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배 어디로 갔어?
친정아빠가 지난 금요일 밤에 오셔서 오늘 점심을 드시고 가셨다. 2박 3일 함께했는데 1박 후 아침에 굿모닝을 외치는 딸에게 "니 살쪘나?" 묻는다. "(순간 빠직하며)응. 살쪘따!!!" 했더니 "니가 지금 살찔나이가. 왜쪘노. 운동한다더니 소람이 데리고 다니면서 그래가 될 일이가. 아빠가 이래 말하는 건 무슨 뜻이고. 당장 빼라!!!"
헐! 다다다닥. 아침부터 누군가 나에게 대놓고 살쪘다는 말을 하는 것이 몹시 언짢았다. 그 말에 기분이 나쁘다는 건 그 사실을 이미 나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3월부터 야금야금 찌운 살이다. 당시 후방추돌 교통사고가 있었는데 그 후로 운동을 못했던 시기와 더불어, 둘째를 계획했다가 실패한 지 한두 달간 테스트 시기마다 스트레스로 시간개념 없이 막 먹은 대가였다. 그럼에도 남편은 나에게 살쪘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내가 다이어트를 한다 하면 안 먹어서 살 빼면 확 늙는다고 겁만 줬다.
친정은 외가나 친가나 살찐 사람이 없고 대체로 모두가 보통보다 마르거나 늘씬한 편이다. 엄마는 44 사이즈다. 아빠도 60대임에도 뱃살하나 없다. 아빠가 와계신 아침에는 눈을 뜨면 촥촥촥촥 피부에 에센스 바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집 밖에 쓰레기 버리러 갈 때도 말끔하고 예쁘게 입고 나가신다.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대부분 드레스, 각양각색 스타킹, 그리고 쫙 올린 올림머리였다. 그게 불편한 기억으로 남아있어 소람이는 소재가 편한 옷, 무릎을 덮는 바지, 시보리가 있는 바지를 입힌다. 미혼일 적에는 꽤 몸매에 자신이 있어서 골반라인을 강조하는 h라인 스커트 또는 스키니를 즐겨 입었다. 지금 내 허리에는 단단하고 두꺼운 지방층이 둘러져있다. 제왕절개 자리에는 두툼하고 기다란 지렁이 켈로이드가 자리했다.
외모에 신경 많이 쓰는 친정식구들은 어딜 가나 주목받는 외모며, 나에게도 직설적이다. 나의 살찜 정도에 제일 예민한 두 사람은 친정 부모님이다.
그저께부터 이미 마음먹고 저녁을 굶고 있는데 아빠는 내 속도 모르고 팩트로 두들겨 팼다. 남편에게 쪼르르 가서 고자질을 해봤다. "나 진짜 그 정도야?" 남편은 살기 위해 착한 거짓말을 한다. "에이 아버님이 그냥 하시는 말이겠지.." 큰 위로는 되지 않는다. 살찐 것은 사실이니까.
기분이 팍 상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가, 밑반찬을 만든다고 나름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소시지야채볶음, 오이볶음, 두부조림을 만들었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아이를 씻긴 후 머리를 말려줄 때다. 침대에 누워있는 남편 배를 봤는데 어라, 남편의 배가 평소보다 절반이나 들어가 있었다. 배신감이 들었다. "뭐야!! 오빠 배 어디 갔어. 주짓수 네 번 갔는데 벌써 배가 없어졌어?!" 최근 주짓수를 시작한 남편이 금세 홀쭉해 보였다.
"아 그 정돈 아닌데 그냥 조금 들어가긴 한 듯?"
"우와... 부럽다. 나도 주짓수 해볼까." 했더니
내 허벅지에 붙어서 머리를 말리던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 배 어딨어?!
뒤로 갔어 옆으로 갔어?!!
어디로 간 거야??!! 크크크크킄"
정말 오랜만에 남편, 나, 아이가 동시에 배꼽이 빠지게 웃었다. 마음속 시리어스 하게만 맴돌던 것이 아이로 인해 유머가 되었다.
"돼지 될까 봐 엄마는 저녁 이제 안 먹을래. 다이어트!! 살 뺄 거야."
용기를 내서 체중계에 올라가 봤다. 목표는 -7kg
과연 얼마나 걸릴 텐가. 기분 나쁜 다이어트가 조금 즐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