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게 솟은 빌딩, 화려한 서양식 백화점, 동양식 차이나타운, 한국 식당, 소형 및 대형 마트, 시끌시끌 복잡한 재래시장 그리고 버스를 타고 조금만 달려나가면 만날 수 있는 해변까지 한마디로 없는 게 없는 곳이 호주 시드니이다. 오전에는 백화점이 있는 센트럴에서 마음껏 쇼핑할 수 있다. 돈이 없어도, 아이 쇼핑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점심으론 10불짜리 스테이크를 먹어야지. 호주산 등심 스테이크에 샐러드와 감자튀김까지 푸짐하게 얹어주는 이 디쉬를 10불에 먹을 수 있다니, 진정한 만 원의 행복이다.
배도 불렀겠다, 바다를 보러 가야겠다. 센트럴에서 버스를 타고 30분간 열심히 달린다. 그러면 점점 건물들이 낮아지고, 큰 도로를 지나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간다. 끽해야 2층짜리 집들이 오순도순 붙어있는 동화 속 마을 같은 곳. 너무 높은 빌딩에 적응이 되어버린 나는, 이 낮은 주택들로 이루어진 동네가 난쟁이들의 마을같이 마냥 귀엽다.
그곳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반짝이는 바다가 나타난다. 본다이 비치다. 본다이 비치를 보고 내가 느낀 첫 감정은 "세상 근심 없어지게 만드는 아름다움" 이었다. 그리고 "마음을 탁 트이게 하는 광활함". 그 순간엔 그저 이곳에 올 수 있음에 한없이 감사했다. 뭣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달려왔는지 멋쩍은 회의감이 들었다. 나 자신에게 이렇게 보상다운 보상을 준 적이 언제였는지…. 본다이 비치를 따라 산책로가 나 있는데, 이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면 또 다른 모습의 본다이 비치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그렇게 바다를 마음껏 즐기고, 해지기 전에 다시 센트럴로 돌아온다. 저녁은 호주산 쇠고기와 특제 소스가 마구 들어간 수제 버거다. 오직 호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호주산 쇠고기와 특제 소스의 조화가 만드는 맛. 한입 무는 순간, 입에서 사르르 녹아내린다. 거창한 맛집을 찾을 필요도 없다. 시드니에서 수제버거와 스테이크는 어느 집을 들어가든 맛있으니까.
저녁을 먹은 이곳에서 십오 분만 걸어가면 오페라 하우스를 만날 수 있다. 동네를 산책하듯 룰루랄라 걸어가서 오페라 하우스를 맞닥뜨리면, 세상에 내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괜찮은 곳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 이런 것이 여유구나. 이런 것이 여유에서 나오는 행복이구나. 나 지금, 행복하구나. 그리고 오페라 하우스 지하에 있는 펍에 가서, 코로나를 한 병 주문한다. 코로나 위쪽에 대롱대롱 달린 레몬을 쏙 하고 안으로 넣으면 짜르르 탄산이 퍼져나간다. 입안에 코로나를 한 모금 머금고 다시 오페라 하우스를 바라본다. 그렇게 눈에 이 장면을 담고 또 담는다. 지금의 감정을 가슴 벅차도록 느껴본다.
시드니에서 내가 배운 것은, 소소한 즐거움, 여유, 그리고 거기서 오는 행복이었다. 한국에서는 오직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남들보다 좋은 어떤 것을 가질 때 기쁘다고 생각했다. 그냥 이 환경이 주는 아름다움과 여유에서 느끼는 행복은, 어떤 행복보다 가볍고 상쾌하며 무조건적이었다. 이 행복을 맛보기 위해서 그토록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새로운 행복을 맛보면서, 내 마음의 크기도 한 뼘 자라는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