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한 그 모든 순간들을 유리병에 담는다면

영화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리뷰

by 씨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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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evitable death

모든 살아있는 것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어간다.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생명체의 운명이다.

이 말인즉, 살아있는 것들은 필연적으로 이별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삶이 비극 그 자체로 느껴진다. 내가 죽는 것보다 사랑하는 존재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더 비극적이다. 아직 가장 소중한 존재와 이러한 이별을 경험해 보지 않음에서 오는 무지의 공포는 날 잠 못들게 하기도한다.

영화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은 사랑하는 이와 필연적 이별을 경험한 사람들이 AI로 그들을 다시 삶의 세계로 불러오며 벌어지는 일들을 이야기한다. 그리운 존재의 외면을 컴퓨터로 만들어내고, 그 사람에 관한 정보를 들려주면 인공지능은 딥러닝을 통해 점점 더 그와 유사하게 발전해 나간다. 테스는 자신의 어머니 마조리가 남편 월터의 40대 모습을 AI로 만들어낸 것을 못마땅해하지만, 결국 그녀도 마조리가 죽은 뒤 AI 마조리 프라임을 생성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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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in my memory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AI들은 생성자의 기억에 의존하여 학습한다. 마조리가 죽은 후, 테스가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생전 그녀가 받았던 편지들을 발견하는데, 이는 테스가 알지 못한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마조리 프라임은 이렇게 아무도 알지 못하는 마조리의 모습은 학습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마조리의 모습은 거짓으로 알려주기도 한다. 이런 선택적 기억과 감정을 학습한 AI프라임은 과연 그 사람을 대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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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makes me?

전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 서 부분적 기억을 지웠던 것처럼 모든 나의 기억을 지운다면 그건 나일까? 외형은 분명 나이지만 경험과 감정, 기억이 없는 껍데기뿐인 나는 나일까? 기억이 전부 사라져도, 나는 이전과 똑같은 성격을 가지고, 똑같은 선택을 하며 살아갈까? '나'라는 존재는 육체가 아닌 뇌 속에 저장된 수많은 기억과 감정들을 지칭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내 모든 기억과 감정을 프로그래밍 해서 컴퓨터에 저장한다면 그 컴퓨터는 나일까? '나'를 완성하는 것은 무엇일까?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은 외형이 똑같고, 주요 기억을 입력하는 것만으로 한 인간을복사해낼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억이란 대체로 불완전하고, 이 불완전한 기억과 외형이 한 인간의 전부가 아니란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 인물들은 결국 AI 프라임을 통해 이별의 공허함을 채우지 못한다. 기억하는 순간의 기억으로만 학습된 AI들은 주입된 사건과 감정만을 반복해서 뱉어내는 앵무새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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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vertheless I'll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존재들과 필연적 이별을 맞이할 때, AI프라임이란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나는 고민없이 선택할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반려묘들이 떠나도, 부모님이 떠나도... 불완전한 모습일지라도 옆에 두고 싶다. 그 존재와 함께한 순간들을 계속해서 곱씹고, 떠올리고 싶기 때문이다. 비록 나의 일방적 기억일지라도... ...잊고싶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망각이라는 축복을 얻은 탓에 아무리 소중한 존재와의 이별일지라도 시간 앞에서 무뎌지고 잊어간다. 계속해서 기억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그럼으로써 살아가는 것이다. 영화에서 AI 프라임을 사용한 인물들이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것처럼 묘사한 이유도 그런 탓이었을까? 자연스럽게 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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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while we're alive

과학 기술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죽은 사람을 AI로 만드는 기술은 어쩌면 지금쯤 완성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영화 속 AI프라임 서비스를 현실에서 만날 날이 머지않았을 수도 있다.그러면 AI를 통해 나에게 칭찬만 해주는 엄마의 모습을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똑같은 대사라도, 그게 완벽히 마음에 드는 모습이 아닐지라도, 때로는 심장을 후벼파는 것처럼 아파도 살아있는 순간 그 날것의 감정과 겸험이 아름답게 다가왔다.

대부분의 것들이 죽어있는 이 우주에서 아주 이상한 '생명체'의 형태로 잠시 머무르는 이 순간. 이 순간 사랑하자. 이 순간 느끼자. 이 순간 기억하자. 시간은, 행복은 완벽하게 병 속에 담아둘 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