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삶을 위한 치열한 노력
20년 만의 첫 개봉 <로제타> 1999.
로제타 Rosetta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출연 에밀리 드켄
빠르게 걸어가는 로제타(에밀리 드켄)의 뒷모습에서 알 수 없는 긴장과 스트레스가 느껴진다. 아마도 그녀의 걸음에 맞춰 함께 움직이는 핸드헬드로 움직이는 카메라 때문일 것이다. 로제타는 방금 해고통지를 받았고,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관리자에게 따져 묻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수습기간이 끝나 어쩔 수 없다.’이다. 로제타는 온 힘을 다해 저항한다. 저항이라고 해봤자 해고사실을 거부하며 화장실에 숨어서까지 회사를 나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일 뿐, 그녀는 건장한 경비들에게 끌려 쫓겨난다. 첫 번째 씬 하나로 로제타의 절박함이 생동감 있게,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 절박함은 어디서 온 것일까?
아직 소녀티가 남아있는 어린 로제타는 캠핑 촌 트레일러에서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알콜 중독자인 엄마는 술을 마실 수만 있다면 몸을 파는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닐 만큼 망가져 있고, 술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술로 인한 다툼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지금의 현실에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로제타의 현실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심지어 근무기간 부족으로 실업급여도 못 받고, 식사는 와플 한 조각으로 때워가며 발품을 팔아 일자리를 찾아보지만 직원을 구하는 가게는 없다.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와플가게 청년 리케를 통해 와플 반죽을 하는 일을 구하게 된 로제타는 출근 첫 날, 자신의 자리가 원래는 다른 사람의 것이었고, 그에게 이 자리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 이상으로 절실한 일 자리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에게 미안함을 느낄만한 여유가 로제타에겐 없다. 노동자의 삶은 고단하다. 일이 힘들어서 고단한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사장의 말 한마디면 해고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 어떤 보호막도 없다는 불안전성 때문에 고단한 것이다. 로제타의 사장은 12개의 와플 가게를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의 아들이 학교에서 잘리고 갈 곳이 없어지자 로제타를 해고하고 그 자리에 아들을 넣는다.
캠핑 촌 관리인의 눈을 피해 강에서 숭어를 낚시 하고, 버린 옷들을 수선해 헌옷 가게에 갔다 팔 만큼 가난하지만 강박에 가까운 로제타의 자존심은 생선 한 토막, 와플 한 조각도 그냥 얻어먹는 것을 거부하고, 약간의 꼼수로 돈을 벌수 있다는 리케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한다. 조금의 선만 벗어나도 마치 자신의 인생이 무너질 듯이 구는 로제타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정당한 일을 하고, 트레일러가 아닌 집에서 살면서 친구들도 사귀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보통의 일상이 어째서 그녀에게는 악착같이 버티고 버텨도 힘겹기만 한 것일까?
영화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로제타에게 밀착된 카메라는 인내심 있고 집요하게 핸드헬드와 롱 테이크로 그녀의 절망을 가감 없이 화면에 담는다. 화면 속 그녀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늘 바쁘고, 무표정한 얼굴에는 불안이 서려있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답답한 숨을 몰아쉬게 되는데 그것은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지.’하고 영화와 현실을 구분해서 생각할 수 없는데다가 영화가 만들어진지 20년이 지난 지금, 노동자들의 권리가 많이 향상(영화가 개봉하고, 벨기에에서는 청년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이 개정되었을 정도로 이 영화가 벨기에 사회에 가져온 파장은 대단한 것이었다.)되었다고는 해도 기득권들의 탐욕과 이기심, 상대적으로 연약한 노동자들의 위치는 변함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1999년 만들어진 영화는 그 해 깐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수상으로 다르덴 형제(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는 이 시대 가장 중요한 영화인들 중 하나가 되었으며 이후 이들은 이 시대가 가지고 있는 부조리들을(마땅히 해야만 하는 고민이지만 마주하기에 불편한 고민들)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관객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다르덴 형제가 가진 영화 스타일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로제타>는 오는 5월23일 국내 첫 개봉을 앞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