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이야기해 줘서 고마워
학원에서 한 달에 한 권 나오는 지류 학습지(숫자 숙제)를 알려주다가 아이에게 화를 낸 적이 있다. 부글부글 끓어오른 주전자가 되어서 "니 손가락이 몇 개야!!"를 외쳤다. 다음 날 학원에서 친구 영민이가 숙제를 다해서 선생님께 칭찬받는 모습을 보고는 "영민이는 어떻게 숙제를 그렇게 잘하는 걸까?" 집에 오는 길, 부러움에 혼잣말하는 딸을 봤다. 딸아이는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중에도 빨리 숙제하자며 나를 재촉했다. 아이는 숙제 중에 엄마가 시뻘건 주전자가 되자 풀 죽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만하고 싶어 졌어.." 그때야 가슴이 철렁. 아차 싶다. 제정신이 든다.
그날 밤 아이에게 사과하면서 앞으로 엄마가 조심할 테지만 또 엄마가 숙제를 알려주다가 화를 내면 "엄마도 내 나이 때는 몰랐을 거야."라는 말을 해달라고 했다. 이틀뒤 또 주전자가 되려는 나에게 아이는 주문해 뒀던 문장을 처방해 줬다. 그 문장이 뇌리에 박혀 이후 2주째 선방 중이다.
학원 방학이 끝나고 돌아온 영민이가 수업에 들어가기 싫다며 할머니에게 매달려있다. 어찌저찌 5분만 수업하고 나오자고 달래서 영민이도 수업에 들어갔다. 수업이 끝난 후 리뷰시간, 선생님께서는 소람이가 의욕적인 편이라 함께하는 친구들도 더 열심히 하는 경향이 있다고 칭찬해 주라고 하셨다.
숙제 잘하는 영민이를 부러워하는 딸아이 기를 살려주고 싶었다.
"소람이가 영민이를 잘 도와준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져서 수업을 잘 마칠 수 있었데. 선생님께서 칭찬해 주라고 하셨어! 소람이 덕분이야."
안전벨트를 풀며 아이가 말했다.
그렇게 이야기해 줘서 고마워.
그 말을 들으니 행복한 느낌이야!
단순하고 심플하다. 간결한 한 마디에 마음이 찡긋하다. 나는 어른이고 엄마다. 사회생활을 10년 넘게 하면서 다양한 명도와 채도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봤다. 곧 40대를 맞이한다. 머리가 굵어졌지만, 쉽고 간단한 문제를 두고 괜히 돌고 돌아가기도 하며, 때로는 사실 해결하고 싶지 않은 걸까, 고통 속에 빠져있고 싶은 건가. 꼬여있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냥 툭 나오는 아이의 말은 나에게 있어서 그 어떤 근사한 해답지보다 간단명료하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아이를 키우며 비로소 제대로 살아가려 매 순간 노력하는 나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