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숭생숭한 나의 마음
상견례 전 날 엄마와 같이 팩도 하고 내일 잘 끝났으면 좋겠다 하는 서로의 바람도 나누고 자리에 누웠다. 일찍 누웠는데도 잠이 안 와 몇 시간을 뒤척였다. 결혼 준비 카페에서 ‘상견례’를 검색했다. 서로 마음 상한 상견례 후기가 왕왕 나온다. 잠은 더욱 멀리 떠나버렸다.
결국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새벽 늦게 자서 퉁퉁 부은 얼굴에 화장을 했다. 미리 준비한 옷도 다리고 머리도 몇 번이나 다시 하고, 깔끔하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엄마와 아빠 모두 겉모습에 크게 신경을 썼다. 식당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내가 떨린다 하자 엄마는 자신은 하나도 떨리지 않는데 왜 떨려하냐며 깔깔 웃는다. 평소라면 그러게 하고 같이 웃었을 텐데 나도 예민해진 탓에 ‘내 결혼이니까 엄만 안 떨리고 내가 떨리지’ 하고 못난 말이 튀어나왔다.
엄마한테는 며칠 전부터 딸인 내 단점 이야기하며 너무 깎아내리지 말 것, 돈 얘기하지 말 것을 당부해두었고 아빠는 개인적인 질문 같은 것은 삼가라고 말해 놓았다. 그래도 걱정되는 맘 별수 있나. 했던 말들을 다시 반복하며 주의할 것들을 상기시켰다. 첫째, 둘째, 셋째 요래 가면서 어젯밤 결혼카페에서 본 주의사항들을 읊었다.
다리가 불편한 아빠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덜 보이고 싶어 예약해놓은 식당에 미리 도착해 앉았다. 상견례까지 남은 시간은 20분 남짓. 별 말은 안 해도 긴장되는지 아빠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무료한 시간에 핸드폰 게임하길 좋아하는 엄마는 핸드폰 게임을 무의식적으로 켰다가 내 제지에 도로 집어넣었다. 이마가 보이는 것이 예쁘다며 동생 앞머리도 다시 매만져주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오빠 쪽 부모님께서 들어오셨다.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지요?"하고 몇 번 연습한 첫인사를 아빠가 건넸다. 식당에서는 바로 빠르게 음식을 내왔는데 그게 어찌나 고맙던지. 물 한잔과 호박죽을 맛보며 긴장되는 마음을 조금 추슬렀다.
상견례 후기를 보니 어른들께서 다들 잘 이야기 나누신다고 하더니 그게 사실이었다. 가족들 얘기, 고향 얘기, 본인 젊었을 적 이야기 등. 딱 남들 글에서 본 주제들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혼 준비 이야기, 예단 예물 이야기도 슬쩍 나왔는데 내가 돈 얘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해놓은 덕인지 엄마가 크게 호응해주지 않아 이야기가 깊게 흘러가진 않았다.
새로운 음식이 끊임없이 나왔다. 이제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쯤, 식사가 끝났다.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주는 대로 대충 넣었던 것 같은데 무척이나 배가 불렀다. 그런데도 수정과, 커피까지 야무지게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벗어놓은 겉옷을 다시 입는 순간, 끝났다는 생각에 기쁨의 미소가 나왔다.
나는 차를 식당 앞에 세웠고, 오빠는 주차장에 세웠단다. 주차장까지 같이 가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오빠와 갈라져 우리 가족끼리 돌아섰다. 다리가 불편한 우리 아빠를 식당 주인아저씨가 부축했다. 그 정도로 못 걷진 않는데, 나는 창피한 마음이 들어 먼저 휘적휘적 걸어 차에 올라탔다.
더운 날인 탓에 차 안이 더웠다. 에어컨을 틀고 시동을 켜고 나는 슬쩍 가족들 얼굴을 살폈다. 나의 예비 시부모님을 어떻게 봤을까, 그분들이 하신 얘기를 듣고 혹시 서운하건 없었나 눈치를 봤다. 그건 내가 이 결혼(사실은 결혼식)을 무사히 잘 마치고 싶어서이기도 했지만, 내가 듣기엔 마음에 걸리는 말들이 몇 개 있어서였다.
엄마의 평. 엄마는 두 분 다 좋으신 분들 같단다. 연세가 있으신데 생각이 젊으신 것 같다고 좋단다. 오빠가 아버님을 많이 닮았다고 했다. 어머니도 고상하고 미인상이라며 세팅된 머리가 잘 어울리신단다. 아들 엄청 예뻐하시네, 하며 살짝 걱정스러운 맘을 내비쳤다가 이내 그럼 저렇게 훌륭한 아들을 뒀는데 예쁘겠지, 하며 시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한다.
아빠의 평. 내외가 인상이 좋으시다. 기품 있어 보이 신다. 문경이 고향이시라고? 문경 좋지. 맨 칭찬이다.
동생의 평. 아, 배불러.
큰 고비 잘 넘겼다. 잘 끝나서 다행이다. 다들 좋게 보니 좋네. 말해놓고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어쩜 저리 눈치가 없을까.
좋은 혼사 자리가 많았다, 우리 아들이 서른둘에 결혼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나를 만나지 않았던), 우리 아들은 성대하게 결혼식을 치러주고 싶었다, 뭐가 이리 급하게 가는지 모르겠다, 아버님 다리가 많이 불편하시구나, 하는 말들이 콕콕 맘에 박힌 채로 돌돌돌 구르며 여기저기를 찌른다. 날 별로 맘에 들어하시지 않는구나, 난 그 말을 듣고 단박에 알아채겠던데. 우리 엄빠+동생은 그럴 리 없다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고 싶었던 것인지, 내가 걱정스럽단 얘기는 조금도 하지 않는다.
어휴, 시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며느리가 내가 될지 몰랐지. 갑자기 앞이 캄캄해지며 우리가 결혼식을 잘 끝낼 수 있을까, 걱정이 밀려온다. 여태까지 결혼식을 위해 낸 계약금들을 살펴봤다. 200만 원.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아, 위약금도 있구나. 그건 좀 나중에 계산하고.
좋은 대학에 좋은 직장까지 다니는 아들이 많이 아깝겠지, 하다가도 나도 우리 집에서 귀한 딸인데, 나도 좋은 직장 다니는데, 하며 눈물이 난다. 아직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몰라서 그래, 마음을 잡다가도 시어머니의 탐탁지 않음의 원인이 내가 아니라 우리 가족인 것 같아 다시 또 무너진다. 괜히 탓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 화살이 가진 것 없고 못 배운 내 부모에게 쏠리는 것 같아 세차게 고개를 젓는다. 아니, 아무리 속상해도 이렇게까지 바닥으로 가진 말자.
예쁨 받는 며느리는 아니어도 미움받는 며느리는 되기 싫었다. 제 아들을 아까워하는 모습에 좋은 사윗감이 생겼다며 기뻐하는 우리 부모님의 얼굴이 겹쳐진다. 방문 사이로 울음소리가 새어나갈까 봐 이불을 덮어쓰고 끅끅 운다. 울어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알고 있다. 해결을 바라고 흘리는 눈물은 아니었다. 늘 그랬듯.
어젯밤처럼 결혼 준비 카페에 들어간다. ‘시어머니가 저를 마음에 안 들어하세요’ ‘나를 탐탁지 않아하는 시댁’ 등을 검색했다. 생각보다 관련 문서들이 없어 네이트 판으로 옮겨 같은 문장을 검색했다. 검색 결과는 많지만 딱 내 맘 같은 글은 없다. 아, 예비 시어머니가 맘에 안 들어하는 예비 며느리는 나뿐이란 말인가. 다시 또 눈물이 찔끔 흐르는 상견례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