논술로 성균관대 공대를 진학했으니 뜻대로 된 건 아니지만, 오히려 원하는 것 그 이상을 얻었다. 정말 거짓말 같은 드라마다.

딸은 여전히 대학 가서도 밴드부에서 베이스 기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음악에 대한 관심을 확장해서 디제잉까지 취미로 하고 있다.



이번에 집에 내려와서는 음악으로 자리를 잡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이야기했다. 자기 주변에 음악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앨범을 다 내본 사람들이라고.. 본인도 언젠가는 자비로 앨범을 낼 거라고... 그리고 음악전공을 안 하기로 한 건 잘 한 일이었다는 말을 했다.


결국 처음부터 양자택일은 아니었던 거다. 물론 현실을 바탕으로 한 아빠의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딸은 인정했지만, 그 반대의 과정에서 딸에게 상처를 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여전히 가슴이 아프다.

어른이 설계하는 삶의 방향과 목표가 반드시 행복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겠지만 어른들은 위험한 행복에 대한 모험보다 덜 위험한 안정적인 길을 선호하게되니 꿈과 현실 사이에서 아이들과 갈등을 계속 겪게 되는 것 같다.


작은 딸은 이미 중학교 때부터 실용댄스에 대한 진로를 현실적으로 고민했다. 열심히 댄스부 활동을 하면서 그렇게 행복해할 수가 없었지만, 역시 부모로서 적극적인 지지를 해줄 수는 없었다. 그래도 댄스학원을 한 번씩 보내주기는 했다. 그게 이 아이의 숨구멍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드림하이>를 다시 보니 꿈과 현실의 조정 가능한 지점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16화에서 아이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들끼리 이런 대화를 한다.


부럽네요.

- 뭐가요?

쟤들 말이에요. 뭘 해도 빛나고 예쁘잖아요. 심지어 좌절하고 있을 때마저도. 이 나이 되니까 저 시절이 너무도 부럽더라구요.

- 이 말이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세상은 참 공평하죠. 쟤들은 그걸 모르지만, 우린 알잖아요.



도전하는 모습은 좌절조차 빛나고 예쁜 거라는... 그건 젊은 시절 한때 더 의미 있게 찬란하게 다가오는 기회라는 사실...


사실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부적응이나 집안 형편 등의 문제가 아니라면 대학 휴학은 보편적인 일이 아니었다. 바로 취업이 되는 경우도 많은데 굳이 고민을 더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대학생들의 휴학은 필연적인 과정이다. 고민과 방황의 시간도 더 길어졌고, 취업까지의 터널도 더 길어졌다. 누군가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터널이 펼쳐지기도 한다. 임용시험도 갈수록 모집정원이 줄어들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재수할 일이 없었던 교대조차도 삼수 이상 하는 경우도 흔하다. 스카이 대학이 취업을 보장해 주는 것도 옛말이다.


그럼에도 빠르게 자리를 찾는 것보다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시행착오와 어느 정도 분량의 좌절을 겪지 않으면 그 길을 찾아갈 수 없다. 심지어 자신이 뭘 좋아하고 뭘 원하는지 모르는 젊은이들도 많아졌다. 기성세대의 잔소리에 저항하던 젊은이들이 현실의 벽에 자꾸 부딪히면서 오히려 기성세대처럼 갈수록 행복에 대한 모험보다, 덜 위험한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패와 좌절에 대한 재정의가 시급하다. 기성세대가 겪었던 시대상을 젊은이들에게 강요하거나 대입할 수는 없다.


둘째 딸은 마지막 고등학교 축제에서 댄스 무대에 섰다. 자신이 짠 안무로 오프닝을 하고 팀 댄스를 진행하는 영상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이렇게 딸이 저 순간 저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그 행복을 혹 내가 막아서는 건 아닌지...


딸은 꿈을 키우고, 난 현실을 다지는 역할이라 미화할 수도 있겠지만... 딸은 이미 댄스에 대한 열망이 있음에도 현실에서 자신이 해야 할 할당량에 대해 스스로 자각하고 노력해왔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송구영신 예배에서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님은 토끼와 거북이에 대해 언급하셨다.

부지런함의 반대는 게으름이 아니라 조급함이라고 하시면서 잠언 말씀을 인용했다.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잠언 21:5



그리고 거북이의 느림에 대해 행복을 이야기했다. 토끼가 낮잠을 자거나 안 자거나 상관없이 거북이는 느려도 그저 경주하는 과정 자체가 행복했을 거라고.

이기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 아니고 그저 자신이 가야 할 그 과정 자체가 행복인 거라고...


1등을 하고, 어딘가 반드시 도달해야만 하는 건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도전을 안 하기도 하지만, 완주를 못해도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큰 딸이 예담학교를 가서 완주하지는 못했지만 음악의 즐거움과 일상의 의미를 스스로 발견했던 것처럼... 실패로 규정되는 우리 삶의 체험은 애초에 없는 거다. 그것에 대한 반응만이 실패를 규정짓는 것일 뿐...

그러니까 일단 도전해보는 거다.


<드림하이>에 이런 대사도 있었다. 이사장이 학교 입학 오디션할 때 일류와 삼류를 구별하는 기준이었다.


일류는 실력 있고 노력하는 학생이라고 생각해요. 이류는 실력은 없지만 노력하는 학생. 그리고 3류는...

- 제가 실력도 없고 노력도 안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삼류는 편견 있는 학생입니다.


정말 멋진 분석이다. 천재성을 요구하는 분야가 아니라면 노력으로 어느 정도 다 극복이 된다.


수학 일타강사 정승제 선생님은 수능수학에 대해 수학머리를 타고났으면 남들보다 더 수월한 건 맞지만, 노력으로 극복이 다 가능하다고 했다. 마치 체육시간에 운동신경 뛰어난 애들이 더 유리하지만 그렇지 않앋느 배구토스나 줄넘기 등 실기시험에 노력으로 만점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면서.


그러나 자만심이나 확증편향이나 자기 고집에 빠져 있는 편견은 그 자체가 스스로를 방해하는 장벽이다.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다.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겸손한 순간 진정한 배움과 성장이 시작된다. 나이와 상관없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두꺼운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한다.

삼류의 편견은 자신의 성장도 막지만, 다른 이들의 성장에도 해가 된다.


나의 새해 목표 중 하나는 삼류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삼류가 되지 않도록 적어도 이류에 머물면서 일류를 꿈꾸는 것이다.


모두 꿈꾸는 한 해가 되시길...



<드림하이> 플래시몹을 보면서 2013년 예전 근무하던 대구여고 체육대회 플래시몹이, 지금보다 더 젊었던 나의 열정과 함께 기억이 나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5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반별로 수학여행 가서 맞춰보고 처음으로 전체 대형으로 진행했던 깜짝 쇼.. 그 감동을 한 번 더 소개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3GLjYMhiJ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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