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닌 나로, 치앙마이 한 달

by 하니작가

다시 치앙마이에 갔다.
이번에는 오롯이 혼자였다.


아이와 함께 1년 6개월을 살던 시간은, 나를 위한 삶은 아니었다. 온전히 아이에게 맞춰진 일상이었다. 아이의 학교와 학원 스케줄에 맞춰 내 수업과 강의를 조정했고, 약속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치앙마이에 온 이유는 단 하나, 아이 교육이었다.


한국에서 미친 경쟁 속에 학원을 전전하는 삶이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좋은 대학을 나온다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내가 받지 못해 아쉬웠던 것을 아이에게 주고 싶었다. 그러면 아이가 행복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아쉬움은, 거기서 끝냈어야 했다.


아이와 나는 성향이 완전히 다르다. 하나의 인격체인 아이를 내 희망에 맞춰 움직여주길 바랐고, 그것이 아이의 행복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교육에서의 탈출이 답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이는 한국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1년 반의 경험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래서 작년 2월 말,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이는 놀라울 만큼 빠르게 1년 반의 공백을 따라잡았다. 졸업식 때 학년대표 중 한명으로 표창장도 받고, 원하는 고등학교에도 합격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몰랐던 아이의 능력과 재능을.
아이 스스로 길을 찾을 힘이 있다는 것을.


사실 미국과 치앙마이 사이에서 고민했었다. 아이는 미국 국적이 있어 공립학교를 무상으로 다닐 수 있었다. 어쩌면 그곳에 더 잘 적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는 나와 함께 지내길 원했고, 나 역시 아이를 혼자 미국에 보낼 용기가 없었다.


작년 여름, 아이와 함께 뉴욕과 토론토를 한 달간 여행했다. 고등학생이 되면 이런 긴 여행은 어렵겠지 싶었다. 아이는 뉴욕에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더 넓은 세상을 보며 아이의 꿈이 더 커지길 바랐던 건, 어쩌면 나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이는 중학교 3학년을 최선을 다해 보냈다.

그리고 나는 1년 동안의 마음 졸임에서 비로소 해방되었다.


2025년,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고 온라인 수업도 꾸준히 했다.

나는 한 번도 일을 쉰 적이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에게 제대로 된 쉼을 선물하고 싶었다.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 한 달간 치앙마이에 다녀와도 될까?”

아이는 웃으며 말했다. 아빠가 잘 챙겨줄거고 자기는 윈터스쿨에 가니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고등학교 교사인 언니도 니엘의 공부 가이드라인을 잡아주고 문제집도 함께 고르겠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가족의 지지 속에서 나는 다시 치앙마이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느껴진 건 편안함과 아늑함이었다.

노이, 조조, 리차드, 스티븐, 지앱, 비자

나를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의 따뜻한 환영 속에서

나는 요가를 하고, 하이킹을 하고,

하루를 즐거움으로 채워갔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이루려 하지 않았다.
규칙적인 요가와 하이킹 외에는 계획도 목표도 두지 않았다.

걷고 싶으면 걷고,
마사지를 받고 싶으면 받고,
책이 읽고 싶으면 카페에 갔다.


그렇게 흘러간 4주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지나갔다.

친구들은 말했다. 내년에도 기다리겠다고.
힘들 때도, 기쁠 때도, 말하고 싶을 때 언제든 연락하라고.

요가 선생님 조조는 내 손을 잡고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왜 명상이 필요한지,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따뜻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치앙마이가 좋은 이유는 분명하다.
나를 있는 그대로 아껴주고 응원해주는 친구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 다시 치앙마이에 가기 위해, 나는 2026년을 단단히 살아낼 것이다. 지금은 머릿속이 복잡하고 여러 일이 한꺼번에 몰려와 버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2025년을 나름 치열하게 살아낸 것처럼

이번 해도 하루를 열심히 채우고,

미련 없이 지워내고 싶다.


나이는 숫자로 기록되지만, 나에게는 감정으로 남는다.
나는 그 감정을 활기차게, 단단하게 살아가고 싶다.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잘 살아내는 것,

그것이 내가 나이를 살아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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