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
<악녀>에 이어, 액션 영화 전문감독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려는듯한 정병길. 그런 그에게 항상 해주고 싶은 말은 이것 뿐이다. 당신이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액션 '영화'이지, 액션 '동영상'이 아니라고.
이에, 영화의 뻔한 이야기 전개에 대한 비판점 때문이냐고 물을 수 있다. 물론 그건 일정 부분 맞는 소리다. <카터>의 이야기는 전형적이다. 기억을 잃은 킬러,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소녀, 인질로 잡힌 가족, 북한 쿠데타, 껄렁대는 CIA 묘사까지 <카터>는 기시감으로 꽉 차 있는 영화다. 하지만, 그것 자체를 마구 욕하고 싶진 않다. 애초 장르 영화라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몇 십여년에 걸쳐 퇴적된 장르적 컨벤션으로 오히려 더 즐길 수 있게끔 되는 것. <카터>가 가지고 있는 '뻔함'만으로 불만을 토로할 수는 없다. 그렇게 따지면 <레옹>도, <테이큰>도 욕 먹어 마땅한게 되는 거다.
하지만 같은 '뻔함'이라도, <레옹>과 <테이큰>은 잘 해냈던게 있었다. 바로 액션에 감정을 싣는 일. 액션의 주안점이 되어야 할 것은 해당배우들의 동선이나 합, 근사한 총기 묘사나 화려한 CGI 따위가 아니다. 액션에서 언제나 중요한 것은 감정이다. <레옹>, <테이큰>, <로건> 등의 영화들이 엄청 뻔할지언정 꼭 지켜주고 싶은 소년 또는 소녀를 주인공 곁에 붙여 조금씩 감정을 쌓아갔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던 것이다.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대전제는 감정적으로 파워풀 할 수 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꼭 지켜주고픈 소년 또는 소녀가 나오지 않는 액션 영화라 해도 그건 마찬가지다. 그 감정은 <킬 빌>처럼 복수심이 될 수도 있고, <데쓰 프루프>처럼 통쾌함이 될 수도 있으며, 오우삼의 영화들처럼 의리가 중심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카터>는 관객들에게 주인공을 제대로 소개시켜내기도 전에 곧바로 액션에 돌입한다. 그나마 한 소개라고는 주인공의 이름이 '카터'라는 것과, 현재 그가 기억을 잃은 상태라는 것 뿐. 우리가 응원해야하는 주인공이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도 아직 소개받지 못했는데, 어느새 그는 대살육의 한 가운데에 놓여진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오프닝 크레딧 포함 영화 시작하고 단 10분 만에 카터는 대중목욕탕에서 한국의 조폭인지 일본의 야쿠자인지 모를 범죄자들과 칼을 섞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그를 응원하기는 커녕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건지 부터 신경 쓰이게 된다.
이후 등장 하는 '꼭 지켜야만 하는 소녀' 역시 마찬가지다. 앞서 말했듯 다소 뻔할지라도 그런 캐릭터가 설정되어 있는 것 자체는 그냥 넘어갈 만하다. 그러나 그 소녀와 주인공 카터 사이 관계는 별다른 감정적 동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건 카터의 친딸도 마찬가지다. 애초 친딸이 언급되고 직접 등장하는 것도 영화의 후반부 들어서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그 아이를 알 턱이 없다. 친척 조카도 일 년에 한 두 번 명절 때는 가끔씩이라도 봐야 정이 쌓이는 법이다. 하지만 <카터>의 한 소녀는 그냥 짐짝이고, 다른 한 소녀는 초면이다. 관객들에게 이는 그저 비디오 게임 속 퀘스트를 클리어 하기 위한 NPC에 지나지 않는다.
액션의 합과 그 퀄리티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데, 목욕탕에서 벌어지는 일대다수의 첫번째 액션 장면 부터가 몰입을 깬다. 15년동안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오대수도 복도에서 싸울 때 많이 맞았고, 하물며 킬러 세계의 본좌 존 윅 마저도 일대다수로 싸울 때 가끔씩은 다쳤다. 하지만 카터는 훈도시 비슷한 아랫도리만 입은채로 거의 50여명에 달해보이는 조폭들을 모조리 썰어제낀다. 본인은 단 한 방의 피해도 입지 않은채. 그래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카터가 누군가의 몸에 칼을 집어넣을 때 그 뒤에서 우물쭈물 거리고 있는 다른 조폭 단역들의 모습이 그대로 노출된다. 이같은 묘사는 이후 쭉 이어져 영화의 마지막까지 관철되고.
엠마누엘 루베즈키와 로저 디킨스가 연상되는 원 컨티뉴어스 샷으로 이루어진 영화이기도 한데, 과시적인 걸 넘어 시각적으로 혼란스럽고 가뜩이나 복잡한 액션 장르 특성상 그 산만함은 배가 된다. 그리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표현일 수도 있지만, 특히 자동차 추격 관련된 부분이나 활강하는 장면 등의 룩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기존의 시네마틱한 룩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그것 역시 마냥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영화의 기술에 한계란 있을 수 없고, 또 그 기술의 한계 때문에 영화를 무조건적으로 깎아내리는 것도 안 될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한 명의 관객으로서는 그 브이로그 같은 룩에 몰입이 다소 깨질 수 밖에 없기도 했던 것이다. 카메라의 종류와 움직임, 화면의 톤 앤 매너 등이 전혀 통일을 이루지 못한 누더기 같은 영화.
그렇다고 원 컨티뉴어스 샷을 잘한 것도 아니다. 하나하나 세세하게 분석해보고 나서야 그 편집점을 알아차릴 수 있게끔 설계된 <버드맨>이나 <1917>과는 달리, <카터>의 원 컨티뉴어스 샷은 영화를 보는동안 그 편집점을 바로바로 짚어낼 수 있다. 심지어는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는 빛의 하레이션까지 만들어내어 억지로 붙인 샷들의 연속. 어떻게든 컷들을 붙여내기 위해 주연배우인 주원은 시종일관 어딘가로 뛰어든다. 그 순간의 편집점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말한 김에 생각난 건데,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유리창들은 무슨 스테인드 글라스라도 되는지 엄청 쉽게 자주 깨진다. 얼마나 세게 밀었길래 건물 외벽창이 그리 쉽게 깨지냐... 그건 자동차 유리도 마찬가지고 실험실 격리병동 유리창도 마찬가지...
영화 속 인물들과, 영화 밖 감독에게 묻고 싶었다.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예요... 대체 왜 이렇게까지 뛰시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