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
힐가든이라고 알려진 포르투의 유명한 야경 포인트야.
이곳엔 현지인들, 여행자들이 해가 질 무렵이면 모이곤 해.
뉘엿뉘엿 지는 해가 너무도 아름다워 야경 맛집이라고 소문난 힐가든.
힐가든은 제이의 하루 일과가 끝나는 곳이기도 해.
해가 질 무렵이면 그를 마중하러 힐가든으로 향했어.
손에는 SUPER BOCK 혹은 포트와인을 들고서.
그의 일이 끝나길 기다릴 동안 들고 간 술을 마시며 풍경을 구경했어.
내가 바라본 건 포르투의 전경일까, 시시각각 변해가는 하늘색일까.
저마다 다른 언어의 말소리, 이쪽저쪽에서 들리는 서로 다른 음악을 BGM으로 삼았지.
알딸딸해진 기분에 취할 즈음엔 카메라를 든 그의 모습이 보였어.
반가움 마음에 몇 모금 남은 술을 벌컥벌컥 마시기 일쑤였어.
이건 하루 중에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었어.
힐가든에서 바라본 맞은편의 풍경 중, 어떤 성당의 불이 켜지면 그의 일 중 97%가 끝이 났어.
나는 일이 끝난 그에게 다가가 세상 천진난만하게 웃여 보이며 말했어.
“가자:D”
매일같이 그를 마중 나간 건 아니었어.
때로는 귀차니즘이 발동할 때도 있었고,
저녁 준비 시간이 늦어져서 그를 마중하러 가지 못할 때도 있었어.
그런 날이면 이제나 저제나 언제 올지 모르는 그를 문 앞에서 기다렸어.
문이 활짝 열리면 주인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발을 동동 굴렸지.
그를 마중 나가는 날 중엔 이런 날도 있었어.
그날은 날씨가 무척이나 좋아서 소풍이 가고 싶은 날이었어.
날 좋을 때 좋은데 앉아서 김밥이 먹고 싶어 지지.
그래서 부랴부랴 장을 봐와서 김밥을 쌌어.
김밥만 먹기엔 심심하니까 고구마 맛탕이나 어묵볶음을 챙겼어.
그의 촬영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는 게 미션이었어.
아슬아슬하게 준비한 도시락을 들고서 힐가든에 도착했어.
다행히도 그의 촬영이 조금 늦게 끝난 덕분에 여유롭게 도시락을 펼쳤어.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어.
그의 눈이 그의 얼굴만큼이나 동그래졌어.
“우와! 이게 다 뭐야?”
“디스 이즈 포 유:)”
옆구리가 터지지는 않았지만 엉성한 모양의 김밥.
도시락통을 열자 참기름과 깨의 고소한 냄새가 풍겨져 나왔어.
그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어서 내 어깨를 으쓱하게 했어.
“와! 힐가든에서 김밥 먹는 사람 우리밖에 없을 거야.
아니지, 우리가 처음이겠다! 냄새 장난 아니다!”
김밥엔 사이다라고들 하는데, 우린 어른이잖아.
당연히 상콤한 써머스비(애플 사이다)를 챙겨갔지.
하지만 밥 먹을 땐 술을 안 마시는 제이를 위해서 콜라를 챙겨갔어.
밥 먹을 땐 콜라가 있어야 한다나 뭐라나.
양볼이 미어터지게 김밥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는 그를 보며 행복해졌어.
초등학교 때 소풍으로 갔던 박물관이나 무슨 기념탑 앞이 아닌,
아름다운 포르투의 전경 앞에서 김밥을 먹는다는 건 최고의 소풍이 아닐까.
가장 절친했던 친구와 바꿔먹던 유부초밥이 없어도,
내 입에 김밥을 넣어줄 제이가 있어서 더욱이 행복했어.
이날 김밥 소풍이 그를 꽤나 즐겁게 한 것 같아서 번외 편을 생각했어.
똑같이 날이 좋아 소풍 가고 싶은 날,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르게 밤소풍을 생각해냈지!
밤이슬이 촉촉하게 잔디 위에 내려앉은 시간에 그를 마중하러 힐가든에 갔어.
이날의 메뉴는 김밥이 아닌 김치볶음밥이었어.
가로등 아래에 자리를 펴고 앉아서 포르투의 야경을 보며 밤 산책을 즐겼어.
그와의 소풍은 내게 이벤트와도 같았어.
그를 위해 도시락을 싼다니.
어느 순정 만화책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잖아.
분명 그에게도 좋은 이벤트였겠지.
이런 여자가 어디 없다는 걸 알아나 주려나:)
촬영을 하는 2시간 동안 쉬지도 못하고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포르투를 거니는 제이.
일이 끝날 때 즈음엔 늘 어마 무시한 허기가 그를 찾아왔어.
내가 마중을 가도 함께 집으로 가는 동안에 그는 늘,
“아 완전 배고파.”라고 말했었는데.
도시락을 챙겨간 날에는 그 허기를 바로 달래줄 수 있어서 좋았어.
일이 끝난 그가 집에 오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정말 느리게 갔어.
그래서일까.
그를 마중하러 가는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늘 종종걸음이었어.
그에게 조금 더 일찍 “수고했어. 오늘 촬영은 어땠어?”
라고 말할 수 있는 게 마중을 가는 이유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