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와 로키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토록 냉정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구나. 인물들이 걸어가는 길 굽이굽이를 영화가 끝나고나서도 나지막하게 지켜보는 듯 했던 그동안의 다르덴 형제. <토리와 로키타>는 다르덴 형제의 이전 작들과 비슷하면서도 그 결말에 이르러 사뭇 다른 듯 하다. 영화라는 테두리를 넘어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세계를 그대로 목도 하게끔 만드는 냉정함. 주제와 포스터만 놓고 보면 어떻게든 따스해질 것만 같았던 분위기의 바로 그 영화가, 정작 본편에 이르러 하드보일드라는 무기를 꺼내놓는다.
우리는 그동안 '난민'을 소재로 다룬 여러 영화들을 관람해왔다. 그리고 그런 영화들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얼마나 부조리하고 얼마나 잔인한지 역시 수도없이 목격해왔다. 그렇게 익숙해졌을 만한 상황인데도, <토리와 로키타>는 여전히 우리에게 나지막한 탄식을 내뱉게 만든다. 대체 왜일까?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더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후폭풍이 없는 세계'라는 점에서 연유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바로 그 결말에 관한 것이다. 영화는 한 시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에게 프레임에 꽉 찬 로키타의 얼굴을 연이어 보여줌으로써 그녀의 얼굴 구석구석을 다 떼어 보여줬다. 그녀가 갖고 있는 불안함과 공포, 그리고 때때로 토리에 의해 피어오르는 야트막한 즐거움까지. 헌데 영화가 결말에 이르러 보여주는 것은 로키타의 죽음이다. 죽음. 그런데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는 거지. 그 죽음은 굉장히 덧없게 묘사되어 있다. 다른 영화였다면 총에 맞아 죽는 순간 그녀의 얼굴과 그녀의 몸짓을 더한 클로즈업으로 보여줬을지도 모른다. 그녀를 죽이는 그 마약상의 표정 역시 강조될 것이고, 이후 쓰러진 그녀를 붙잡고 흐느끼는 토리의 모습 역시 묘사되었으리라. 하지만 다르덴 형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로키타는 전혀 죽을 것 같지 않았던 순간에 총을 맞아 죽는다. 거기엔 그 어떤 유언의 모멘트도 없다. 그야말로 즉사다. 여기에 살인자 역시 별다른 동요를 하지 않고 체포 되기는 커녕 자연스레 현장을 떠난다. 상영시간 내내 줄곧 로키타의 얼굴에 집착하던 카메라는, 그 결말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프레임 한 켠에 시냇물이 졸졸 흘러갈 뿐.
다분히 스콜세지 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필름 누아르들을 통해 의리와 낭만의 대명사로 군림 했던 갱스터들은, 유독 스콜세지 손만 거치면 그저그런 범죄자들에 지나지 않게 변해 담겨왔다. <토리와 로키타> 역시 마찬가지다. 아, 물론 스콜세지 이야기를 예시로 꺼냈다고 해서 극중 로키타를 죽어 마땅 했던 범죄자로 몰고가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이기에 <토리와 로키타>는 더 슬프게 느껴진다. 거기엔 그 어떤 감정적 모멘트도 없다. 로키타는 그저 죽고, 토리는 그저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빌어먹도록 냉정한 상황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이 세계란 것이다.
왜 제목이 '로키타와 토리'가 아닌 '토리와 로키타'일지 한참을 생각해봤다. 굳이 따지자면 영화의 주인공으로 더 잘 어울리는 것은 토리가 아닌 로키타 아닌가? 토리보다 로키타 그녀의 물리적 분량이나 감정적 분량이 훨씬 더 많은데? 게다가 가짜였긴 해도 굳이 남매라 친다면 로키타가 토리에 비해 더 손위인 것도 맞잖아? 나이도 더 많고 키도 훨씬 더 큰데. 근데 대체 왜 제목은 '로키타와 토리'가 아닌 '토리와 로키타'인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왠지 그마저도 항상 토리를 먼저 위했던 로키타의 의지가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해보게 된다. 로키타가 언제나 먼저 위해줬던 토리는, 그래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냉정한 유럽에서? 그리고 이 냉혹한 세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