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와 함께 이룬 작가의 꿈
‘갑천 씨가 죽었다’
한 문장을 쓰고서 더 이상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창밖에 흐르는 빗물처럼.
해마다 5월이면 슬픔이 방문했다. 편애하는 4월의 분홍빛 속에서 하루하루 소소한 행복을 채우다 보면 5월에 당도했다. 계절은 초록으로 물들어 가는데 묵직한 슬픔이 가슴 언저리를 짓눌렀다. 5월은 아빠 갑천 씨의 기일이 있는 달이다.
스무 살 되던 해, 아빠를 뇌종양으로 잃었다. 콧줄과 소변줄을 끼고 의식 없는 아빠를 보러 병원에 가는 것과, 더 이상 아빠를 보러 갈 수 없는 것. 그 두 가지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막한 다름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스무 해 넘게 걸렸다.
연애할 때, 신부 입장할 때, 첫애를 낳았을 때, 아빠가 보고 싶어 울었다. 비슷한 연배의 어르신을 마주할 때마다 아빠가 그립다고 어린양 부릴 수도 없었다. 그때의 엄마 나이를 넘어서 아빠의 마지막 나이를 향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집, 노트북을 켜고 커피 한 잔을 곁에 두고 앉았다. A4 용지 위로 깜빡이는 커서를 오래 바라보았다. ‘갑천 씨가 죽었다’ 일곱 글자를 시작으로 매일 노트북을 켰다. 소년 청년 남자 남편 아빠 그리고 임종을 앞둔 사내의 삶을 글로 적었다. 글을 쓰며 여러 번 작게 울었고, 마지막 마침표를 찍고 크게 오래 울었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드디어 오롯이 슬픔을 마주해 냈음을. 그리고 궁금해졌다. 나만의 일기가 모두의 에세이가 될 수 있을까.
오래고 깊은 고민 끝에 브런치 스토리에 '잘생긴 갑천 씨'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속을 꽉 채운 하트와 공감의 댓글에 종종 울컥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함에 마음이 따땃해졌다.
삶과 사람을 담는 출판사에 투고 메일을 보냈다. ‘세심하게 고른 단어들이 와닿았다’는 한 문장에 정성을 다해 매달렸다. 여러 계절을 거치며 매만지고 다듬은 글을 모아 나의 책이 출간되었다.
짧지만 깊고 농밀한 사랑을 주었던 아빠를 자랑하고, 모든 시절을 살아낸 엄마에 대한 애정을 글로 적었다. 나만의 이야기는 타인의 공감을 얻는 에세이가 되었다. 애써 써낸 마음은 나를 위한 것이었고, 동시에 독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애쓰는 모든 시절은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의 시작에는 브런치가 있었다.
나를 제일 처음 '작가'라고 불러주고, 혼자만의 글을 연재할 길을 열어주고, 슬픔을 마주한 용기로 또 다른 성장을 위해 한 걸음 나아가라고 응원을 아끼지 않는 브런치 덕분에, 나는 새 계절 새 마음으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