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 틱... 붐!>
<렌트>의 실질적 쇼 러너라 할 수 있을, 그리고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아깝게 요절한 조나단 라슨의 일대기이자 그가 쓴 또다른 동명의 뮤지컬 리메이크. 아마 <렌트>를 좋아하거나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틱, 틱... 붐!>이 그에 대한 작가주의적 각주를 달아줄 것이다. <렌트>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주제와 소재들이 모두 조나단 라슨의 실제 삶에서 연유했더라고. 그게 또 이 영화에서 잘 드러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상급의 만찬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린 마누엘 미란다의 장편 연출 경험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배우이자 무대 연출가로서 날고 기던 그 시절 짬이 역시 어디 가지는 않나보다.
<틱, 틱... 붐!>의 뮤지컬 넘버들과 그 장면들은 모두 개성 충만하게 구분된다. 음악적 장르와 가사의 주제 및 내용도 다 다르거니와, 그 각기다른 음악들을 담아낸 각기다른 장면들이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발군이다. 영화가 마침 또 액자식 구조를 취하고 있기에 더 유리한 것도 있다. 극중 현재 시점을 담아낸 조나단 라슨의 원맨쇼 뮤지컬 시퀀스와 과거 시점의 일반 뮤지컬 시퀀스가 적절히 뒤섞인다. 웬만해서 산만하게 느껴질 만도 한데 그런 거 없이 편집 조율도 깔끔히 잘 해냈고. 한마디로 뮤지컬 영화로써의 테크니컬 스펙은 거의 만점.
예술가의 삶을 다룬 영화들이 으레 그렇듯, 이 영화 역시 작가주의적 관점에서 주인공과 그 작품의 관계를 해설 하려한다. 예술가가 살아온 삶의 궤적과 그 취향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그 해당 예술가의 작품을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는 관점. 그러니까 작품에는 예술가 본인의 아이덴티티가 많이 투영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에 이걸 잘해낸 영화로는 다소 뜬금 없게도 <레디 플레이어 원>이 있었지. 주인공 파티가 오아시스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그 제작자 할러데이의 삶을 많이 연구하니까.
그 부분에서 <틱, 틱... 붐!>은 <렌트>의 좋은 해설집이 되어준다. 뉴욕이라는 공간과 젊은 예술가로서의 삶, 에이즈와 그 때문에 잃은 친구들, 사랑과 꿈 사이에서의 갈등 등 다소 진지한 요소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허름한 집을 벗어나 좋은 집에서 살고자 하는 본능적 욕망까지도 그렇다. 나도 그랬듯 아마 이 영화와 <렌트>를 함께 이어서 보면 훨씬 더 재미있을 것.
예술가의 열망과 불안을 잘 표현해낸 영화다. 그러나 한가지가 더 있다. 그들의 열망과 불안 뿐만 아니라, 그 무한한 가능성까지도 목도하는 영화라는 것. 극중 텅 비어버린 조나단의 노트를 두고 연인인 수전은 멋지다 말한다. 그저 비어있는 노트일 뿐인데도. 그리고 일련의 과정들을 거쳐, 끝에 다다른 두 남녀. 이 때 수전은 마지막 선물로 조나단에게 새 '빈 노트'를 건넨다. 그렇다, 아직 쓰여지지 않은 것들은 아름답다. 아니, 그 자체로 아름답다기 보다는 아름다울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 텅 비어버린 공책과 커서만 깜빡이고 있는 컴퓨터 모니터 속의 빈 페이지는 우리를 불안케 하고 또 떨게 만들지만, 동시에 그 안엔 무한한 가능성까지도 함께 깜빡이고 있는 것이기에 더없이 기쁘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에 그 불안한 순간들을 조금이나마 더 버틸 수 있게 도와주는 격려의 한마디까지 있다면, 그것이 예술가들에게는 곧 기름일 것이다. 언제나 말하지만, 예술가들은 연비 좋은 엔진 같은 존재다. '가능성 있어보여'나 '멋지다!'는 누군가의 한 마디가 그저 기름 몇 방울에 불과해 보일지라도, 그 몇 방울로 예술가들은 몇날 며칠을 지새우고 버틴다. 그러니까 당신의 근처 누군가가 빈 페이지, 빈 캔버스, 빈 프레임, 빈 노랫말과 빈 음계 앞에서 걱정에 깜빡이고 있다면. 부디 그 기름 몇 방울을 흘려주길 바란다. 그럼 그들은 당신이 넣어준 그 기름 몇 방울로 겨울을 버티고 끝내는 국토대장정까지 해내고야 말 것이다.