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워진 날씨에 어울리는 곳이었어.
비수기인 데다 운이 좋았어.
꽤 좋은 가격으로 리조트에 묵게 되었거든.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라는 하늘의 뜻일까,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어.
아무 데도 가지 못한 채 리조트에서 하루를 보내게 되었어.
평생 처음 해드리는 요리를 맛 본 부모님은 뭘 해 드려도 “맛있다”는 말씀만 하셨어.
밥을 먹은 후엔 도란도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어.
이야기의 주인공은 주로 제이였는데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부모님은 제이를 마음에 들어하셨어.
라고스를 떠나 파로에 있는 공항으로 갔어.
우리는 이곳에서 렌트한 차를 반납하고 버스를 탔어.
스페인 세비야로 향하는 버스.
아빠는 이 모든 것을 신기해하셨어.
휴게소에 들렀는데 어느 순간 바뀌어 있는 언어에,
얼핏 다른 느낌의 사람들,
구글맵을 켜보니 이미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
난 이미 몇 번 경험한 덕에 담담한 순간을 부모님은 처음이기에 눈에 담기 바쁘셨어.
나에겐 두 번째인 세비야에 부모님과 함께 오게 될 줄은 몰랐어.
세비야 대성당을 둘러보고 히랄다 탑에 올라 세비야의 전경을 보았어.
이슬람 문화의 흔적이 남아 묘하게 이국적인 거리를 걸었어.
거리를 거닐어 도착한 스페인 광장.
우리는 인공호수에서 노를 젓는 배도 타고, 플라멩고 공연도 봤어.
나는 이미 봤던 풍경들.
그 풍경들을 보고 계신 부모님들.
난 풍경들 대신 부모님을 눈에 담았어.
아름다운 꽃과 화분으로 장식된 코르도바,
코르도바에서는 시원한 맥주를.
높은 절벽과 높은 다리로 유명한 론다,
론다에서는 소꼬리찜에 와인을.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는 남부 도시를 지나 우리는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어.
내가 그와 연애를 시작하게 된 도시에 부모님과 함께 온 거야.
부모님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었던 건 ‘사그라다 파밀리아’ 였어.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건축물에 들어가는 천재 가우디의 역작.
부모님은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마주하신 순간 “이야-"하고 탄성을 내지르셨어.
가우디가 어떤 사람인지,
가우디의 죽음은 어땠는지,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숨어있는 의미.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해 드렸어.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둘러보며 엄마는 점차 말이 없어지셨어.
돌아본 엄마의 눈가는 어느새 촉촉하게 젖어있었지.
“어우.. 야, 눈물이 날 것 같아.”
바르셀로나에서는 부모님께 특별한 친구를 소개해드렸어.
바로 나의 여행이 처음 시작됐을 때 알게 된 ‘루벤’이야.
평소 외국인 친구를 가지고 싶어 하셨던 아빠를 위한 자리이기도 했어.
고맙게도 루벤은 나의 부모님과 함께 바르셀로나에 왔다고 하니 기뻐하며 만남을 수락했어.
제이의 친구가 나의 친구가 되었고, 이제는 내 부모님의 친구가 되는 순간이었어.
이미 내 SNS에서 몇 번이나 봐 온 탓에 엄마는 한눈에 루벤을 알아봤어.
사실 나도 멀리서 오는 루벤을 보고 긴가민가 했는데 말이야.
우리는 타파스 바에서 재즈바로 자리를 옮겼어.
아빠의 엉성한 영어는 루벤을 즐겁게 했고,
현지인 친구와 어울리고 있다는 분위기는 아빠를 즐겁게 했어.
여기도 저기도 유럽식 건물들,
활기가 가득한 사람들,
밤이고 낮이고 왁자지껄한 분위기,
긴 역사만으로 매력인 스페인.
짧지만 굵게 여행한 스페인, 부모님의 기억에는 어떻게 남게 될까.
신발을 타고, 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여행이 끝나고 우리는 포르투로 돌아왔어.
포르투에 돌아오고 정확히 4일 뒤에 부모님은 한국으로 떠나셨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마음이 힘들더라.
아빠도 같은 마음인지 눈물이 맺혀있었어.
그 강한 아빠도 헤어짐이 아쉬우셨던 모양이야.
부모님은 반년 뒤에 다시 만나게 되겠지.
당분간은 우울할 거야.
잠깐이지만 함께 한 시간이 그리울 테고.
하지만 괜찮아.
2주간의 여행으로 만든 추억이 기억 속에 가득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